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검은 커넥션’, 어디까지 뻗쳤나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12.1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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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원자력발전소, 중고 부품 납품 등 비리 잇달아 터져…한수원 고위직 연루 가능성도 제기돼

이번 중고 부품 납품 비리 사건에 연관된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자력발전소 전경. ⓒ 시사저널 전영기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수상하다. 최근 부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특허 기술 유출 사건과 중고 부품 납품 비리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상급 기관인 한수원도 덩달아 뭇매를 맞고 있다. 게다가 비리 수사 과정에서 한수원의 임직원들이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앞으로 사태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덩달아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도 커져가는 흐름이다.

이번 고리원전의 비리 사건은 원전 납품업체 사이의 입찰 경쟁 과정에서 불거졌다. 지난 5월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전 1호기와 2호기의 터빈 밸브 작동기 입찰 때 ㅎ사는 회사가 보유한 특허 도면으로 입찰에 홀로 참가했다. 하지만 두 개 이상의 업체가 참가하지 않아 입찰이 취소되었다. 이어 6월에 열린 2차 입찰에는 ㅂ사 등 두 개 업체가 추가로 참가해 모두 세 개 업체가 경쟁했다.

한수원은 입찰을 받고 난 뒤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입찰에 응한 업체 가운데 ㅎ사와 ㅂ사가 제출한 터빈 밸브 작동기 설계도면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수원이 소명을 요구하자 ㅂ사는 거부했고 입찰에서 자동으로 탈락했다. 결국 지난 7월 ㅎ사가 최종 낙찰되었고, 한수원은 ㅎ사와 68억원의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ㅎ사는 설계도면과 관련된 의혹을 떨칠 수 없었다. ㅎ사는 ‘한수원 직원이 도면을 빼돌리지 않았다면 특허 기술을 보유한 ㅎ사와 똑같은 도면을 ㅂ사가 제출할 수가 없다’라면서 ㅎ사의 영업 비밀을 빼낸 혐의로 ㅂ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30억원대 비자금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결국 지난 12월5일 부산지방경찰청은 고리원전 터빈 밸브 작동기 입찰에서 최종 낙찰된 ㅎ사의 핵심 설계도면 등 영업 비밀을 빼낸 혐의로 한수원 기계과장 이 아무개씨(41)와 입찰 업체 ㅂ사의 대표 장 아무개씨 등 ㅂ사 관계자 네 명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과장은 지난 4월 초 장씨 등에게 “ㅎ사가 한수원에 납품한 터빈 밸브 작동기 설계도면과 절차서를 빼내 달라”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이과장은 자신의 ID로 한수원 서버에 접속해 설계도면 등을 이동식 저장 장치에 담아두었다가 이메일로 ㅂ사측에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장과 입찰 업체 대표 장씨 등은 현재 모두 검찰에 불구속 송치된 상태이다. 

그러자 원전 입찰 과정에서 밀려난 데 이어 경찰 수사까지 받게 된 ㅂ사는 ㅎ사의 ‘납품 비리’를 폭로하며 반격에 나섰다. ㅂ사는 ㅎ사가 한수원에 터빈 밸브 작동기를 납품하면서 터빈 밸브 작동기의 부속품인 ‘칼럼’과 ‘매니폴더’를 중고품으로 납품해왔다며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ㅎ사는 고리원전 3호기와 4호기를 운영하는 고리 제2발전소에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모두 세 차례 총 32억여 원어치의 터빈 밸브 작동기를 납품했다. 검찰 수사 결과 ㅎ사는 이 과정에서 원전 직원과 짜고 덮개 구실을 하는 ‘칼럼’과 배관 구실을 하는 ‘매니폴더’를 교체할 때마다 원전 창고에 보관 중인 중고 제품을 빼내 새 제품처럼 위장해 납품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2월8일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고리원전 제2발전소 김 아무개 팀장(48)을 구속했다. 김팀장은 ㅎ사 등을 포함해 10여 개 납품업체들로부터 3억3천9백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수사 소식을 접하자마자 고리원전 납품 비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한수원의 신 아무개 과장과 ㅎ업체 대표 황 아무개씨는 잠적했다. 이후 지난 12월15일 신과장은 검찰에 구속되었다. 검찰에 따르면 신과장은 2008년부터 고리 제2발전소에서 터빈 밸브 작동기의 2차 계통에 속하는 부품을 교체하면서 ㅎ사와 짜고 중고품을 납품받아 사용하는 대가로 ㅎ사로부터 3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중고품 납품 과정에서 ㅎ사가 약 3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납품 비리 및 비자금 조성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황대표의 소재를 파악하는 한편, 30억원대의 비자금이 흘러간 곳으로 수사망을 넓히고 있다. 비자금의 규모로 보아 이번 납품 비리 사건에 한수원 고위직이 연루되었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사고로 멈춘 3호기는 납품 비리에 연관된 것”

이번 고리원전 납품업체들의 맞불 놓기 식 폭로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다름 아닌 한수원이었다. 사태가 이 정도로 번질 때까지 한수원에서는 내부 비리에 대한 감시가 전혀 없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한수원의 한 관계자는 “입찰 과정에서 (한수원) 내부 문제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자체 조사를 하는 도중에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자체 조사 결과 도면 유출로 문제가 된 이과장이 지난 10월21일 보직 해임되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모두 12월 초에 보직 해임되었다. 직원 징계 차원에서 최고 수위이다. 사실 한수원 직원이 8천5백명 정도인데 한 사람의 개인적 비리를 일일이 다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수원이 고리원전 비리 의혹에 휘말린 것에 대해 지역 관계자들은 “터질 것이 터졌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수원은 그동안 발전소 운영을 독점하면서도 내부 운영이나 안전에 대한 정보 공개를 극히 제한해왔다. 이처럼 폐쇄적인 운영 구조는 자연히 각종 부패와 비리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 12월7일 부산반핵시민대책위원회(반핵대책위)는 고리원전 중고 부품 납품 비리 사태에 대한 정보 공개 요구에 나섰다. 반핵대책위는 이날 제출한 성명서에서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발전소 운영의 관행과 부도덕은 그들(한수원) 자체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개방되고 참여적인 조사를 통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한수원이 각종 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원전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고리원전 가동 중지 가처분 소송을 벌이고 있는 부산변호사회 산하 환경특별위원회는 지난 12월12일 긴급 모임을 열었다. 이날 모임이 열린 것은 최근 한수원 직원 비리가 이어져 원전의 안전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을 우려해서였다. 이날 모임에서 회원들은 원전 중고 부품 납품 비리를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원전의 안전성’ 문제와 연계하기로 했다. 

환경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강동규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진행하는 가동 중지 가처분 소송은 설계 수명이 다한 고리 원전 1호기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3호기와 4호기 납품 비리 사건이 1호기와도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미 납품 비리 의혹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같은 일이 3, 4호기 일부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부분에 모두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오늘(13일) 고리3호기가 중단되었다. 이번 납품 비리에 연루된 것이 바로 고리 3호기인데 (비리와) 무관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한수원측은 발전기 가동을 위한 핵심 부분과 연관이 없는 부속품에 관련된 것이라 ‘안전성 문제’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말만 있을 뿐 구체적 해명 자료가 없다. 한수원이 내부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성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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