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또 덮친 ‘정용욱 뇌관’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01.0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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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방통위 정책보좌역 관련 의혹 잇따라 쏟아져…“이통사 임원들에게 압력 행사” 증언도 나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1월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개국 공신 3인방의 정권 초기 위세는 대단했다. ‘3인방’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멘토’로 불리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그리고 ‘40년 지기 친구’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다. 이들 가운데 천회장은 2010년 12월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인 임천공업의 이수우 대표로부터 46억여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지난해 12월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32억원을 선고받았다.

이대통령의 ‘두 형님’인 이의원과 최위원장도 갈수록 위태위태한 국면에 놓이는 형국이다. 이의원의 ‘15년 보좌관’인 박배수씨가 이국철 SLS그룹 회장 등으로부터 10억원 이상을 받은 혐의로, 천회장이 구속된 지 꼭 1년 만인 지난해 12월 구속되었다. 이번에는 최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는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4급)이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다. 검찰 수사의 칼끝이 아직 이의원과 최위원장을 직접 겨누지는 않고 있지만, 핵심 가신인 ‘박배수-정용욱’에 대한 수사 향배에 따라 두 사람의 운명도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 1월3일, 검찰은 한국방송예술진흥원 김학인 이사장을 수백억 원대의 횡령 및 탈세 혐의로 구속했다. 그런데 김이사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은 뜻밖에 ‘큰 수확’을 거두었다. 김이사장이 정용욱씨에게 각종 청탁을 하면서 2억원대의 금품을 전달한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결국 터질 것이 터진 것일 뿐”이라는 반응도

문제는 그동안 방통위를 감사하는 국회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와 방송·통신업계, 사정 당국 안팎에서 정씨와 관련해 불미스러운 소문과 의혹들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방통위 관련 기관과 업계에서는 ‘김학인-정용욱 커넥션’이 불거지자 “마침내 터질 것이 터졌다”라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왔을 정도이다. ‘정용욱 2억원 수수 의혹’이 불거지자마자 정씨와 관련된 의혹들이 곳곳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씨는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정씨는 방송·통신업계에서 ‘방통위 황태자’로 통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올해 49세인 정씨는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대구대 법학과를 나왔다. 1994년부터 정치 컨설턴트회사를 경영하다 한국갤럽 회장이었던 최시중 위원장을 만나 ‘최시중의 오른팔’에서 ‘양아들’로까지 불렸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국민 경선인단과 당원들의 성향을 분석하면서 이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2008년 1월, 자신이 운영하던 출판·디자인 및 행사 대행회사인 ㅎ사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이후 최위원장의 정책보좌역으로 들어갔다. 당시 그의 임명을 둘러싸고도 숱한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최위원장은 이를 밀어붙였다. 정씨는 지난해 10월20일 갑자기 사표를 내고 해외로 출국했다.

방통위 근무 시절 정씨는 방송·통신 정책과 관련한 각종 민원의 창구 역할을 하면서 최위원장을 3년6개월 동안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정 전 보좌역이 방통위를 그만두면서 ‘캐나다와 미국 등으로 여행 갈 계획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현재 동남아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당국의 한 인사는 “정씨가 지난해 12월 초 캐나다로 출국했다가 태국 등을 거쳐 현재는 말레이시아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방통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 전 보좌역이 ‘해외에서 사업을 할 계획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라고 귀띔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해 “정씨가 동남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여권 실세의 아들’과 공동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정씨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정치 컨설턴트답게 주요한 고비마다 내놓는 정세 분석이나 전략이 예리하다”라고 평가한다. 반면 정치권과 사정 당국에서는 그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국회 문방위의 한 관계자는 “정 전 보좌역이 근무했던 3년 내내 이런저런 안 좋은 소문과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라고 잘라 말했다. 문방위 소속 국회의원의 한 보좌관은 “지난해 3월 최위원장의 방통위원장 연임을 위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당시 정 전 보좌역이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의 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인사청문위원들(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 동향을 파악하고 청문회장에서 부정적인 발언을 하지 않도록 협조해달라’라고 외압을 넣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이동통신 3사 임원들이 우리 의원님을 직접 만나 그런 얘기를 했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해마다 국회 국정감사 때에도 방통위 국정감사가 별 탈 없이 끝날 수 있도록 이동통신 3사 임원들을 ‘동원’해 의원 설득 작업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방송·통신업계에서 정씨의 입김이 얼마나 셌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씨와 얽혀 있는 의혹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방송·통신업계의 한 임원은 “정씨가 방송·통신업계뿐 아니라 케이블방송업계의 인사 문제까지 직접 개입했다”라며 씁쓸해했다. 검찰에서는 방통위의 방송 사업과 관련해서 정 전 보좌역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한 대형 종합유선방송업체(MSO)가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에 막히자 정씨가 이를 해결해준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정씨가 해당 업체로부터 로비를 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라고 말했다. 차세대 이동통신용 주파수 할당 문제와 관련해서 한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최시중 위원장 연루 여부가 의혹의 핵심

