마운드 다시 오르는 박근혜, 한나라당 위기의 불 끌까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12.1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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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선 출마를 위해 당 대표직을 사퇴한 지 5년6개월 만에 정치 전면에 나선다. 이로써 한나라당은 다시 ‘박근혜당’으로 돌아왔다. 박 전 대표의 등판은 여권 질서는 물론, 대선 구도 전반을 흔들 대형 변수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복귀를 바라보는 당내의 시각에는 온도 차가 작지 않다. 따라서 ‘박근혜당’ 재출범은 한나라당 해체 시나리오의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는 관측을 낳는다. 돌아온 박근혜는 수렁에 빠진 한나라당을 구원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혼란을 몰고 올 것인가.

12월7일 한나라당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유승민·남경필·원희룡 최고위원(왼쪽부터). ⓒ 시사저널 유장훈

결국 박근혜 전 대표가 나선다. 2006년 6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당 대표를 사퇴한 지 5년6개월 만에 한나라당은 다시 ‘박근혜당’으로 돌아왔다. 박근혜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은 여권 질서는 물론 대선 구도 전반을 크게 흔드는 변수이다. 조기에 대권 쟁투가 벌어지고 내년 총선은 대선 전초전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면서 박 전 대표의 운명, 나아가 정권의 향배를 가를 한판 승부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박 전 대표 또한 사활을 걸고 임할 것으로 보이고, 야권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박 전 대표의 낙마를 꾀할 것이 분명하다. 박 전 대표의 조기 등판으로 이미 정국은 대선 정국으로 접어든 셈이다. 그러나 속속 판을 정리해가고 있는 야권과 달리 여권은 박 전 대표가 등장했다고 해서 판이 정리되어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만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자칫하면 박 전 대표의 등장이 여권의 분열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박근혜로도 어렵다”는 이율배반적인 정서

ⓒ 시사저널 유장훈
이런 측면에서 ‘박근혜당’은 ‘한나라당 해체 시나리오’의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지금 한나라당 내에서는 “박근혜가 나서야 한다”라는 요구가 빗발치지만, 그러면서도 내심 “박근혜로도 어렵다”라는 이율배반적인 정서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향후 탈당과 분당 사태로 치닫는 길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식지 않는 이유이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나아가 보수의 대분열로 이어지는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향후 강도 높은 카드를 연달아 내놓으며 여권의 쇄신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 불출마 등을 포함한 자기 희생 카드, 공천 개혁을 통한 신진 인사 대거 영입, 야권 통합에 맞선 보수 대통합 작업 등을 연달아 내놓을 것으로 관측된다. 더불어 이명박 정권과 정책적인 측면에서의 차별화 행보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선권으로 분류되는 영남과 서울 강남권 그리고 친박계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잇따를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의 계파 구도는 과거 ‘친이-친박’에서 더 세분화되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친이계의 분열이다.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락하면서 거대한 덩치가 사분오열된 것이다. 비록 홍준표 전 대표가 사퇴했지만, 그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가 있다. 이재오 의원, 정몽준 전 대표,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대권 주자급이 주축이 된 이른바 ‘비박(非朴)계’가 있고, 쇄신파가 있다. 쇄신파도 ‘민본21’ 등 소장파를 중심으로 하는 ‘소장 쇄신파’와 정두언·남경필 의원 등의 ‘중진 쇄신파’로 나뉜다. 한때 ‘비박계’측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원희룡 의원도 최근 중진 쇄신파에 가세하면서 ‘新남원정’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회자되고 있다. ‘남원정’은 과거의 한나라당에서 개혁 소장파였던 남경필·원희룡·정병국 의원을 일컬었던 말로, 정병국 의원이 정두언 의원으로 교체된 셈이다. ‘이상득계’와 ‘친이 직계’ ‘범(汎)친이계’ 등 대다수 친이계 의원은 무기력증에 빠진 채 소속감 없이 그저 눈치만 보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주류로 떠오른 친박계가 버티고 있다. 홍 전 대표의 사퇴로 당권파 또한 친박계로 흡수되거나 아니면 소속감 없이 뿔뿔이 흩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해체 시나리오를 바라보는 각 계파의 속셈은 저마다 제각각인 ‘5인5색’이다. 디도스 사태가 여권을 뒤덮은 직후 향후 한나라당의 운명을 전망하는 시나리오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되었다. 홍 전 대표의 전격적인 사퇴로 이미 ‘홍대표 체제 잠정적 유지’라는 1안은 용도 폐기되었다. 2안은 ‘비상대책위’ 출범을 통한 ‘리모델링 작업’이고, 3안은 당을 해체한 후 재창당하는 ‘헤쳐 모여 작업’이다. 마지막 4안은 탈당과 분당으로 인한 분열이다. 당초 친박계와 당권파는 1안과 2안을 주장했다. 하지만 쇄신파와 비박계는 줄기차게 3안을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겠다는 결심을 굳힘으로써 현재 가장 유력한 카드는 ‘당 해체 후 재창당’ 방안이다.

박 전 대표가 결심을 굳힌 이상 친박계의 반대는 상상하기 어렵다. 외형상으로는 모든 계파가 참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대권 주자로서의 박근혜’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에 따라 재창당 과정이나 그 후폭풍에 대한 전망은 극명하게 갈린다.

