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상자’ 가고 ‘만능 TV’시대 열린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1.12.1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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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TV 첨단 혁명의 원년…음성·동작 인식 등 더 똑똑해진 스마트TV 속속 출시


2012년 새로운 TV 시대가 열린다. 지난해 등장한 스마트TV가 내년부터 더 똑똑하게 진화할 전망이다. 런던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인 만큼 TV 제조업체들은 그동안 공들여 개발한 제품을 내놓을 태세이다. 지상파 방송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바보상자’로 취급받던 TV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법한 만능 TV로 거듭나고 있다. 이렇게 된 배경 중 하나가 하드웨어의 눈부신 발전이다. 눈으로 보는 제품인 만큼 특히 디스플레이는 브라운관-LCD(액정 표시 장치)·PDP(플라즈 마디스플레이 패널)-OLED(유기 발광 다이오드)로 발전을 거듭했다. 화장대만 한 크기가 벽에 걸 수 있을 정도로 얇아졌다. 흑백에서 컬러 시대를 거쳤고, 최근에는 HD(고해상도)로 화질도 개선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세계적인 TV 강국으로 성장했다. 브라운관 TV 시절, 소니를 위시한 일본 TV에 뒤졌던 한국 TV는 2000년 이후 일본을 따라잡았다. 지금은 세계의 TV 2대 중 1대가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일 정도로 한국 TV의 세계적 위상은 대단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고 있는 IFA 2011의 삼성전자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삼성 스마트TV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들을 체험하고 있다.

삼성·LG, 2012년에도 세계 TV 시장 견인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삼성전자는 55인치 능동형 유기 발광 다이오드(AMOLED) TV를 선보인다. LCD(액정 디스플레이)는 자체 발광하지 않아 별도의 백라이트(back light)가 필요하지만, OLED는 자체 발광하므로 백라이트가 필요 없다. AMOLED는 OLED의 한 종류인데, 기존 LCD TV보다 두께가 절반 정도 얇아지고, 특수 유리나 플라스틱을 이용해 구부리거나 휠 수 있는 디스플레이 기기도 제작할 수 있다. 화질과 반응 속도도 좋아서 OLED는 차세대 TV 디스플레이라고 불린다. 삼성전자는 ‘그랑크루’라는 코드명으로 이 TV 개발을 극비리에 진행해왔다고 한다. 그랑크루(Grand Cru)는 1등급의 포도밭을 뜻하는 와인 용어이다. 삼성전자는 AMOLED TV로 기존 LCD TV와 종(種)이 다른 개념이라는 점을 강조할 전망이다. 또 내년 7월 개최되는 런던올림픽 시즌에 앞서 빠른 응답 속도, 넓은 시야 각도, 선명한 화면이라는 AMOLED의 특성을 내세워 대대적인 마케팅에 돌입할 예정이다.

LG전자는 3D TV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특히 안경이 필요 없는 무안경 3D TV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기존 3D TV는 일정한 거리와 각도를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않고 시청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헤드트래킹(head-tracking)이라는 기술을 적용한다. 헤드트래킹은 제품에 장착된 카메라가 사용자의 눈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해서, 눈 위치가 상하좌우로 이동한 만큼 3D 영상의 시청 각도와 시청 거리를 자동으로 계산해 최적으로 맞추는 기술이다. LG전자 관계자는 “내년에 어떤 3D TV를 내놓을지를 공개하기에는 시기상조이지만, 3D TV를 강화해나갈 방침만은 변함이 없다. 특히 무안경 3D TV를 개발하기 위해 5년을 투자했다”라고 밝혔다. 

화질과 3D 선명도 면에서 한국 기업은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디자인까지 신경 쓰고 있다. 비근한 예가 베젤(테두리)을 없앤 디자인이다. 디스플레이 주변 테두리를 줄일수록 대형 TV가 잘 팔린다는 베젤의 법칙이 있다. 내년에 50인치급 TV를 선보일 TV 제조업체들은 베젤을 얇게 또는 아예 없앤 디자인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올해 베젤 5mm 제품을 선보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베젤을 없애는 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베젤이 없어지면 전원 스위치나 스피커 위치가 바뀔 수밖에 없다. 이들을 어디에 장착할 것인가도 기술이고 특허이다”라고 설명했다. 

세계도 일본을 능가하는 한국 TV업체들의 기술력을 인정한다. 비근한 예로, 지난해 소니에 TV 생산을 맡겼던 구글이 올해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제품 생산을 의뢰했다. 삼성전자는 막바지 조율 중이고, LG전자는 생산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구체적인 생산 시기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내년 CES에서 구글TV 출시 시기를 발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TV의 숙제는 ‘소프트웨어 개발’

한국 TV는 하드웨어 면에서는 최고 수준이지만, 소프트웨어 면에서는 미흡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이 과거 PC와 스마트폰을 생산했지만 세계 시장을 이끌지 못했던 이유도 운영 체제(OS)를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마트TV 시대에 OS를 개발하지 못하면 PC와 스마트폰 시대처럼 TV 시장에서도 외국 기업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중국과 타이완 등 TV 후발 주자들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지난 10월 이마트가 판매한 ‘통큰 TV’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보다 40%가량 저렴해, 판매 5시간 만에 1천대가 팔리면서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그 TV가 LCD 생산량 세계 1위 업체인 타이완 TPV 사의 제품이다. 중국과 타이완은 이처럼 발 빠르게 TV 시장을 점령해오고 있다.

