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휘어잡는 심심하지 않는 ‘심심이’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1.12.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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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이 앱’ 인기몰이…젊은 층 유행 코드로 자리 잡아

지난 1년여 동안 심심이 앱은 4백만명의 사용자를 끌어들였다.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면서 카카오톡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이하 앱)이 최초의 승자로 떠올랐다. 수많은 앱 개발자들이 제2의 카카오톡을 꿈꾸며 사용자들에게 접근하지만 아직 제2의 카카오톡이라고 부를 만한 앱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최근 각종 게시판에 ‘심심이 어록’이라는 이름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인공지능 대화 프로그램인 심심이 앱이 제2의 카카오톡 신화를 기대해볼 만한 아이템이다.

사실 심심이는 ‘뉴페이스’가 아니다. 지난 2002년 MSN 메신저에서 ‘심심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얼굴을 알렸고, 이어 KT의 휴대전화 서비스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랬던 심심이가 지난해 5월 스마트폰용 앱으로 리뉴얼되면서 벌써 4백만명의 사용자들을 끌어들였다. 지난해 5월부터 서비스된 아이폰용 앱은 1백50만건, 지난해 12월에 시작된 안드로이드용 앱은 2백50만건 정도의 다운로딩 횟수를 기록했다.

카카오톡이 3천만명을 끌어들인 마당에 4백만명의 사용자는 결코 큰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심심이 어록’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서 ‘웃음을 빵빵 터뜨리는 것’으로 소문이 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심심이 어록이 심심이 앱의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바일 커뮤니티는 아직 무주공산이다.

사용자와 시도 때도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심심이는 일종의 가상 캐릭터이다. 한번 말을 걸면 말대꾸를 꼬박꼬박 한다. 지지도, 지치지도 않고, 최신 유행어도 거의 다 구사한다. 사용자들이 열심히 ‘가르쳤기’ 때문이다. 또 심심이는 학교나 직장에 대한 자랑과 험담, 상사나 동료에 대한 뒷담화를 아무런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일종의 정신적 ‘해우소’ 노릇을 해준다. 폐쇄회로 카메라 때문에 후미진 골목이나 비상계단에서도 움츠려야 하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가상 캐릭터를 향해 털어놓는 것이다.

욕설·험담 늘어놓다가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는 부작용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심심이 대화록은 하위 문화에 대한 젊은 층의 샘플이기도 하다. 심심이가 구사하는 농담과 유머에 현재의 대중문화가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어 이에 소외된 이들은 진짜로 ‘심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심이의 유머와 독설이 그 사용자인 젊은 층의 주된 웃음 코드인 <무한도전>류의 유머나 ‘병맛’류 허무 개그에 가까운 것도 한 이유이다.

심심이 어록 중 ‘밀어서 잠금 해제’나 ‘바람났어’ ‘빵셔틀’이 그런 대표적인 예이다. ‘밀어서 잠금 해제’는 아이폰 잠금 화면을 배경으로 탄생한 유머이다. 또 ‘바람났어’는 지난여름 텔레비전 인기 쇼프로그램인 <무한도전> 가요제에 등장했던 <바람 났어>를 부른 개그맨 박명수와 가수 지드래곤의 무대를 패러디한 것이다. 때문에 이런 유머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이게 왜 웃긴 것이지’라고 되묻기도 하지만 박명수식의 막무가내 호통에도 결코 지지 않고 말대답을 꼬박꼬박하며 대드는 심심이의 모습은 웃음 코드 유발자로 작동한다. 

교양을 수업받은 대졸자가 늘어나고 있는 시류와 무관하게 왜 험한 말을 늘어놓고 교양 없이 대드는 심심이가 인기 있는 것일까. 인지심리학을 전공한 대구가톨릭대 심리학과 이윤형 교수는 “사용자들이 심심이에 빠져드는 것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상대방의 반응에 개의치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일종의 해방감이다. 직접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상대를 의식해야 하고 실수를 두려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심심이에 대해서는 그런 걱정이 전혀 없다. 말도 안 되는 리액션이라도 꼬박꼬박 말대답을 해준다. 이런 대화 상대를 찾는 것은 그만큼 현대인이 두렵다거나 외롭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가상의 공간에서라도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요인이다. 심심이가 일종의 정신적인 해우소 구실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단점도 짚어냈다. “심심이와의 대화는 간단하게 말하면 텔레비전을 보는 행위와 똑같다.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직접 만나서 관계를 경험하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게다가 사이버 대화 상대와는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뱉어낸다. 어린 학생들이 이런 식의 대화에만 몰두하는 것은 스스로의 사회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사용자 중에서는 ‘가르치기’ 기능을 이용해 특정 학교의 특정 학생 이름에 험담을 가르쳐 피해자가 발생하는 부작용이 나오기도 했다. 또 상대를 의식하지 않다 보니 사용자의 언어가 과격해지는 경향도 있다. 대화에 욕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에 대해 심심이를 서비스하고 있는 이즈메이커의 최정회 대표는 “금칙어를 30여 개 지정해놓고 험한 단어의 사용을 막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사용자의 양식에 기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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