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고향 마을에 때아닌 ‘생가’ 논란
  • 경북 포항·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2.01.0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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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덕성리 덕실마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촌형수가 살고 있는 ‘고향집(왼쪽)’과 현재 복원 중인 ‘고향집(가운데)’ 그리고 이대통령이 진짜 살았던 ‘고향집터(오른쪽)’가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집권 5년차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에서는 지금 난데없는 ‘대통령 생가’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이대통령이 어린 시절에 살았던 포항 덕실마을에는 ‘이명박 대통령 생가’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집이 무려 세 채나 난립하고 있다. 한 곳은 진짜 고향집이고, 다른 한 곳은 이대통령이 기거한 적이 없는데도 생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최근에는 여기에 한술 더 떠 또 다른 생가의 복원 작업까지 벌어지고 있다. 불과 31가구밖에 살지 않는 이 작은 마을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현지를 직접 찾아가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5년차를 맞았다. 역대 대통령들이 그러했듯 이대통령 역시 임기 마지막 해를 맞는 지금의 위상은 그 힘이 현저히 떨어져 보인다. 이미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그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접어들었다. 지금 한나라당 비대위에서는 ‘MB 탈당론’까지 거론될 정도이다. 새해 들어 레임덕 현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중앙의 분위기와는 아랑곳없이, 지금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에서는 난데없이 ‘MB 생가’ 논란이 뜨겁다. 이대통령의 고향 마을로 알려진 포항 ‘덕실마을’에는 ‘MB 생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집이 무려 세 채나 난립하고 있다. 대통령 집권 말기에 웬 난데없는 생가 논란일까. <시사저널> 취재진이 그 논란의 현장을 찾았다.

취임 이후 현재까지 80여 만명 방문해

지난 2007년 대선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전국에서 가장 떠들썩했던 곳은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있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었다. 불과 31가구만이 살고 있는 벽촌인 ‘덕실마을’은 당시 이명박 후보의 고향 마을로 알려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는 인파가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취임 이후 현재까지 덕실마을을 다녀간 방문객은 80여 만명에 이른다.

덕실마을 방문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집’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이대통령의 출생지는 일본 오사카이다.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국내에는 대통령의 ‘생가’가 존재할 수 없다. 생가란, 그 사람이 태어난 곳을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대통령이 유아 시절 한국에 건너와서 정착한 덕실마을의 고향집을 사실상 생가라고 불러왔다. 때문에 현장에서도 고향집과 생가라는 표현을 혼용해서 쓰고 있었다. 덕실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이대통령의 어린 시절 일화와 성장기, 업적 등을 글과 그림으로 옮긴 안내판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마을 골목마다 이대통령의 생가를 안내하는 표지판도 설치되어 있다.

이대통령이 하루도 산 적이 없는 ‘가짜 생가’

이 표지판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안내 표지판의 한쪽은 ‘고향집’ 그리고 다른 한쪽은 ‘고향집터’를 가리키며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통령의 ‘고향집’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 곳은 ‘덕성리 561번지’이다. 현재 이대통령의 사촌형수인 류순옥씨(79)가 살고 있는 곳이다. 류씨의 집 앞에는 이대통령의 실물 크기 사진을 세워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고 집 안마당에는 기념품 판매소, 관광안내소, 이대통령의 공로와 행적 등에 대한 안내문 등이 있다. 모두 포항시에서 예산을 들여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대통령은 고향집으로 알려진 덕성리 561번지에서 살았던 적이 ‘단 하루’도 없다. 이대통령이 실제 거주했던 ‘진짜 고향집’은 ‘덕성리 538번지’이다. 덕실마을에서 ‘고향집터’로 불리는 이곳은 이대통령의 11대조부터 21대까지 3백년간 터를 잡아 온 곳으로 이대통령 선친의 생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1945년 광복 이후 선친을 따라 귀국한 이대통령은 다섯 살 무렵부터 덕성리 538번지에서 약 3~4년간 생활했다. 따라서 이대통령의 실제 고향집은 ‘덕성리 538번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561번지’가 지금 이대통령의 생가로 알려지게 된 것일까.   