지난해 9월1일 열린 정기국회 개원식에서 이상득 의원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정씨와 관련된 소문과 의혹이 워낙 많다 보니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사정 당국도 이미 오래전부터 ‘정용욱 파일’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해 초부터 청와대에도 정씨와 관련된 사정 당국의 정보 보고가 올라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여러 차례 구두 경고했으나, 그때마다 정씨는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는 것이다. 정씨의 사생활도 도마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정씨와 비슷한 시점에 사직을 한 한 여성이 정씨와 함께 출국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는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한 직후 정씨가 갑자기 여의도 국회 앞 한 빌딩에 정체불명의 사무실을 낸 적이 있다. 간판도 없는 회사였는데, 당시 MB 캠프 내부에서조차 ‘정치 컨설턴트가 왜 갑자기 건설 관련 회사를 만드나’라며 수군거리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지난해 12월 초부터 비밀리에 정씨에 대한 신상 파악에 들어갔다. 정씨의 실제 거주지부터 방통위와 정치권 안팎에서 나도는 정씨에 대한 평가 등 포괄적인 첩보 수집에 나섰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정씨와 관련된 이런저런 소문과 의혹이 불거져서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있다”라고만 말했다. 

그렇다면 ‘양아들’ 관련 의혹들에 대해 최위원장은 얼마나 인지하고 있었을까. 전혀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눈감아준 것인지, 한 발짝 더 나가 최위원장도 직접 연루된 것인지 등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핵심 의혹이다. 이에 대해 방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퇴직한 정 전 보좌역의 금품 수수 여부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에서 시비가 가려질 것이다. 최시중 위원장과는 무관한 일이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복수의 국회 문방위 관계자들은 “그동안 그 많은 소문이 났는데도 최위원장이 몰랐다면 그것도 큰 문제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위원장은 정씨와 관련한 의혹이 불거진 이후 가급적 대외 일정을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빼든 검(劍)이 여권 핵심 실세 ‘가신들’의 목만 칠 것인지, 아니면 그 ‘주군’으로도 향할 것인지 검찰 수사가 주목된다.

한상대 검찰총장(가운데)이 1월6일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대검찰청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역대 정권 말기에는 어김없이 권력을 향한 검찰의 칼날이 번뜩였다. ‘살아 있는 권력’에 한없이 무뎠던 칼날이 정권 말기만 되면 예리해졌다. 현 정부에서도 ‘역사’는 반복되는 양상이다. 정권 초기부터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 사건이 쉼 없이 터져나오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월2일 ‘신년 특별 국정연설’에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한 듯한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복수의 사정 당국 관계자들은 “앞으로 더 큰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 사건이 터질 것이다”라고 ‘예언’한다.

실제로 사정 당국 안팎에서는 몇몇 여권 실세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다. 이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청와대 고위직 출신인 ㄱ씨의 경우, 대형 건설 공사와 관련해 로비를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 문제 때문에 청와대에서 나왔다는 관측까지 덧붙여지고 있다. 정권 초기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ㅇ씨는 자신의 아들 사업과 관련해 한 중견 기업체로부터 수억 원을 무상 후원받았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대기업을 향한 사정의 칼날이 더 예리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검찰이 SK 수사를 마무리한 다음 대기업 한 곳과 중견 기업 한 곳에 대한 수사에 들어갈 것이라는 얘기이다. 한 소식통은 “대기업의 경우, 지방 계열사에서 발생한 노무 관련 문제로 인해 해당 대기업이 도덕적으로 큰 비난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대기업은 과거에도 검찰 수사를 강도 높게 받은 적이 있다. 중견 기업의 경우, 이 회사 노조가 국세청과 검찰 등에 제보했다는 것인데, 제보 내용이 제법 구체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래저래 겨울 한파에 버금가는 사정 한파가 몰아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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