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방산업계 ‘험악한 육탄전’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1.16 17: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위사업청, 방산업체 15곳 ‘부정당 업체’ 선정…업계 반발로 소송전 비화

지난해 2월 경기도 연천군 신답리에서 육군 진군 6포병여단 병사들이 K-55 자주포 사격 훈련을 마치고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과 방산업체들이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23일 방사청은 삼성테크윈, 두산DST, LIG넥스원 등 방산업체 15곳을 부정당 업체라고 발표했다. 원가를 부풀리는 등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들 업체는 앞으로 관공서 입찰 참여도 3~9개월까지 제한받게 된다. 방사청 조달기획관리팀의 한 관계자는 “방산업계 전체를 상대로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관련 기업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체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방사청을 상대로 잇달아 소송을 제기했다.

방사청은 삼성테크윈이 원가를 부풀렸다고 보고 있다. 방사청 관계자는 “현장에서 작성한 작업 일지를 바탕으로 원가 부풀리기가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내부의 원가회계검증단을 통해 여러 차례 검증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제재 결정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삼성테크윈은 그동안 K-55 자주포 성능 계량 사업과 탄약 운반차 연구 개발 사업을 방사청과 함께 진행해왔다. K-55 자주포는 군의 주력 무기인 K-9 자주포의 전신이다. 삼성테크윈에서 1985년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현재 1천여 대가 육군에 배치되어 있다. 삼성테크윈은 지난 2007년부터 이 자주포의 성능을 계량하는 사업에 나섰다. 사업 규모는 2백13억원에 달한다. 2008년에는 이 자주포의 탄약 운반차 연구 개발 사업도 1백60억원에 따냈다. 이 과정에서 연구원 아홉 명이 19개월 동안 두 개의 사업에 동시에 이름을 올려온 것으로 나타났다.

원가 부풀린 혐의로 수사까지 받은 업체도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방위사업청. ⓒ 시사저널 이종현
LIG넥스원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 회사는 그동안 함대함 유도탄과 레이더 장비 등을 방사청에 납품해왔다. 이 과정에서 부품 가격을 부풀려 90억원대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로 검찰로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경영진 상당수가 검찰에 기소되었다. 평 아무개 대표의 경우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자살을 하는 등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방사청은 최근 부당 이익금 반환 조치와 함께 6개월 입찰 금지 조치를 내렸다. 방사청 관계자는 “부품 구입 과정에서 중간 도매상을 끼워넣는 수법으로 거액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다. 과징금을 포함한 부당 이익금 1백40억원을 반환하도록 회사측에 통보한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방산업계 2위 업체인 두산DST 역시 제품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수천만 원대의 인건비를 부풀려온 것으로 방사청 조사에서 나타났다. 두산DST는 현재 ‘명품 무기’로 손꼽히던 K21 보병 전투장갑차를 군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원인 모를 고장이 계속되면서 예정된 야전 배치가 전면 보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가 부풀리기 문제로 방사청 제재를 받은 터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업계는 방사청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방사청이 발주 기관인 만큼 맞대응에는 조심하는 눈치이다. 그러면서도 “방사청이 무리하게 단속을 했다”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일부는 “국면 전환용이 아니겠느냐”라고 꼬집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최근 방사청 비리로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무리한 단속 이면에는 이런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최근 방사청을 상대로 부정당 업자 제재 처분 취소 청구 소송까지 제기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가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일부 착오가 있었지만 고의는 아니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삼성테크윈은 문제라고 적발된 사업의 기간이 신임 김철교 사장의 임기와 겹치고 있어 반응이 격렬했다. 삼성테크윈은 방사청 제재를 받은 업체 중 가장 먼저 소송을 제기했다. 판결이 날 때까지 입찰 참여 제한을 취소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하기도 했다.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사업을 정산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해 먼저 방사청에 통보했다. 그럼에도 방사청이 무리하게 제재를 가해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서로 연관된 두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연구원들이 겹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작업 일지가 중복 게재되었다. 나중에 문제를 발견하고 방사청에 통보를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기획재정부에도 관련 유권 해석을 받아놓은 상태이다. 이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답신을 받았다. 소송을 통해 고의성이 없음을 입증하겠다”라고 말했다.

방사청측은 기획재정부 질문서 자체가 회사 사정에 맞게 요리한 만큼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특히 방사청은 삼성테크윈이 내부 문제를 발견해 감사관실에 통보한 시점에 대해 곱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 방사청은 지난 2011년 3월부터 삼성테크윈을 상대로 강도 높은 감사를 벌였다. 8월부터는 내부의 원가회계검증단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검증이 진행된 상태였다. 2차 검증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내부 문제를 보고한 것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당시 삼성테크윈의 감사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삼성테크윈 직원으로부터 문제가 있다는 확인서를 확보한 상태였다. 이미 문제를 발견하고 집중적으로 감사를 하던 상황에서 문제를 발견해 보고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