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2030 출사표’, 정치권 흔들까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2.01.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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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비대위에 등장한 20대 위원 눈길…민주통합당, 청년 비례대표 의원 4명 뽑을 계획도

지난 12월30일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가진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석한 이준석 비대위원. ⓒ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 12월27일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의 첫 회의가 열렸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당 쇄신 행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자리인 만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앳된 얼굴의 청년이 있었다. 벤처기업 클라세스튜디오의 사장이자 봉사 단체 배나사(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이준석 위원이었다. 그의 나이는 올해 스물여섯.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의 쇄신을 책임지는 중차대한 자리에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포함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정치권에서는 보기 힘든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이보다 앞선 12월23일, 민주통합당은 청년 비례대표 선출안을 발표했다. 25~35세 사이의 청년 비례대표 국회의원 네 명을 ‘슈퍼스타K(슈스케)’ 방식으로 뽑는다는 방안이다. 3단계에 걸친 경연, 패자부활전, 대국민 투표 등을 거쳐 총 네 명의 청년을 선발해 당선권 비례대표 명단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이들 중 최고 득표자 한 명은 당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입성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방안이다.

청년 당원 중심으로 출마 준비 움직임 활발

19대 총선을 불과 3개월여 앞둔 지금, 2030세대를 향한 정치권의 구애가 예사롭지 않다. ‘젊은 세대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라는 식의 립서비스 수준은 진작에 넘어섰다. 비상대책위원, 최고위원 등과 같은 당의 요직에 실제 ‘자리’를 마련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모양새이다. 특히 관심을 모으는 것은 오는 4월의 총선이다. 각 정당이 2030세대 인물에게 당선권의 비례대표 순번을 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되는 까닭이다.

이미 구체적인 안을 내놓은 민주통합당은 내달 초까지 지원서를 접수한 후 곧바로 두 달여에 걸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민주통합당이 이렇게 발 빠른 행보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당 통합 이전부터 ‘혁신과 통합’ 세력을 중심으로 상당한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각각 쇄신 및 통합 문제를 둘러싸고 숨가쁘게 움직여온 한나라당이나 통합진보당의 경우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정당 또한 1월 중순 이전에 청년 비례대표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20대인 이준석 위원을 비대위원으로 전격 발탁한 것부터가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전임 지도부에서도 홍준표 전 대표와 김정권 전 사무총장 등이 청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한 바 있다. 비대위 출범으로 쇄신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만큼 조만간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통합진보당도 마찬가지다. 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17, 18대 총선처럼 특정 청년 후보를 전략 공천하는 방안부터 ‘슈스케’ 방식까지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 당 내외 인사를 가리지 않는 열린 자세를 갖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1월 중순 즈음에는 윤곽이 잡히지 않을까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과연 어떤 인물을 청년 비례대표 후보로 끌어들일 것인가이다. 기자가 만난 각 정당의 관계자들 또한 이에 대한 고민이 깊은 상태였다. 이들은 젊은 후보가 갖춰야 할 기본 요건으로 당의 ‘정체성’과 맞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점을 우선 들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표성’이었다. 젊은 세대를 대표할 만한 역량과 자격, 대중성을 지녔다고 인정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만약 당선권의 비례대표 순번을 청년 후보에게 배정하게 된다면, 누가 봐도 납득이 갈 만한 인물이어야 당내 다른 인사들의 불만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치권 내부에서는 경험이 적은 젊은 세대들을 당선권의 비례대표로 배치하는 것에 대한 반감도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자와 만난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청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2030세대의 인물을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키는 방식이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기성 정치인들 사이에서 소신을 지키며 활동할 수 있는 젊은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청년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는 절차 및 방식을 둘러싼 각 정당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2030세대를 대표할 만한 활동을 보인 인물로는 누가 있을까.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기존 정당에서 꾸준히 활동해왔던 학생 당원들이다. 각 정당에는 ‘학생위원회’ ‘대학생위원회’ 등의 명칭을 갖는 2030세대의 활동 영역이 존재한다. 특히 거대 양당 소속의 청년 당원들 가운데는 애초부터 정치권 진출에 뜻을 품고 활동을 전개해온 이들이 많다. 이번 총선에서도 비례대표 후보 자리를 노리는 인물이 상당수 있다고 한다. 민주통합당 전국대학생위원회 손한민 위원장(28)은 “현재 각 시·도 지부에서 간부급으로 활동했던 사람들 중 비례대표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인물이 많다. 나 스스로도 얼마 전 출마를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이 중에는 정당을 초월해 서로 교류하며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새로운 인물 등장할 가능성도 커

