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북한을 눌러앉힐 수 있을까
  • 박승준│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
  • 승인 2011.12.18 21: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정부, 최근 북한에 협력 주문…6자회담보다 ‘한반도 위기 관리 시스템’ 시급하다는 입장 전해

지난 11월17일 리지나이 중국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주임(가운데)이 고위 군사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과 만나고 있다. ⓒ 연합뉴스
글린 데이비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2월14일 베이징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과 만났다. 중국 외교부는 “6자회담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라고만 간단히 밝혔다. 지난 10월 스티븐 보즈워스 전 대표로부터 임무를 넘겨받은 데이비스 대표는 처음으로 한·중·일 3개국 순방에 나섰고, 지난 12월7일 서울에 도착해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나 1시간5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지난 10월 말 2차 제네바 북·미 회담 이후 북한의 태도 변화를 평가하고, 남북 간, 또 북·미 간 ‘3라운드’ 접촉과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고 우리 외교통상부는 밝혔다. 중국 정부는 데이비스 대표의 방중을 앞두고 11월28일 쉬부(徐步) 외교부 조선반도사무 부대표를 평양으로 보내 리용호 북한 6자회담 대표단장, 리근 미국국 국장과 만나 6자회담에 관한 두 나라 간의 의견을 사전 조율했다.

데이비스 대표가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과 중국을 방문해서 6자회담에 관한 업무 파악에 나섰지만, 2003년에 시작되어 이미 8년차의 ‘고령(高齡)’에 접어들어 맥이 풀려버린 6자회담이 새해 들어 다시 힘차게 맥박이 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고, 중국에서도 ‘하반기에 베이징에서 제18차 중국공산당 당 대회를 개최하기로’ 2011년 10월에 발표해놓은 터라 후진타오(胡錦濤) 당 총서기의 지휘권도 시진핑(習近平) 정치국 상무위원에게로 넘어가는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거의 예외 없이 권력 교체기에는 대내외적으로 절대 안정책을 취하는 것이 동서고금 권력의 정석(定石)이다. 역시 변수는 북한이다. 지난 12월8일 미국 외교협회(CFR)가 전문가 3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위기 예방 우선순위’ 조사에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내년 미국의 10대 ‘1급 위기’ 가운데 두 번째로 조사되었다고 발표했다. 실제 미국의 외교·국방 전문가들은 내년 북한의 군부 동향을 매우 조심스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과연 격동의 2012년 동북아 정세에서 북한은 또다시 무력 도발을 감행할까.

지난 11월 중국과 북한의 군부 핵심 회동

‘북한 돌발 변수’ 가능성에 대해 영향력을 가장 크게 행사할 수 있는 국가는 역시 중국이다. 중국은 6자회담 말고 ‘한반도 위기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천명하고 있고, 또 남북한에 이를 촉구하고 있다. 베이징과 평양 사이에는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겸 국무원 총리로 내정된 리커창(李克强)이 지난 10월25일 김정일을 찾아가 미리 취임 인사를 하고 온 적이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볼 대목이 하나 있다.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주임인 리지나이(李繼耐) 상장이 고위 군사대표단을 이끌고 11월15일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일과 만난 것이다.

리지나이가 김정일과 만나는 자리에는 인민해방군 공군 부사령관 천샤오궁(陳小工), 해군 북해함대 정치위원 왕덩핑(王登平), 지난(濟南) 군구 참모장 자오중치(趙宗岐), 총후근부(군수사령부) 부부장 딩지예(丁繼業) 등이 배석했다. 중국의 해군 북해함대 정치위원은 서해 일원의 한반도 및 일본과 맞닿은 해역의 전략 목표와 방향을 결정하는 인물이고, 지난 군구 참모장은 산둥(山東) 성 일원의 육·해·공군의 지휘권을 쥐고 있는 인물이다. 거기에다가 공군 부사령관과 총후근부 부부장까지 포함되었으니, 중국과 북한 사이에 한반도 일원의 전쟁 상황 점검이 충분히 가능한 대표단 구성이었다. 여기에 북한측에서는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차수, 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김정각 대장이 배석했다. 중국과 북한 간에는 한반도 주변의 군사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깊이 있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관영 신화통신이 평양발로 전한 리지나이와 김정일의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제적인 풍운이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조선의 당과 정부는 조·중(朝中) 간의 전통적인 우의를 튼튼하게 발전시켜나갈 것이며, 쌍방 간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고,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다.”(김정일)

“새로운 역사의 시기에 중국은 조선과 함께 양국 지도자들이 이루어놓은 공동 인식에 따라 상호 간의 이해와 신뢰를 부단히 증진하고, 실무적인 교류를 긴밀하게 하며, 이웃 간의 우호 협력 관계가 전면적으로 발전하도록 촉진해나가기를 희망한다. 당면한 국제 정세와 지역 정세에 따라 중국 정부는 조선 반도 관련 문제에 관한 원칙과 입장을 지킬 것이며, 조선과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다.”(리지나이)

중국, 미국에 맞선 ‘한-중-일 협력’ 절실

지난 8월26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국경절 전야제에 참석한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시진핑 상무위원(맨 오른쪽). ⓒ 연합뉴스
김정일과 리지나이가 주고받은 말의 키워드는 ‘평화와 안정’이었다. 다시 말해 리지나이가 김정일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주문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리지나이가 김정일과 만나기 며칠 전인 11월12일 하와이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 기구)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내년(2012년) 이후의 중국과 미국 관계에 관한 세 가지 의견’이라는 전제를 달아 이런 말을 했다. “첫째 서로 존중하고 신뢰(互存互信)해야 하고, 서로의 이익을 공동 추구(互惠互利)하며, 함께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同舟共濟) 정신으로 협력해나가자.”

후진타오는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기 위해 “서로 상대방의 핵심 이익을 인정해야 한다. 동주공제의 정신으로 이란과 조선(북한) 핵문제를 해결해나가자”라고도 했다. 후진타오가 말한, 서로의 핵심 이익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의 뜻 속에는 한반도에서 미국이 한국에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영향력을 미국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동주공제의 정신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해나가자는 말은 북한 핵문제 해결에 중국과 미국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었다.

후진타오가 오바마에게 한 말과, 리지나이가 김정일에게 한 말을 연결 지어 진단해보면, 후진타오의 말 속에는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각각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 변화가 오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리지나이로 대표되는 중국 군부가 평양으로 김정일을 찾아가서 한 말들의 주제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해·공군 사령관급 지휘관이 북한군의 최고 지휘관들과 주고받은 말들의 큰 흐름 역시 북한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설득하는 자리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이른바 ‘재개입(Re-engagement)’이라는 포위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으로서는 한-중-일 협력을 통해 그 포위망을 뚫어야 할 형편이다. 한반도에서 또다시 지난해와 같은 난기류(亂氣流)가 형성되는 것을 반가워할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내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8차 당 대회에서 후진타오가 쥐고 있던 당권이 시진핑에게로 이양되고, 2013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국가주석직을 다시 시진핑에게 물려줄 때까지 중국에게 주변 환경의 안정은 꼭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