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물만 먹었다 하면 ‘몸값’이 하늘로?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1.12.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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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에서 활약하다 국내 리그로 돌아온 프로야구 선수들 ‘상한가’ 속출…국외 리그에서 실패해도 연봉은 폭등

일본에서 돌아와 한화에 입단하는 김태균이 지난 12월12일 대전 유성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입단 기자회견에서 한대화 감독에게 건네받은 모자를 쓰고 있다. ⓒ 연합뉴스
외국물만 맛봐도 신분이 상승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외국 대학 학위자는 넘쳐나고, 외국 기업보다 국내 공기업이 더 인기가 좋다. 국외 연수는 이제 배낭여행보다 쉬운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야구는 예외이다. 국외 리그에 진출했다가 실패해 돌아와도 국내 리그에서 엄청난 몸값을 보장받는다. 이대호가 롯데가 제시한 100억원을 마다하고, 일본에 진출했을 때 많은 야구 전문가가 “나라도 이대호처럼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대호가 ‘100억원의 롯데’ 대신 ‘60억원의 일본 오릭스’ 택한 까닭

지난 12월14일 일본에서 열린 이대호의 버팔로스 입단식에서 오릭스 구단 본부장이 이대호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 ⓒ 연합뉴스
롯데가 FA(자유 계약 선수) 이대호에게 제시한 금액은 100억원이었다. 세금을 제외해도 90억원이 넘는 돈이었다. 롯데 배재후 단장은 “한 해 구단 운영비의 3분의 1이 넘는 금액을 이대호에게 제시한 셈이다”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대호는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를 선택했다. 오릭스도 100억원가량을 제시하기는 했다. 그러나 세금을 제하면 60억원 정도라, 되레 롯데 제시액이 더 높았다.

그런데도 이대호가 일본에 진출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구단 단장은 “일본에서 뛰다 실패해 한국으로 돌아와도 그만한 돈은 다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실이다.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에서 뛰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태균은 최근 친정팀 한화와 계약했다. 올 시즌 지바롯데에서 타율 2할5푼, 1홈런, 14타점을 기록하며 ‘한물갔다’라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한화는 김태균에게 연봉 15억원을 안겼다. 올 시즌 이대호의 연봉 6억3천만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금액이었다.

한술 더 떠 야구계에는 ‘한화와 김태균이 4년간 80억원에 계약했다’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애초부터 한화가 “김태균의 몸값으로 롯데가 이대호에 제시한 100억원에 다소 모자란 80억원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80억원이라면 역대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 몸값이다. 김태균은 2009년 말 지바롯데에 입단할 때 3년간 계약금 1억 엔, 연봉 1억5천만 엔 등 총 5억5천만 엔에 계약한 바 있었다. 원화로 90억원에 가까운 매머드 계약이었다. 일본에 진출할 때 대박 계약에 성공하고, 일본에서 실패해 국내에 돌아와서도 또 한 번의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김태균만이 아니다. 이승엽도 비슷하다.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뛰었던 이승엽은 올 시즌을 끝으로 국내 복귀를 선언했다. 그리고 친정팀 삼성 품에 안겼다. 삼성은 이승엽이 역대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점을 고려해 연봉 11억원을 제시했다. 김태균에 이어 역대 최고 연봉 2위이다.