이대통령의 진짜 고향집인 ‘덕성리 538번지’에는 현재 이인학씨와 그의 아내가 살고 있다. 원래 이곳에서는 이대통령의 사촌형수 류씨가 이대통령의 조부를 모시며 살고 있었다. 이후 류씨는 지난 1971년 덕성리 561번지로 이사했다. 이후 인근 주민이었던 이인학씨가 이곳에 터를 잡아 지금까지 살게 된 것이다. 이씨는 이대통령 집안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이다.

이씨의 집 안마당에 들어서면 ‘고향집터’라는 초석이 눈에 띈다. 이에 대해 이씨 부부는 “더 말해 뭐하는교. 원래는 이런 초석도 없었지. (이대통령이) 서울시장 할 때부터 풍수지리학자들이 찾아와 여기 터가 좋다고 난리였는데, 그때 저 집(현재 ‘고향집’)은 가만 있었다고. 대통령 당선되고 나니까 우에서(시청에서) 저기가 사촌형수 집이라고 그렇게 해놨제”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씨 부부는 “전혀 연이 없는 사람이 집터에 들어와 사니까 (이대통령의) 친인척들이 볼 때는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겠나. 이곳에 살았던 이상득 의원마저도 (고향집으로 알려진 곳이) 자기 조부를 모셨던 친인척이 사는 곳이라 그랬는지, 어쩌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진짜 생가가 아니라고) 문제가 되니까, 이의원이 시청 쪽에 (여기에) 초석이라도 세우라고 말한 모양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씨 부부는 엉뚱한 곳이 이대통령의 ‘고향집’으로 선전되고 있는 것에 문제를 느껴 자비로 집 안마당에 ‘고향집’과 ‘고향집터’의 차이를 적어놓은 안내문을 만들어놓았다. 또 이대통령의 실제 고향집의 모습을 본 따 놓은 모형도 설치해두었다. 기자 옆에서 안내문을 읽고 있던 한 방문객은 “새해도 되고 좋은 기를 좀 받으려고 왔는데 뭐가 이리 복잡한지 모르겠다. 고향집도 있고 고향집터도 있고, 둘 중에서 그나마 터가 중요하지, 살지도 않은 집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라며 혀를 찼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 이곳 덕실마을에 이대통령의 ‘또 다른 생가’가 하나 더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주 이씨 종친회 산하 ‘표암문화재단’은 지난해 10월부터 덕실마을에 이명박 대통령과 가족들이 살았던 고향집의 본채와 사랑채, 헛간 등 초가 3동을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덕실마을 공사 현장에서 만난 한 인부는 “공사한 지가 두 달 정도 되어 가는데 거의 다 끝나간다. 이제 집 앞에 돌을 까는 작업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대통령의 또 다른 생가가 복원되고 있는 곳은 ‘덕성리 525번지’ 일대로 약 4백50여 평(1천5여 ㎡) 규모이다. 표암문화재단에서는 복원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경주 이씨 종친회로부터 모금 활동을 벌였고, 지금도 모금을 하고 있다. 인근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덕성리 520번지 일대의 부지는 평당 약 30만~5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토지 매입 및 초가집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은 어림잡아 수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표암문화재단이 ‘고향집’이나 ‘고향집터’가 아닌 엉뚱한 곳에 이대통령의 고향집을 또 복원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표암문화재단의 한 관계자는 “물론 진짜 고향집이 아닌 다른 곳에 고향집을 복원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원래는 고향집터인 덕성리 538번지를 매입하려고 했는데 그쪽에서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대를 요구했다. 평당 7천5백만원 선으로, 부지 매입에 드는 돈만도 100억원대에 이른다. 모금액으로 토지를 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라고 해명했다.