정광수 스마트TV포럼 운영위원장은 “구글이 지금은 한국에 TV 생산을 의뢰했지만 언제든지 중국과 타이완으로 옮길 수 있다. 하드웨어 기술력만으로는 미래 TV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과거처럼 TV를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TV를 팔면 각국에 서버를 설치하고 그 나라에 맞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출시해야 한다. 이런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기반, 즉 운영체제(OS)도 중요하다. 애플의 iOS,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이미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OS이다. 이들 업체는 TV에도 같은 OS를 적용해 TV,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여러 기기의 연계성을 높이고 있다. 심지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스마트폰 OS도 안드로이드이다. 그러면서도 TV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OS를 사용한다. 호환이 어렵다. 현재는 억지로 연계시켜놓았지만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이나 기기가 나올 때마다 연계하는 작업을 해주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내년에 스마트TV 시장에 뛰어들 기세이다. MS는 이미 세계 곳곳에 판매된, 윈도 기반의 엑스박스(XBOX) 3천5백만대를 TV 셋톱박스로 활용할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애플·구글·MS 등 전통적인 TV업체가 아닌 기업이 TV 산업에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은 콘텐츠의 힘이다. 이미 ‘애플TV’라는 셋톱박스로 콘텐츠의 힘을 확인한 애플은 내년께 가칭 iTV라는 제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고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는 생전에 TV를 개발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전기에서 “나는 완벽하게 사용하기 쉬운 통합 텔레비전 세트를 만들고 싶다. 사용자가 더는 DVD 플레이어나 케이블 채널을 이용하기 위해 복잡한 리모컨을 만지작거릴 필요가 없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사용자 환경을 갖출 것이고, 결과적으로 나는 그것을 잘 해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외신을 종합하면 애플은 2012년이나 늦어도 2013년에는 32인치에서 55인치까지 세 가지 화면 크기의 iTV를 선보인다. 애플 전문 애널리스트인 진 먼스터는 애플이 인터넷, 클라우드를 연계한 iTV를 1천6백~1천8백 달러에 출시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보고서까지 내놓았다.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이미 세계적으로 수천만 대 이상 판매된 데다 아이튠스라는 강력한 콘텐츠가 있는 만큼 애플이 TV를 출시하면 시너지 효과를 볼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구체적인 출시 시기에 대해 애플 관계자는 “애플은 미래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이 원칙이다. 세간에 떠도는 모든 소문에 대해 애플은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구글도 ‘구글TV 2.0’ 버전을 내놓는다. 지난해 소니가 출시한 구글TV는 기존 스마트 TV와 차별성이 없고, 사용법이 복잡하며, 콘텐츠도 부족해서 실패했다. 구글은 올해 삼성전자와 LG전자로 생산처를 바꾸었다. 스마트TV 시장도 무르익었고, 100여 개의 유튜브 동영상 채널을 확보하는 등 콘텐츠도 강화했다.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안드로이드 마켓을 통해 다양한 어플리케이션도 구글TV에서 활용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구글TV, 애플TV, LG 3D TV.

앞으로 나올 TV는 사용자 편리성 강조할 듯

현재 TV 산업의 큰 흐름은 스마트TV의 진화이다. TV로 인터넷은 기본이고, 영화, 사진, 음악, 게임, 쇼핑, 드라마, 스포츠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처럼 어떤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TV 활용도는 한없이 넓어질 것이다. 또 스마트폰, 태블릿PC, 컴퓨터 등과도 자료를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형 제품인 스마트폰과 태블릿PC와 달리 TV는 전통적인 가족형 매체이다. 아무리 TV가 똑똑해도 가족 구성원이 사용하기에 불편하면 소용이 없다. 지금까지 TV가 가정의 안방을 차지한 것은 켜고 끄고 채널을 바꾸는 정도의 단순함 때문이었다. 애플TV를 사용하고 있는 회사원 김영철씨(30)는 “한 기업이 출시한 스마트TV는 TV를 보면서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다지만 사실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TV 화면이 가려진다. TV도 아니고 컴퓨터도 아닌 셈이다. 따라서 TV는 TV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제품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기능도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나올 TV는 사용자 편리성(UX)을 강조할 공산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로 리모콘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있다. 애플은 아이폰4S에서 선보인 음성 인식(Siri) 기능을 TV에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음성 인식은 ‘EBS’ ‘장동건 드라마’라고 말하면 그 채널로 이동하는 기술이다. 밀가루 반죽이 묻은 손으로 휴대전화를 만지지 않고 전화를 받는 광고 장면이 있다. 이것이 동작 인식 기능인데, 이것 역시 TV에 도입될 기술이다. 또 스마트폰처럼 TV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면 채널이 바뀌는 제스처 인식 기술도 있다. 정광수 스마트TV포럼 운영위원장은 “TV를 누가 켜느냐에 따라 방송과 광고가 달리 나올 수 있다. 예컨대, 아버지의 휴대전화나 음성으로 TV를 켜면 스포츠 프로그램과 자동차 광고가 나오고, 어머니가 켜면 드라마에 화장품 광고가 방송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시청률에 따라 광고를 붙였지만 스마트TV 시대에는 광고 클릭 수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만큼 개인에게 맞는 광고가 등장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아파트나 자동차 창문이 TV로 변신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홀로그램(허공에 구현하는 입체 영상)과 증강현실(현실 세계와 가상 디지털 정보를 겹쳐 보여주는 영상) 등 기술 발달은 디스플레이 없이 4차원(4D) 방송을 몸으로 느끼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 2012년은 이런 TV 시대로 진입하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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