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부숴야 통한다는 ‘소통 바보’들의 비극
  •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 승인 2011.12.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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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의사소통 수단으로 삼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

ⓒ honeypapa@naver.com

고3인 G는 어머니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정오쯤에 낮잠을 자고 있던 어머니의 눈을 부엌칼로 먼저 찔렀다. 어머니는 저항했다. 목을 졸랐고, G는 결국 칼로 어머니의 목을 찔렀다. 어머니의 사체는 안방에 그대로 두었다. 8개월을 그렇게 지냈다. 가끔 집으로 친구들을 불러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그는 얼마 전 수능 시험에도 응시해서 대학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시사저널 제1154호).

G가 지난 11월23일 경찰에 체포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어머니를 살해하고 8개월 동안 사체가 있는 집에서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유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사건은 엽기적이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더해, 이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문제아나 불량 청소년이 아니고 전국 4천등 안에 드는, 이른바 우등생이었다는 사실이 충격을 배가시켰다.

인생에서 풀어야 할 두 종류의 문제

우리가 이른바 공부 잘하는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 중의 하나는 이들이 문제를 잘 푼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수시로 풀어야 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중간 시험이나 기말 시험과 같이 말 그대로 시험 문제를 푸는 것이다. 실제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수능 시험을 포함해서 다양한 시험 문제의 해답을 찾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 결과 성적이 좋고, 우등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다른 종류의 문제는 시험 문제와 같은 형태로 출제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들은 인간적인, 또는 사회적인 갈등이라는 형식으로 우리 앞에 주어진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수시로 풀어야 하는 문제 중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또는 다른 집단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상당히 많다. 어찌 보면, 인생을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가장 무거운 문제는 바로 이러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시험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또는 다른 집단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더 잘 풀 수 있을까?

만약 공부를 한다는 것이 시험 문제의 정답을 찾는 능력만을 길러주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주고 있다면, 우등생은 당연히 시험 성적만 좋은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갈등 상황에서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는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시험 문제를 잘 푼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자신이 직면한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학교에서의 우등생이 사회에서도 우등생은 아니라는 말에는 시험 문제를 잘 푼다고 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면하게 되는 관계의 문제도 잘 푸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들이 타인과의 갈등 상황에서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는 데 서툰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만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에는 상대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길러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능력 중의 하나는 타인과의 의사소통 능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공감적 의사소통 능력이다.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이 전달한 내용을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적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상대방과의 갈등 상황에서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의사소통은 설득 또는 주장과 혼용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장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더 나아가 설득시키는 것을 소통이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소통이라고 포장한다. 설득의 기술과 스피치의 기술이 좋은 사람이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끝장 토론에서 끝장이 나지 않는 이유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다수의 토론이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능력이 없는 두 사람이 토론을 한다는 것은 각자 자신의 논리와 주장을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끝장 토론을 하면 끝까지 자신의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는 끝내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끝장 토론에서 토론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설득과 주장만 있었기 때문이다. 주장과 설득을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공들여 합리화한 주장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를 소통 거부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이를 상대에 대한 공격의 빌미로 삼기도 한다.

G는 올해 초에 치른 모의고사의 성적표를 전국 4천등에서 전국 62등으로 위조해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다. 어머니가 성적이 안 좋으면 야구 방망이나 골프채로 G를 때렸기 때문이다. G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방문의 날’이 올 3월14일이었는데, 어머니가 학교에 갈 예정이었다. G는 자신이 성적표를 위조했다는 사실이 들통날까 봐 ‘학부모 방문의 날’ 전날인 3월13일 어머니를 살해했다. G는 범행 전날인 3월12일에도 야구 방망이와 골프채로 10시간 동안 맞았다고 한다. 62등 성적표를 본 어머니가, 더 잘해서 1등이 되어야 한다면서 때렸다는 것이다(시사저널 제1154호).

의사소통 능력이 전혀 개발되지 않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자기 생각 전달법이 바로 폭력의 사용이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충분히 의사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폭력 사용 이외의 의사소통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G의 경우에도 폭력만이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던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보여준다. 우등생도, 우등생의 교육에 집착했던 어머니도, 우리 사회에서는 의사소통의 또 다른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없었던 것일까?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심리학의 힘 P: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11가지 비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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