포항 덕실마을의 위성사진. ⓒ 네이버

엉뚱한 부지에 고향집 조성

덕실마을에 살고 있는 경주 이씨 종친회의 한 관계자는 “복원사업은 모두 종친회 모금으로 진행하고 있다. 복원 비용이 초과되어 지금도 모금을 하고 있다. 원래 종친회에서 한 1년 정도 고향집터를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고향집터 자리가 한 1백70평 정도 되는데, 그쪽에서 요구하는 금액도 그렇고 그 집에 현재 거동이 불편한 분이 있다. 그렇다 보니 그쪽 집안의 자식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갈 곳이 없으니 지금은 팔지 못하겠다고 거절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굳이 기존의 생가가 있음에도 왜 새로운 생가를 또 짓는 것일까. 앞서의 관계자는 “사촌형수가 살고 있는 561번지는  원래부터 ‘가짜 고향집’이라는 등 말이 많았다. 또 그곳은 약 100평대 규모로 고향집을 복원하기에는 평수가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덕실관 뒤편 언덕이었다”라고 말했다. 덕실관은 덕실마을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지난해 2월에 개관한 편의시설로 ‘덕성리 530번지’에 있다. 기존의 생가가 가짜라는 지적이 많아 새로운 곳에 생가 조성을 한다는 설명인데, 새로운 곳 역시 ‘가짜’이기는 마찬가지여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실제 표암문화재단측의 주장에 대해 ‘진짜 고향집’에 살고 있는 이인학씨의 큰아들은 “땅 거래와 관련해 종친회 재단 사람들과 접촉한 적은 없다. 지난가을 시청 직원으로부터 ‘공시지가에 조금 더해 3억~4억원 정도에 집과 땅을 팔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적은 있으나, 부모님께서 집을 재건축할 때 드는 비용과 땅값을 포함해도 그보다는 더 드는 데다, 몸도 조금 불편하니 지금은 팔 수 없다고 거절한 바 있다. 또 어머니께서 입버릇처럼 ‘100억원을 줘도 아까운 집’이라고 한 것이 부풀려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씨 부부 역시 “하다못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 집터는 초가집만 있었던 1백40여 평 규모의 땅이 당시에 9억원에 팔렸다. 우리는 땅도 더 넓고 집도 지었는데 3억원이 말이 되느냐”라고 기자에게 항변했다. 

표암문화재단에 대한 의혹 나돌아

현재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표암문화재단은 지난 2009년 10월27일에 설립되었다. 현 정부 들어 갑자기 설립된 재단이다.

표암문화재단은 설립된 지 1년이 채 안 된 지난 2010년 4월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지정기부금단체로 등록되었다. 지정기부금단체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법인 허가한 기관의 추천서와 활동 내역 등이 필요하다. 표암문화재단의 경우 설립된 이후 활동 기간이 매우 짧은데도 지정기부금단체가 되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정기부금단체가 되려면 그동안 얼마나 활동을 잘 했는지가 중요하다. 예전에 너무 남발되어 문제가 된 이후로 등록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추세이다. 대개 전년이나 전전년에 비해 활동이 왕성한지를 꼼꼼하게 비교해서 정해지는데 반 년 만에 등록된 것 자체는 이례적이다. 정치적 압력이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같은 의혹에 대해 표암문화재단의 한 관계자는 “경주 이씨 문중에서 정부 지원 없이 고향집을 복원하라는 논의가 있었다. 원래 5억원가량을 모금하려 했지만 모금 실적이 저조했다. 행정 처리도 어려워 문중에서 생가사업을 표암문화재단이 맡아서 하라고 했다. 한마디로 표암문화재단은 복원사업에 이름만 빌려준 셈이다”라고 해명했다.

현재 표암문화재단에서는 이대통령의 새로운 고향집이 복원되는대로 시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지 매입 등과 관련해 시청 직원이 재단측에 도움을 주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포항시청 관광진흥과의 한 관계자는 “고향집 복원사업은 문중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한 것이다. 우리 직원들이 덕실관을 운영하고 있으니 복원될 땅을 구상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이대통령이 어린 시절 덕실마을에 살았던 기간은 불과 3~4년이지만 이제 생가는 무려 세 곳이나 된다. 어찌 되었든 이대통령의 집권 마지막 해에 곧 세 번째 생가를 구경할 수 있을 전망이다. ‘고향집’과 ‘고향집터’에 이어 앞으로 모습을 드러낼 새로운 고향집에는 또 어떤 이름의 푯말이 붙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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