 

‘재창당’ 성격에 대해서도 내부 인식 차 확연

우선 ‘재창당’ 성격에 대한 인식부터가 확연히 차이 난다. 친박계에서는 “중요한 것은 내용이지, 겉모습이 아니다. 굳이 한나라당을 완전히 공중분해시킬 필요가 있느냐”라는 말이 나온다. 리모델링 수준의 2안을 여전히 선호하는 듯한 발언이다. 하지만 쇄신파와 비박계는 “한나라당 간판을 완전히 내려야 한다는 것은 결코 양보가 안 되는 전제 조건이다”라고 말한다. 쇄신파의 한 초선 의원은 “아직 그렇게 안일한 생각을 갖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내용을 바꾸기 위해서는 인적 쇄신을 통해 외부의 참신한 인사들을 최대한 수용해야 하는데, 지금 한나라당의 간판으로 누가 들어오려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재창당이라는 용어 자체도 부적절하다. 재창당이 아니라 그냥 ‘신당 창당’이 맞다”라고 말했다.

재창당의 방향과 관련해서도 외부 통합 대상에 따라 또 한 번의 갈등과 분열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당장 생각할 수 있는 통합 대상으로는 자유선진당과 미래희망연대, 그리고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주도하는 이른바 ‘박세일 신당’ 등이 있다. 당 밖의 보수 우파 세력과 통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쇄신파의 완강한 반대가 예상된다. 소장 쇄신파의 한 의원은 “다시 ‘수구 꼴통당’으로 가자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소장 쇄신파의 리더 격인 권영진 의원은 “‘보수 대통합’이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국민통합 중도 개혁’ 정당이다”라고 밝혔다. 중진 쇄신파의 정두언 의원 역시 “그들이 온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나. 지금 국민들은 한나라당 쇄신파와 민주당 온건파가 당을 함께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한나라당에서 더는 오른쪽으로 가서는 안 되고 왼쪽의 중간 지대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외형상 중도 보수를 표방하고 있는 ‘박세일 신당’에 대해서는 쇄신파 내부에서도 의견이 다소 엇갈리지만, 정작 박이사장은 박 전 대표가 중심에 서는 통합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쇄신파는 대신에 중도 우파 세력을 껴안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가까이 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과 법륜 스님 등이 거론된다. 권의원은 “안철수 원장이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 대화에서 법륜 스님의 주장이 내 생각과 99%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민도 있다. 정두언 의원은 “우리야 좋지만, 과연 그들이 들어오려고 하겠는가. 나 같아도 안 들어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같은 쇄신파라 하더라도 소장파와 중진급인 ‘新남원정’의 발언에서는 미묘한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박 전 대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그 차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소장파는 뜨겁지만, ‘新남원정’은 냉소적이다. 소장 쇄신파인 김성태 의원은 “지금과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지도자는 박 전 대표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권의원은 “그동안 비주류였던 박 전 대표와 쇄신파가 변화를 함께 주도해나갈 수 있다. 내가 본 박 전 대표는 그렇게 닫혀 있는 분이 아니다”라고 호감을 나타냈다.

박세일 신당 등과 통합할 가능성도

12월9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운데)가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당사를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반면 정두언 의원은 “대권 주자로서의 박근혜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의문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가상의 후보한테도 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박 전 대표는 소통과 스킨십이 상당히 많이 부족하다. 바뀌지 않으면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원희룡 의원도 “변화하지 않는 박근혜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안철수 세력’과 함께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소장파는 “어떻게 하든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라는 입장이지만, 정두언 의원은 “밖으로 나가려 하는 의원이 많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박근혜당’을 기준으로 소장파는 ‘안’에, 정의원은 ‘밖’에 방점이 찍혀 있다. 비록 쇄신파가 “박근혜 전면 등장”이라는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소장파와는 달리 중진급에서는 “박 전 대표로도 결국 안 될 것이다”라는 회의적 시각이 깔려 있다는 것이 정치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는 ‘비박계’의 움직임이다. 앞서 언급한 시나리오 제4안은 바로 비박계를 염두에 둔 가능성이었다. 한때 당내 주류를 장악했고, 어쨌든 여권의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세 인사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박 전 대표가 쇄신파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서 중도 보수는 물론이고 진보 성향의 인사들에까지 외연을 확장하려 할 경우에는 비박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현재 여권에서 ‘박근혜 대항마’로 가장 앞서 있는 김문수 지사 등이 ‘보수의 정체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탈당할 가능성도 크다. 오히려 이들이 자유선진당이나 박세일 신당 등과 통합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비박계는 소장 쇄신파와는 달리 ‘박근혜 불가론’ 성격이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新남원정’과 가깝다. 박 전 대표 체제로는 총선과 대선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과연 당 해체 후 새로운 전당대회가 열릴 경우, 박 전 대표에 맞서 당권 도전에 나서겠느냐 하는 데에 관심이 모아진다. 정두언 의원은 “아마 나서지 않을 것이다. 박 전 대표 판이 될 것이 뻔한데 왜 나서겠는가”라고 전망했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일단 비주류로 남은 채 박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재창당 작업을 지켜보면서 반대급부를 노리려 들 것이다. 박근혜 체제가 안착되면 탈당해서 신당을 만들려 할 것이고, 박근혜 체제가 흔들리면 당권 접수에 나설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전면 등장으로 일단 당장의 무게 중심은 ‘쇄박연대(쇄신파와 친박계의 연대)’ 쪽에 쏠려 있는 듯이 보이지만, 재창당 작업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쇄신파가 비박계 쪽으로 옮겨가거나 아예 집단 탈당을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여권의 본격적인 위기는 오히려 지금부터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박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은 여권에 새로운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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