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새 환경 파괴자, ‘전자 쓰레기’의 역습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01.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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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매일 1천3백95t의 폐전자제품 쏟아져…대안은 폐전자제품 재활용 기술에 달려

가나의 한 마을에 있는 폐기물 처리장에 외국에서 흘러들어온 폐전자제품이 널려 있다. ⓒ EPA연합

디지털 기술(IT) 혁명은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은 우리에게 새롭고 놀라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전자 쓰레기’라는 전 지구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전자 쓰레기나 전자 폐기물은 소비자가 팔거나 기부하거나 버린, 낡고 수명이 다해 더는 가치가 없게 된 여러 가지 형태의 전기·전자 제품을 뜻한다. 그런데 무심코 버려지는 전자 쓰레기들에 의해 어린이들이 중금속에 노출되고 환경 오염 문제까지 일어나고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된 디지털 재앙! 이제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까?

2012년 12월31일 새벽 4시. 전국의 아날로그 TV 방송이 전면 중단되고 디지털 방송이 시작된다. 그런데 수많은 구형 TV가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되면서 쓰레기 신세가 될 처지에 놓여 있다. 오늘날 전자 쓰레기의 양은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과 맞먹을 만큼 엄청나다. 보도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시간당 4천t의 전자 쓰레기가 생겨나고 있다.

컴퓨터는 구입한 지 1년만 지나도 구식이 된다. 휴대전화는 번호 이동 제도를 미끼로 소비자들을 뜨겁게 유혹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자주 휴대전화나 컴퓨터, TV, 오디오 장비, 프린터 등을 업그레이드하고 교체한다. 휴대전화 단말기는 다른 전자제품에 비해 수명이 매우 짧다. 2007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용자의 80% 이상이 3년을 넘기지 못하고 휴대전화기를 교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전자제품들의 상품 주기가 짧아지고 이로 인해 생겨나는 전자 쓰레기들은 큰 골칫거리이다.

우리가 평생 살아가면서 쓰고 버리는 전자제품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2006년 영국 왕립예술협회(RSA)는 영국 시민의 경우 평균적으로 냉장고 다섯 대, 전기난로와 TV 각각 여섯 대, 세탁기 세 대, 컴퓨터 여덟 대, 휴대전화 35대를 포함해 모두 3.3t의 ‘전자 쓰레기’를 배출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 시민들도 이와 별 차이가 없거나 어쩌면 더할 것이다.

국내에서는 해마다 TV·세탁기·냉장고 같은 전자제품이 1천5백만대 이상 버려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 무게로 치면 50만9천t이다. 매일 1천3백95t 분량이 버려지는 셈이다. 이러한 폐전자제품은 창고에 쌓였다가 재활용하거나 폐기된다. 폐휴대전화의 경우 재활용이 16%, 재사용은 6.3%이고, 폐건전지는 7.4%만 분리수거되어 재활용되고 있다.

자원으로 인식하지 못해 해외로 수출되거나 버려져

2009년 12월9일 경기도가 2개월간 모은 폐휴대전화 75만대를 용인시 처인구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에 전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가들로 수출되거나 버려지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이전까지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전자업체는 재활용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자 폐기물을 개발도상국에 수출하거나 처치가 곤란해진 폐전자제품들은 배로 실어 가난한 제3세계에 버려왔다. 선진국에서 처리하는 것보다 수출하는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또한 가치 있는 각종 금속 스크랩들은 중국으로 탈법적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상당하다. 금속 스크랩은 금속 제품을 만들 때에 생기는 금속 부스러기나 제품의 폐물로, 쇠 부스러기가 대표적이다. 관세 당국이 폐기물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약점을 이용해 영세한 수거업체들이 중국의 수입업체와 담합을 벌여 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부에 현저히 낮은 가격을 기재하고 수출하면 중국 업체는 세금을 피할 수 있고, 한국 수거업체들은 제대로 시설을 갖추고 재활용을 하는 것보다 높은 이윤을 현금으로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사실상 국내의 ‘자원’을 해외로 유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폐전자제품에는 내부에 금과 은, 구리 같은 값비싼 금속이 들어 있어 그냥 폐기 처분하기에는 아까운 자원이다. 컴퓨터는 플라스틱, 유리, 철, 알루미늄 등 다양한 재료가 섞여 있는 인쇄회로기판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인쇄회로기판에 탑재되어 있는 중앙처리장치(CPU)에는 약 0.05~0.2g의 금이 존재한다. 또 폐휴대전화 1t에는 금 2백80g, 은 3㎏, 구리 100㎏이 들어 있다. 1t의 금광석에서 약 4g의 금이 생산되는 것과 비교하면 경제적으로도 손색없을 뿐 아니라 보물 지도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중국은 대량적인 전자 쓰레기의 인입으로 인해 세계의 주요한 전자 쓰레기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자 쓰레기 천국이다.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전자 쓰레기의 80%가 아시아에 흘러드는데, 그중 90%가 중국에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선진국으로부터 처리 비용을 받고 들여온 폐전자제품 때문에 쓰레기장으로 전락한 가나의 한 마을. ⓒ EPA연합

소각할 경우 유독 물질 발생해 인체에 치명적 악영향

중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는 이렇게 들여온 전자 폐기물을 싼 임금의 어린이들을 동원해 분해하거나 재활용하고 있다. 중국이나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는 값나가는 금속을 찾아내기 위해 독성 물질이 가득한 전자제품을 태운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들이 유독 기체를 마시게 되고, 납이나 수은 등의 중금속 오염에 무방비로 노출되게 된다. 유독 기체는 마을의 공기 속으로 퍼져나가 주민들에게도 피해를 입힌다. 국내에서도 매일 버려지는 1천3백95t의 전자 쓰레기를 10t 트럭 1백40대에 나누어 싣고 소각장이나 매립지로 운반한다고 가정하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소모되고 온실 기체가 배출될 것이다.

