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촌’에 한숨만 느는 점주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1.0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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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업계, 출점 경쟁 심해 반경 2백m 안에 20곳 들어서기도…매장 수익 줄어 생계 위협받는 곳도


지난 12월21일부터 서울 대치동에 ‘365플러스’라는 간판을 단 편의점이 영업을 시작했다. 이 매장은 대형 할인점 사업을 하는 홈플러스의 최초 편의점이다. 홈플러스가 편의점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는 시점에 이들이 소자본으로 창업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델을 제공하고자 편의점 가맹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할인점업체가 편의점 사업까지 진출한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1989년 서울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단지에 1호점이 생긴 이후 편의점은 구멍가게를 몰아내고 동네 골목까지 진입했다. 다양한 제품, 생활 서비스, 24시간 영업, 밝은 실내 분위기 등이 소비자에게 먹혔다. 2011년 말 현재 전국에 2만여 개의 편의점이 있다. 2006년 인구 4천8백명당 한 개꼴이었던 점포 수가 지금은 2천명당 한 개꼴로 늘어난 셈이다. 시장 규모도 매년 12~15%씩 성장해 올해 10조원에 이른다. 단일 업종으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프랜차이즈 대표 업종으로 성장했다. 대표적인 편의점 브랜드로는 훼미리마트,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이 있다.

본사 차원 ‘방어 출점’ 등으로 편의점 난립

이 시장이 커진 것은 편의점 본사의 경쟁적인 출점 전략(공급)과 창업 붐(수요)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편의점 100개 중 99개는 가맹점이다. 직영점 1%를 제외한 나머지는 일반인 창업자가 편의점 본사와 계약을 맺은 가맹점이다. 가맹점을 내는 편의점 창업자는 2009년까지는 회사원이나 공무원 출신이 다수(38%)였지만, 지난해부터 자영업 출신(40%)이 가장 많다. 커피 전문점 등 다른 창업에 실패한 자영업자는 물론, 은퇴 채비에 나선 베이비부머(출생률이 가장 높았던 1955~63년생으로 약 6백95만명)와 주부, 청년 실업자 같은 창업자가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창업 아이템이 편의점이다. 실제로 편의점 창업 비용은 5천만~1억원(76㎡ 매장 기준, 매장 임차 비용 제외)으로 다른 업종보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작다.

편의점 본사들은 이런 수요를 등에 업고 해마다 수천 개의 매장을 연다. 2011년에는 사상 최고치인 4천여 개의 편의점이 문을 열었다. 편의점업계에는 ‘방어 출점’이라는 말이 있다. 경쟁사의 점포가 들어서기 전에 미리 자사의 점포를 개설해서 경쟁사가 출점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것을 말한다. 상권에서 선점 효과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편의점 본사에 포진하고 있는 상권 전문가들은 전국의 좋은 상권을 손바닥 보듯 살피며 출점을 기획한다. 심지어 북한 개성공단, 금강산, 마라도에도 편의점이 들어섰고, 지난해부터는 군대 내 매점(PX)도 편의점으로 대체되고 있다.

출점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같은 상권에 수십 개의 편의점이 생기는 현상이 생겼다. 심지어 같은 브랜드 간판을 단 ‘아군’ 편의점도 같은 상권에 들어선 지 오래다. 가맹점 점주 입장에서는 같은 브랜드라도 매출에 타격을 주는 ‘적군’일 수밖에 없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사거리 반경 5백m 안에는 20여 개의 편의점이 있다. 같은 브랜드 편의점이 5~6개씩 들어서 있다.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제주는 대표적인 편의점 촌으로 꼽힌다. 제주시청을 중심으로 직선 거리 2백m 내에 20개의 편의점이 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편의점도 있다. 이른바 ‘편의점 촌’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판이다.

한 지역에 편의점이 난립하면 상권을 보호받지 못해 가맹점은 매출에 타격을 받는다. 서울 신촌의 한 편의점 가맹점주는 “훼미리마트·GS25·세븐일레븐·미니스톱 등 대기업 편의점은 물론이고 중소 업체의 편의점까지 생겨서 수익이 예전보다 떨어졌다. 그나마 신촌처럼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은 다행이지만 주택가에 있는 편의점은 더 심각하다는 소식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편의점 난립이 심각하지만 마땅한 규제 법규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1999년까지만 해도 편의점 회사들은 흔히 말하는 ‘상도의’를 지키자는 취지로 1994년 편의점협회가 점포 간 상권 보호를 위해 80m 이내에는 서로 점포 출점을 하지 않기로 하는 ‘근접 출점 자율 규약’을 만들어 지켜왔지만,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편의점업계 자율 규약이 공정 경쟁을 위배한다며 시정 명령이 내려져 지금은 사문화되었다.

편의점 매장이 증가하면서 편의점업계 전체 매출은 2006년 4조9천억원에서 2010년 8조3천억원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점포당 연평균 매출액은 지난 2006년 5억원 규모에서 2010년 4억9천6백만원으로 오히려 하락했다. 하루 평균 매출로 따지면, 2002년 1백70만원대에서 2010년 1백50만원대로 줄어들었다. 6천6백개의 점포를 거느리며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훼미리마트 본사 관계자는 “일부 신규 점포의 매출 부진이 전체 가맹점의 매출 하락으로 나타난 것 같다”라고 가맹점 매출 부진의 이유를 설명했다.

가맹점은 망해도, 본사는 망하지 않아

상황이 심각해지자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되었다. 특히 로열티가 도마에 올랐다. 일반적으로 로열티는 상표 사용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편의점업계에서 통용되는 로열티의 의미는 일종의 ‘수익 분배’에 가깝다. 가맹점 매출의 30~40%를 본사가 나눠 갖는 식이다. 예를 들어 한 점포의 월매출이 3천만원이라면, 1천만원 정도는 편의점 본사의 몫이다. 나머지 2천만원에서 점포 임차료, 인건비 등을 제하면 사실상 생계 유지가 빠듯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 편의점 가맹점주는 “월 매출 3천만원이면 임차료, 인건비 등을 제하고 가져가는 돈은 2백만~3백만원 남짓이다. 3백65일 24시간 쏟아붓는 노력을 고려하면 편의점 운영은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편의점 본사 관계자는 “집기류, 물류비 등 가맹점을 지원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를 감안하면 로열티 비중은 높은 편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또 다른 문제는 계약 기간이다. 편의점을 창업하려면 편의점 본사와 계약을 하는데, 보통 5년 약정을 기본으로 한다. 편의점 본사로서는 이 정도 기간을 잡아야 초기 투자비에 대한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맹점주에게 이 조항은 독소 조항으로 통한다. 5년 계약한 가맹점이 편의점을 운영한 지 1년 만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본사에 해약을 요구하려면, 나머지 4년 동안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위약금이란 시설 장비 등 본사의 투자분에 대한 것인데 최소 수천만 원에 이른다. 건강상의 문제나 매출 부진에도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편의점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한 가맹점이 해약해도 편의점 본사는 다른 창업자에게 점포를 넘기면 그만이다. 편의점 본사 입장에서는 매출이 끊이지 않는 셈이다. 가맹점은 손해를 보아도 편의점 본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상린 한국유통학회 회장(한양대 경영대 교수)은 “편의점 시장은 당분간 성장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 2012년은 11조원 규모로 커진다는 전망도 나왔다. 지금까지 양적인 성장은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렇지만 질적인 면에는 편의점 업계가 소홀했다. 앞으로는 가맹점의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편의점 본사와 가맹점이 상생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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