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증후군 막는 ‘습관 바꾸기’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1.1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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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활동 중단하면 우울증 등에 걸릴 가능성 커져…세미나 참석·집안일 분담 등 적극 나서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성곽과 백석동길에서 걷는 사람들. ⓒ 시사저널 전영기

지난해 12월 30여 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친 주 아무개씨(60)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해진 가족 관계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와 여행도 다니고 자녀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기대는 깨졌다. 종일 아내와 마주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겼고, 결혼해서 생활이 바쁜 자녀들을 대할 기회는 적었다. 그는 오전 6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집 안을 배회한다. 아파트 창문을 통해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는 일이 잦아졌다. 주씨는 “은퇴 후 한 달 동안은 일에서 벗어났다는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고, 시간적인 여유도 많아져서 삶이 윤택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일상은 삭막해졌다. 무료한 일상 때문인지 흡연과 한숨만 늘었다”라고 하소연했다.

이 사례처럼 은퇴자는 한순간에 사회 활동을 중단하면서 공허함을 느끼기 십상이다. 이를 가족과의 관계로 채우려고 한다. 가족 여행이나 식사 모임을 제안해보지만 몇 차례 거절당하면 충격을 받으면서 점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전문가들은 마음의 문을 닫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가족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자녀보다 손자·손녀에게 관심을 갖는 방법이 있다. 자녀들과 가까운 곳으로 주거지를 옮겨 손자·손녀들의 유치원 재롱 잔치나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하는 식이다. 또 손자·손녀와의 규칙적인 만남을 정하고 함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다.

은퇴자가 허탈감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인맥의 단절이다. 은퇴 전에 형성해둔 인맥을 이어가기 위해 조찬 모임이나 세미나 등에 지속적으로 참석하는 것도 좋다. 평생 함께할 친구를 떠올리고 취미나 여행을 같이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은퇴자만큼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기는 사람이 배우자이다. 전업주부 아내는 남편의 사회적 지위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은퇴 증후군을 함께 앓는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의 결점이 크게 느껴지고, 잠재되어 있던 부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았다고 해서 부부 갈등을 덮고 살 수는 없다.

우울증 예방 1순위 ‘걷기와 등산’

은퇴자는 배우자의 은퇴 증후군을 인정하고 이를 보상해줄 필요가 있다. 이른바 부부 생활표를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부가 함께 보낼 시간을 얼마로 할 것인지를 의논해서 정한다. 배우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의미가 담겨 있어서 부부에게 심리적 안정을 준다. 또 부부가 함께 나눌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적어보고 실천 방법도 모색한다. 이런 과정에서 부부간의 대화가 이어진다. 집안일을 분담하는 방법도 있다. 가계부 정리,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등을 누가, 언제 할지를 정해놓고 실천하면 사소한 갈등의 씨가 생기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배우자를 세대주로 변경해주는 일도 상대방에 대한 심리적 보상의 한 방법이다.

배우 김추련씨(64)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원룸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유서에서 외로움이 컸다고 밝혔다. 그는 우울증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은퇴 후 우울증은 심각하다. 김윤기 서울시북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가족의 무관심으로 인해 제때 우울증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 가족이 각별하게 관심을 가져 이른 시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은퇴자 자신은 과거의 회상에 젖을수록 현실과의 차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과거 직장 생활을 떠올리기보다는 은퇴 후 자신의 모습을 냉정하게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우울증은 예방할 수 있다. 재능 기부와 같은 봉사 활동은 삶의 의욕을 높이면서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은 종교 생활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서예, 바둑, 난초 기르기, 홈패션, 도자기 공예와 같은 취미를 갖는 방법도 있다.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음주와 흡연은 멀리하는 것이 좋다. 우울증 예방에 가장 큰 효과를 보이는 것은 운동이다. 전문가들은 걷기와 등산을 추천한다. 권영훈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교수는 “은퇴 전에는 최소한으로나마 보장되던 신체 활동량이 은퇴 후에는 급격히 떨어진다. 이는 건강상의 문제로 나타난다. 신체 활동량은 육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인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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