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로열패밀리 ‘상석’에 서다
  • 진희관│인제대 통일학연구소장 ()
  • 승인 2011.12.26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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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고모, 평양 주석궁 ‘실권자’로 떠올라…고모부 장성택은 실무 보좌에 그칠 듯

김정일의 생전 마지막 현지 시찰로 알려진 광복지구상업중심 현지 지도 모습(조선중앙통신 12월15일자 게재). 김정일 바로 뒤에 김경희가, 그 뒤로 김정은이 있고, 장성택은 한 사람 건너 뒤에 있다. ⓒ AP연합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급사로 후계자 김정은은 곧바로 북한의 영도자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영도자를 북한의 통치 논리인 주체사상의 영도 체계 방식으로 표현하면 곧 ‘수령’이 된다. 수령이란 비제도적 권력이자 직함으로 최고 지도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당과 대중을 영도하는 위상을 갖는다. 

이제 김정은 북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북한의 최고 지도자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유했던 최고 지도자의 직함들을 승계해나가는 절차를 조속히 밟게 될 것이다. 즉 최고사령관, 국방위원장, 당 총비서 및 당 중앙군사위 위원장이 그것이다. 과거 아버지 김정일이 3년상을 보내고 나서 권력 이양 절차를 진행한 것에 비해 김정은으로의 이양 속도는 훨씬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김정일은 후계자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20년간 지켰던 과정이 있지만, 김정은은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길어야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만큼 현재 김정은 부위원장의 권력 기반은 취약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역시 김정일의 가계, 즉 평양 주석궁의 로열패밀리들이다.

사실상 봉건 왕조 체제인 북한에서 김정은의 친인척들은 동지인 동시에 또 가장 강력한 ‘정적’이 될 소지를 안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은 단연 고모부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다. 일각에서는 장성택 부장을 조선 왕조의 ‘수양대군’에 빗대기도 한다. 조카인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는 흥미를 끌기 위한 가설에 불과하다. 장성택 부장은 김씨 왕조에서 ‘김씨’가 아닌 ‘장씨’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작 눈여겨보아야 할 인물은 장성택의 아내이자, 김정은 부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의 행보이다.

김경희, 김정은 뒤 받치며 ‘곁가지’들 단속

2008년 8월 김정일의 건강 이상 이후 후계자 결정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고, 2009년 상반기에 김정일의 현지 지도를 가장 많이 수행한 인물이 바로 김경희이다. 그리고 2010년 9월에는 김정은과 함께 갑작스레 대장 칭호를 수여받았고,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위원에 오르게 된다. 당시 남편인 장성택은 후보위원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마지막 현지 지도가 된 광복지구상업중심(구 광복백화점) 현지 지도 당시 에스컬레이터 이동 장면 사진에서 김정일 바로 세 계단 뒤에 김경희가 혼자 서 있고, 두 계단 뒤에 김정은 그리고 다른 인물들이 두 계단을 채우고 나서 그 뒤에야 장성택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광경은 김경희와 장성택의 위상 차이를 한눈에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국가 장의위원회 명단에서도 김경희는 열네 번째이며, 장성택은 열아홉 번째에 거명되었고, 12월20일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조의식 참배자 명단에서도 김경희는 김정은을 제외하면 네 번째에 거명되었고, 장성택은 열다섯 번째에 거명되는 등 부부간에 현격한 위상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신년 공동사설 제목에서 경공업과 농업을 강조한 것, 그리고 올해 신년 공동사설 제목에서 ‘다시 한번 경공업에 박차를 가하여…’라고 재차 강조한 것도 당 경공업부장을 맡고 있는 김경희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을 지원하는 배후 세력의 실무는 장성택 부장이 담당할 수 있겠으나, 그 뒤에는 김경희의 지도력이 버티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평양 주석궁 로열패밀리의 최고 어른 자리와 함께 실권은 곧 김경희가 쥐게 되는 것이다.

김정철·김옥·김설송은 권력 뒤편으로

그런데 이번 장례 의식을 보면서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김정은 부위원장이 상주 역할을 맡고 있고, 여동생 김여정이 등장한 것으로 보이지만, 친형 김정철의 모습은 북한 매체에서 전혀 보도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복형인 장남 김정남의 경우 이미 권력 구도에서 멀어진 인물이라 당연시되지만, 김정철은 또 사정이 다르다. 이것은 영도자인 수령은 1인이라는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한 상징 조작이 아닌가 판단된다. 따라서 이후에도 김정철은 상당 기간 권력 구도 중심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최근까지 김정일을 수행했고, 지난 5월 중국 방문과 8월 러시아 방문을 근접 수행했던 김옥이라는 인물 역시 관심권 내에 있다. 김정일의 네 번째 부인으로 불리고 있는 그는 북한 TV 보도에서 참배 장면이 보도되었다. 그는 장의위원 중에서 김정은 부위원장을 향해 깍듯이 오랜 시간 고개를 숙여 예를 표시했고, 김부위원장은 가벼운 목례만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김옥은 김정일의 생존 때에는 수행비서로서 그 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으나, 김정일 시대 이후에는 그 위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의 증언에 따르면 과거 김정은이 어린 시절에 김옥을 아무런 경칭 없이 ‘옥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 명 최근 떠오르는 인물은 김정일의 장녀인 김설송이다. 1973년생으로 김정은 부위원장보다 약 열 살 정도 위의 이복누나로 알려진 김설송은 김정일의 두 번째 부인인 김영숙이 생모이다. 하지만 김씨 왕조에서 김정일의 실제 본부인은 김정은 부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가 아닌 김영숙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 때문에 한때는 그 적통인 김설송을 후계자 구도에 올리기도 했다. 실제 최근 영국의 한 언론에서는 그를 장성택, 김정남과 함께 권력 투쟁의 한 축으로 소개했다. 그동안 김설송은 북한 핵심 권력 기관인 조직지도부 내에 있으며, 아버지 김정일의 신변 호위와 일정 등을 관리해왔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김설송 역시 후계자 김정은의 위치에서 보면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 또한 김옥과 마찬가지로 김정일의 사망과 함께 권력의 뒤편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처럼 후계자 김정은 주위의 로열패밀리 또는 과거 김정일의 최측근들의 위상을 볼 때, 현재 김정은의 지위를 위협할 만한 인물은 발견하기 어렵다. 더욱이 후계자는 당의 결정에 의한 것이며, 이에 대해 도전하는 것은 당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 속성상 가능성을 찾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고모부 장성택의 실무 보좌와 고모 김경희의 막후 세력에 의한 지원만이 존재할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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