2010년 6·2 지방선거 등 이미 선거를 경험한 적이 있는 젊은 정치인들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2010년 7·28 보궐 선거에서 원주 지역구 공천에 도전했다 낙선한 최재민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부위원장(28)의 경우 19대 총선에 출마할 뜻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에서 의정 활동을 펴고 있는 지방의회의 젊은 의원들 또한 총선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유력 인물군으로 점쳐진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의회 소속 이관수 민주통합당 의원은 최근 청년 비례대표직 도전을 결심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기성 정당 안팎에서 활동해온 이들 외에도 눈길을 끄는 이들이 있다. 각종 청년·학생단체의 운동가들이다. 현재 20대가 겪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로는 청년 노동 문제(비정규직, 청년 실업 등) 및 대학 등록금 문제가 꼽힌다. 이런 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키는 데 역할을 한 인물들 또한 정치권의 주목 대상이 되고 있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대표(31), 김성환 20’s party 대표(28), 조용술 청년연합 36.5 대표(31), 김선경 청년 이그나이트 대표(28)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들은 기성 정당의 청년 당원들에 비해 다소 유보적인 태도가 강하다. 현재 정치권의 방식이 청년 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않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도 매우 크게 점쳐진다. 이준석 한나라당 비대위원이 전격 발탁된 것처럼, 독특한 이력과 남다른 능력을 지닌 새 인물이 영입 형식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하고 말하면, 기존에 잘 알려진 인물을 끌어들이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래도 외부의 유망한 인재를 새로 영입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의 청년 비례대표 선출안 기획을 주도한 김두수 제2사무총장은 “청년 비례대표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많은 분으로부터 문의 전화가 왔다. 변호사·기자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 대학원생, 시민운동가, 각 정당 실무자 등이었다”라고 말했다. 청년 비례대표 도전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천현진 에듀콘서트 대표(30) 또한 “각 대학에서 학생회장을 경험했거나 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변인들 중 청년 비례대표제 도입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보수 계열 청년 단체 쪽에서도 출마를 검토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2030세대 정치인·활동가로 주목받은 이는 누구?

이름(나이) 

소속 

이관수(29) 서울 강남구의회 의원
민주통합당 청년실업대책위원회 위원장 
김영경(31) 청년유니온 위원장 
손한민(28) 민주통합당 전국대학생위원회 위원장
반값 등록금 국민본부 공동대표 
김성환(28) 20’s party 대표
한국청년연합 간사 
조용술(31) 청년연합 36.5 대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홍보위원 
이동학(29) 민주통합당 경기도당 대학생위원장
전 민주당 전국학생위원회 준비위원장 
최재민(28) 한나라당 중앙청년위원회 부위원장
한나라당 국민소통위원회 위원 
천현진(30) 에듀콘서트 대표이사
전국중고교모의국회 조직위원장 
정태호(26) 통합진보당 학생위원회 위원장
전 고려대 총학생회장 
성치훈(29) 민주통합당 서울특별시당 대학생위원장
전 연세대 총학생회장 
김선경(28) 청년 이그나이트 대표 

‘기대 반 우려 반’의 반응 우세

한편 청년 비례대표제 도입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는 구체적인 절차 및 방식을 두고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먼저 청년 소수가 원내에 입성한다고 해서 문제 해결에 근원적인 도움이 될지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박자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은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소수의 젊은이가 원내에 진입하는 것이 젊은 세대의 문제 해결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의 한 당직자 또한 “새로운 인물을 수혈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지금의 청년 문제를 결코 풀어낼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누가, 몇 명이 입성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2030세대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정당 정치 구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현 정치권이 추진하는 방식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정치권의 청년 비례대표제 도입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논의 중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나 민주통합당의 최근 움직임에는 청년들을 자신들의 ‘치어리더’로 내세우려는 분위기가 보인다. 청년들의 염원을 제대로 모아나가 변화를 일으키려는 진정성이 없다면 함께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최재민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부위원장은 “학벌 좋고 능력 있는 엘리트를 영입하는 것보다는, 많은 청년을 대변할 수 있는 대중적인 인물을 통해 정치 참여의 폭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비록 구체적인 절차와 방식에 대해서는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들의 문제가 정치권의 중심적인 화두로 떠오르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우세했다. 하준태 한국청년연합 사무처장은 “이런 논의가 등장했다는 것 자체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일이다. 무관심했던 정치권이 2030세대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참여의 장도 열리고 있다. 지금까지 시민들이 노력한 덕분이다.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19대 총선이 여느 총선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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