지난 12월5일 열린 이승엽의 삼성 입단식에서 이승엽이 김인 삼성 라이온즈 사장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 시즌 이승엽은 오릭스로부터 연봉 1억5천만 엔(약 22억원)을 받았다. 그러나 성적은 타율 2할5리, 15홈런, 51타점으로 저조했다. 특히나 이승엽은 2008년 이후 타율 2할6푼, 20홈런 이상을 한 차례도 기록하지 못했다. 물론 이승엽은 여느 국외파 유턴 선수들처럼 “자존심을 세워달라” “최고 대우를 해달라”라는 요구 따위는 하지 않았다. 되레 삼성이 민망해할 정도로 몸을 낮췄다. 삼성 관계자는 “이승엽이 대선수답지 않게 ‘구단의 뜻에 따르겠다’며 겸손으로 일관해, 기존에 책정했던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을 주게 되었다. 이승엽의 티켓파워를 고려하면 전혀 무리한 금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조만간 한화는 미국 메이저리그 출신인 박찬호와 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일단 한화는 “박찬호가 돈 때문에 한국 프로야구에 온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기선 제압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많은 연봉을 줄 생각이 없으니, 박찬호도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라는 메시지이다. 하지만 한화가 이미 김태균에게 연봉 15억원을 안겼기에 박찬호도 최소 5억원 이상은 받으리라는 것이 야구계의 중평이다. 올 시즌 오릭스에서 뛴 박찬호는 1승5패, 평균 자책 4.29를 기록했다. 시즌 초반 햄스트링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간 이후로는 다시 1군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최대 연봉 2백20만 달러(한화 약 25억원)를 받는 거물 선수 치고는 대단히 실망러운 성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5억원 이상을 받을 것이 확실시되어. 국외 리그에서 실패하고도 국내 리그에서는 고액 몸값을 약속받는 또 한 명의 행운아가 될 전망이다.

국외파 유턴 선수들의 고액 연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해태(KIA의 전신) 이종범은 1998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했다. 당시 주니치는 이종범을 영입하기 위해 해태에 이적료로 4억5천만 엔(약 45억원)을 지급했고, 이종범에게도 계약금 5천만 엔, 연봉 8천만 엔을 안겼다.

하지만 이종범은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 채 1, 2군을 전전하다가 결국 2001년 자유 계약 선수로 풀리며 고향 광주로 돌아왔다. KIA는 이종범이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임을 고려해 연봉 3억5천만원을 제시했다. 그해 연봉 1위였던 삼성 이승엽의 3억원을 능가하는 최고액이었다. 정민태도 다를 것이 없었다. 2000년 현대 소속이었던 정민태는 연봉 3억1천만원을 받았다. 2001년 요미우리로 진출하자 연봉은 1억 엔(약 1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런데 정민태는 일본 야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펜투수로 전락하며 2003년 현대로 돌아왔다. 현대는 정민태가 일본에서 대실패를 했지만, 연봉 5억원을 제시하며 그를 순식간에 연봉킹으로 등극시켰다.

이범호는 실패가 성공으로 이어진 경우이다. 2009년 한화에서 연봉 3억3천만원을 받던 이범호는 지난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2+1’년에 계약금과 연봉을 합쳐 최대 5억 엔(약 65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일본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범호 역시 일본에서 1, 2군을 전전하다가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범호는 여느 선수들과는 다르게 친정팀 한화로 복귀하지 않고 KIA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범호는 계약금 8억원, 연봉 4억원에 KIA 입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야구계는 그의 몸값을 4년에 40억원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도 국외파 선수들의 고액 연봉은 지속될 듯

박찬호. ⓒ 연합뉴스
국외 리그에서 뛰지 않고도 ‘국외파 프리미엄’을 적절히 활용(?)한 선수도 있다. 정대현이다. 정대현은 FA 자격을 취득하자마자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바람에 SK는 정대현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못했다. 곧바로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3백20만 달러에 2년 계약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정대현은 한국 프로야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메이저리그에 직행하는 선수가 되는 듯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정대현은 미국행 비행기 대신 부산행 KTX 표를 끊었다. 건강상 문제로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이 좌절되자 롯데와 전격 계약을 맺은 것이다. 애초 정대현의 시장가는 3년에 20억~25억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정대현이 미국 진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자 롯데는 4년간 36억원이라는 매머드 계약안을 제시했다. 잠시 미국에 갔다 온 사이 몸값이 10억원이나 뛰어오른 셈이었다.

일부에서 “국외파 출신 선수들의 몸값이 지나치게 높다. 국외 리그에서 실패해 국내로 돌아오면 대박이 보장되니, 너도나도 국외 리그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볼멘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국외파 출신 선수들은 하나같이 국내 리그에서 맹활약했다. 이범호만 해도 일본에서는 ‘2군급 선수’라는 혹평을 들었지만, 올 시즌 KIA를 포스트시즌 진출로 이끄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KBS 이용철 해설위원은 “선수층이 얇은 국내 리그 사정상 당분간 국외파 선수들의 고액 몸값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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