중금속 가운데 납은 신경 조직을 파괴하거나 간을 손상시키고, 카드뮴은 폐와 신장, 단백뇨, 후각 상실 등을 유발할 수 있다. 휴대전화기의 인쇄회로기판에 포함된 브롬계 난연재는 소각될 경우 환경호르몬과 발암 물질을 발생시킨다. 또 액정이 소각되면 유독 물질인 다이옥신이 생성되어 인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어디 그뿐인가. 한 해에 방치된 8백54만대의 휴대전화기에 포함된 납의 양은 약 2천2백20㎏이다. 물 1ℓ당 납 성분이 0.05㎎을 넘지 않아야 먹는 물 수질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2천2백20㎏의 납은 약 4천만t의 물을 마실 수 없는 물로 오염시킬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따라서 결국 대안은 재활용뿐이다. 독일의 대표적인 휴대전화 재활용업체인 그린솔루션은 지난해 독일과 영국에서 중고 휴대전화 약 100만대를 수집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중고 휴대전화를 무료로 수거해 재활용했는데, 여기서 약 20t의 구리를 회수했다.

자원이 부족한 일본 또한 재활용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폐기된 전자제품 등에서 희귀 금속을 추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본의 물질재료연구소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액정이나 태양전지에 쓰이는 희귀 금속인 인듐은 세계 매장량의 35%가 일본의 전자제품 속에 들어 있을 정도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도시 광산(urban mining)’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도시 광산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광산이 아니라 산업 폐기물과 폐전자제품에 포함된 금속을 순환 자원으로 보고 폐기물 속에 들어 있는 금속을 추출해 산업 원료로 다시 활용하는 산업이라는 뜻이다. 도시 광산은 금속 채취의 효율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일본만 희귀 금속 재활용에 앞서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독일도 전체 사용되는 희귀 금속 중 약 40%는 폐기된 전자제품으로부터 얻고 있다.

우리 정부도 해외로 수출되는 금속 폐기물을 내수로 전환시켜야 할 때이다. 희소 금속 재활용률을 20% 높이면 연간 24억2천만 달러(약 3조7백34억원)의 무역 수지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산업 원료로 활용되는 금속 자원의 30%를 도시 광산에서 충당하면 연 1백50만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것으로 계산했다. 광석에서 금속을 뽑아내는 제련산업은 ‘에너지 먹는 하마’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양의 화석 연료를 소모한다. 따라서 금속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굳이 해외의 광산에 눈독을 들일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 속 ‘노다지’를 노려볼 만하다.

전자제품 살 때, 쓰던 제품 반납하도록 의무제 해야

문제는 수거이다. 기본적으로 소비자들의 인식 부족으로 폐전자제품 수거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안 쓰는 휴대전화기이지만 남 주기는 아깝고, 팔자니 제값을 못 받는 것 같아 팔지도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집 안에 쌓여가는 ‘장롱 폰’은 늘어만 가고 있다. 소비자들 처지에서는 소형 전자제품들을 재활용한다고 해도 생길 것이 없고 귀찮기만 하니 그냥 버리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술력을 갖춘 일본도 수거 문제 때문에 도시 광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이다. 기업체나 기관이 수거 캠페인 등을 벌이지만 한계가 있다.

국내에서는 2003년부터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를 단계적으로 시행해 전자제품과 휴대전화, 복사기를 생산한 기업이 폐기물을 수거하고 재활용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생산자와 판매자에게 수거 의무를 부과하게 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아파트에서 내놓는 폐전자제품을 무료로 수거하는 방안 등 다양한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유럽연합(EU) 또한 2008년부터 전자제품 재활용 비용을 생산자가 부담하게 하는 ‘전기·전자 폐기물 처리 지침(WEEE)’을 시행해오고 있다.

쓰지 않는 휴대전화기도 제대로 된 처리 과정을 거치면 환경도 보호하고 자원도 절약할 수 있다. 따라서 환경 오염을 방지하는 차원에서라도 새 휴대전화기를 사려면 쓰던 제품을 반납하도록 하는 의무제를 도입해야 한다. 전자제품 쓰레기를 덜 배출하면서 가치 있는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 이것이 지금 세계가 가장 관심을 집중하는 대상이다.

시대에 따라 재활용의 트렌드도 변한다. 과거에는 빈 병과 폐지, 고철을 엿장수에게 주고 빨랫비누나 엿가락으로 바꿨다. 1995년 쓰레기 종량제가 시행되면서 쓰레기 배출량은 줄어들고 재활용률이 상승했다. 21세기의 재활용 트렌드는 ‘환경을 위한 설계’이다. 한번 생산한 전자제품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관리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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