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범벅 ‘너무 거창한 디도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12.1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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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사이트 공격’ 3대 미스터리 추적 / 최구식 의원, 범행 자백한 공 아무개 비서 아직도 면직 처리 안 해 의문 남겨

지난 10월26일 재·보선 당일 선관위 사이트에 디도스 공격을 한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는 공 아무개 비서. ⓒ 연합뉴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10·26 재·보선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DDos; 분산 서비스거부) 공격을 자행한 핵심 용의자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비서 공 아무개씨가 지목되면서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보좌진들 사이에 이 말이 회자되었다. 한나라당 보좌진은 깊은 한숨을 내쉰 반면 민주당 등 야권은 한껏 격앙되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대통령이 하야하는 사태까지 갔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선관위 홈페이지는 10월26일 새벽 1시쯤 디도스 시험 공격을 당했고, 투표가 시작된 6시쯤부터는 두 시간 동안이나 접속 장애가 일어났다. 이 사상 초유의 엄청난 ‘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하고 주도한 용의자가 27세에 불과한 최의원의 9급 수행비서라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씨가 12월8일 경찰에서 자신의 단독 범행이었다고 자백했지만, 그 진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찰은 12월9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조차 “공씨의 자백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과연 국회의원 9급 수행비서의 단독 범행이 맞을까?”라는 것이다.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이번 사건에서 공씨를 둘러싼 세 가지 가능성을 추적했다.

▒ 공씨의 객기에 의한 돌출 행동이었나?

국회의원은 4급 보좌관과 5급 비서관을 각각 두 명씩, 6급과 7급, 9급 비서를 각각 한명씩, 모두 일곱 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공씨는 9급으로 최의원을 수행하는 운전기사였다. 경남 진주 출신인 공씨는 같은 집안인 한 경남도의원의 추천으로 1년 전쯤부터 최의원 비서로 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씨는 진주를 연고로 하는 인맥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진주 지역에서의 뿌리는 탄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국회에 취직한 것도 지역의 도움 덕이었고, 실제 지역에서는 ‘국회의원 비서’라는 점을 과시했던 것으로알려졌다. 국회 의원회관 지하 1층 수행비서 대기실에서 만난 한 한나라당 의원실의 수행비서는 “공비서는 다른 수행비서들에 비해 나이가 어린 편이어서 다른 비서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대기실에도 거의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조차 그 정치적 파장이 ‘차떼기 사건’과 맞먹는 이번 사건을 공씨가 단독으로 저질렀을까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있다. “공씨가 나경원 캠프 사람과 공모한 것이 아니냐”라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정치적 파장을 미처 가늠하지 못한 20대 청년의 치기 어린 객기에서 사건이 불거졌을 가능성을 거론하는 시각도 있다. 공씨가 평소 도박 사이트 등으로 이 분야에 밝은 강 아무개씨와 친분을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디도스 공격’ 자체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음은 물론, 해외에서 공격하면 범인 검거가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저질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공씨 주변에서 “공씨가 자기 혼자 한 것이 아닌데 억울해한다”라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IT 전문가들은 또 최소한 몇 개월 동안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누군가 배후 인물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 공씨의 ‘멘토’로 알려진 국회의장 전 비서 김씨의 역할은?

10·26 재·보선 전날 밤 10시쯤 공씨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김 아무개씨의 전화를 받고 서울 강남의 룸살롱으로 갔다. 공씨와 김씨 이외에도 한나라당 공성진 전 의원의 비서 출신 박 아무개씨, 검찰 수사관 출신 기업가, 변호사, 병원장 등 모두 여섯 명이 참석한 술자리였다. 공씨는 경찰에서 “술자리에서 서울시장 선거 판세 얘기가 나왔고, 내가 선관위 홈페이지를 다운시켜 유권자들이 투표소를 찾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층의 투표율을 떨어뜨리면 나경원 후보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고 했다. 그리고 밤 11시40분쯤 강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씨는 당시 필리핀에 있던 강씨에게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을 해보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씨는 김씨를 불러내 “선관위 홈페이지를 때려버릴까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김씨는 “그러지 마라”라고 말렸다고 한다.

공씨의 ‘멘토’로 알려진 김씨는 같은 진주출신의 네 살 위 형으로 지난해까지 최의원의 수행비서로 일하다가 의장실 비서로 옮겼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공씨보다도 국회 경험이 많은 김비서를 주목해보아야 한다”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김씨는 그날 저녁 강남의 술자리 직전에 광화문에서 청와대 행정관 등과 어울려 저녁 식사를 했다. ‘호형호제’하는 두 사람의 친분 정도로 미루어 두 사람의 공모 여부를 의심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경찰은 “공씨와 김씨를 따로 조사했는데 진술이 상당 부분 일치해서 두 사람이 공모한 것 같지는 않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정 당국의 한 인사는 “그날 술자리에서 함께 모의했거나 사후에 말을 맞추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라고 의심했다.

이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30여 명 안팎으로 대규모 수사진을 꾸렸다. 검찰의 한 관계자도 “공씨가 자백한 것이나, 김씨 등과의 진술이 일치한 것에는 큰 의미가 없다. 문제는 그 자백과 진술을 뒷받침할 만한 물증이있느냐이다”라고 말했다.

▒ 최구식 의원은 왜 공씨를 면직 처분하지않았나?

국회의원 보좌진을 채용할 때는 우선 경찰에서 전과 기록 등을 조회한다. 심지어 정식보좌진이 아닌 인턴 직원을 뽑을 때도 국회사무처에서 공무원 결격 사유 유무를 심사한다. 음주 운전 경력만 있어도 국회 직원으로 채용될 수 없다. 하지만 공씨는 전과 4범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공씨가 어떻게 국회 직원으로 채용되었는지도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공씨가 채용되는 과정에서 국회사무처가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누군가의 요청으로 공씨의 전과 기록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미성년범죄이거나 형 집행이 종료된 범죄일 경우,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전과 기록이 삭제되는 경우가 있다. 공씨의 경우, 임용하지 못할 특이한 사항이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디도스 공격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은 10월26일 선거 당일부터였다. 공씨가 체포된 것은 12월1일이었다. 무려 한 달이상 공씨 등은 도주하거나 증거 인멸을 시도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씨는 경찰 체포 직전까지 최의원을 수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공씨는 12월9일 현재까지 면직 처분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일반적으로 국회의원 보좌진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의원이 바로 면직 처분할 수 있다. 경찰에 체포된 지 9일이 지났는데도 공씨는 여전히 ‘국회 직원’으로 등록되어 있는 셈이다. 최의원이 공씨를 면직시키지 않은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최의원과 보좌진들에게 전화 연락을 취했으나 모두 받지 않았다. 이 사건이 터진 이후 국회의원회관 604호 최의원의 사무실 문은 굳게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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