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인 줄 알았는데 비싼 강장제일 뿐?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1.0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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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비타민 주사, 수액에 비타민 탄 것에 지나지 않아”

서울의 한 피부과에서 한 환자가 비타민 주사를 맞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일반인들 사이에 현대판 보약으로 둔갑했다. 사실 보약도 아닌 것에 괜히 돈만 버리는 일이다.” 이른바 ‘비타민 주사’에 대한 전문의들의 공통적인 평가이다. 비타민 주사를 맞는 사람이 많다. 웬만한 일반 동네 의원급 병원에서 비타민 주사를 손쉽게 맞을 수 있다. 비타민 주사를 찾는 사람들은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전문의들은 일반 링거(수액) 효과 정도라고 평가한다. 그나마 건강한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라고 한다. 서울대병원의 한 내과 교수는 “비타민이 우리 몸에 필요한 성분이지만 주사로 맞을 정도로 결핍 상태인 사람은 거의 없다. 단 설사·구토 등으로 탈진한 사람, 입원 중인 환자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차원에서는 필요하다. 환자에게 치료용으로 투여하는 약이 일반인에게 예방약이나 건강 비법인 양 퍼지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건강한 사람에게 비타민 주사는 박카스를 5만원에 사서 마시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암 예방할 수 있다는 의학적 근거 없어

비타민 주사는 링거 수액에 비타민을 섞은 것을 말한다. 입원 환자에게 투여하는 링거는 크게 포도당 수액과 아미노산 수액으로 나눌 수 있다. 수액에는 3대 영양소(탄수화물, 단백질, 지방)를 비롯한 여러 성분이 들어 있다. 여기에 비타민C나 비타민B 등을 섞으면 비타민 주사가 된다. 이를 칵테일 요법이라고 한다. 한때 유행했던 마늘 주사도 실제 마늘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비타민B를 넣은 수액이다.

이들 성분이 몸에 들어가면 신진대사를 높여 피로 회복 효과를 준다. 과음한 다음 날 비타민 주사를 찾는 이유이다. 서울 신촌의 한 성형외과 간호사는 “연말이라서 그런지 숙취 해소 등의 이유로 비타민 주사를 찾는 사람이 많다. 연예인들이 비타민 주사를 맞고 그 많은 스케줄을 소화한다는 소식이 퍼져 요즘 일반인들도 비타민 주사를 많이 찾는다”라고 말했다.

비타민 주사는 수액 양에 따라 짧게는 20분, 길게는 2시간 동안 정맥 주사를 맞는다. 비타민 주사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비타민이 우리 몸에 필요한 성분인 데다 많이 섭취해도 부작용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병원의 마케팅이 더해졌다. 비타민 주사를 맞으면 천식·비염 등 호흡기질환, 편두통, 근육통, 갑상선 기능항진증, 당뇨, 비만, 생리통, 불안, 우울증, 피로, 불면증 해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특히 수험생에게는 집중력을 증가시켜 학업에 도움을 주며, 여성에게는 피부 미백 효과도 나타난다고 한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비타민을 혈액에 직접 주사하므로 알약으로 먹는 것보다 효과가 좋다.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치료 수단이다. 만성피로를 풀어줄 뿐만 아니라 뇌 기능을 향상시켜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염증 및 통증을 완화하고 피부 미백 효과도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비타민 주사를 맞았다는 20대 여대생은 “친구를 따라 병원에 가서 비타민 주사를 맞았는데 다음 날 아침 피부가 좋아진 것 같았다. 실제 비타민 주사의 효과인지 잠을 푹 자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한국영양학회가 권고한 비타민C의 하루 권장량은 60~100mg 정도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과 일부 의사들은 1g 정도를 권한다. 시중에 나온 비타민 주사 대부분은 비타민 용량이 10g이다. 지난 2006년, 하루 권장량의 2백 배에 달하는 고용량 비타민 주사를 폐암 말기 환자에게 투여했더니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그 후부터 고용량 비타민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많은 연구진이 같은 연구를 했지만, 항암 효과를 입증하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전문의들은 특별한 약을 찾는 한국인의 습성과 병원의 상술이 맞아떨어져 일어난 촌극이라고 말한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사람에게 여러 가지 성분을 한꺼번에 투여하므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비타민 주사를 맞아도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한다. 의사가 좋다고 하니 일반인으로서는 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비타민 주사는 수액에 비타민을 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하루 세끼를 챙기고, 신선한 과일을 먹으면 보충할 수 있는 것을 꼭 약이나 주사로 해결하려고 하므로 비타민 주사가 인기를 얻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는 “몸에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약효를 느끼는 이른바 위약 효과(플라세보) 때문에 사람들이 비타민 주사에 빠져든다. 또 비타민을 장기 복용했다고 해서 암을 예방할 것이라는 의학적 근거는 없다”라고 말했다.

비용은 5만~10만원 선…원가는 1만원 미만

비타민 주사 비용은 5만~10만원까지 다양하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전액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패키지 상품을 선택하면 싸게 해준다는 병원도 있다. 강남에 있는 성형외과 관계자는 “한 차례 주사에 5만원인데,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면 훨씬 저렴하다. 패키지 상품은 수액에 비타민 외에도 더 많은 성분을 혼합하고 10회 이상 맞을 수 있는 비타민 주사이다. 패키지 상품은 70만~80만원 정도이다”라고 설명했다.

<시사저널>은 대학병원과 약국에서 수액 원가를 확인해보았다. 5% 포도당 수액(1ℓ)은 1천5백82원이고, 10% 아미노산 수액(0.5ℓ)은 8천4백22원이다. 여기에 섞는 비타민C는 2백원 남짓이다. 이대로라면 비타민 주사 원가는 1만원이 넘지 않는다. 대학병원의 한 간호사는 “아미노산 수액은 3천5백원에서 3만원까지 있다. 싼 링거에 다른 성분을 섞어도 원가는 1만원 정도이다. 비타민 주사가 5만원이라면 차라리 영양가 많은 밥을 해서 먹고, 식습관과 수면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비타민 주사에 대한 의존성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비타민 주사를 놓는다는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 의사는 “영양 상태에 균형이 깨진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늘 피곤하고 골골거리게 마련이다. 비타민 주사는 깨진 영양의 균형을 맞춰주는 효과를 보인다. 그러나 비타민 주사는 어디까지나 보조 요법이다. 근본적인 해결은 식습관, 생활 습관을 바꿔 몸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주사, 약, 보조 식품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비타민 주사로 일시적인 효과를 본 사람은 조금만 몸이 피곤하다 싶으면 병원으로 달려와 비타민 주사를 맞는데, 권할 만한 건강 관리법이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은 비타민 주사나 태반 주사, 마늘 주사에 더 주의해야 한다. 나트륨(소금)이 주성분인 수액을 맞으면 심장이나 신장이 안 좋은 사람에게 쇼크가 일어날 수 있다. 심장 기능이 비정상일 때 생리식염수가 많이 들어가면 혈관 용적이 넓어지거나 폐에 물이 찰 수 있다. 신장이 나쁜 사람에게는 소변 배출을 방해한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메트로웨스트메디컬센터의 전진학 감염내과 과장은 “기운을 내게 한다는 정맥 주사는 한국과 몇몇 동서양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특유한 현상이다. 그러나 (효과 면에서는) 과학적인 증거가 없으니 결국 대국민 교육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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