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깨끗하게 털고 가야 한다
  • 김윤태 │ 고려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12.01.1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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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모두 ‘돈 봉투 전당대회’ 의혹 규명하고 총선 임해야…제도 개선·유권자 의식 개혁도 필요

1865년 존 스튜어트 밀은 영국 하원 선거에 출마했다. 밀은 <자유론>과 <대의정부론>을 쓴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이다. 런던 웨스터민스터 선거구 유권자들이 그에게 출마를 권유했다. 밀은 당시에 샌앤드류스 대학의 명예총장을 맡고 있었으며, 정치가보다 학자로 남고 싶었다. 밀은 출마를 강력하게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첫째, 나는 의원이 되고 싶지 않다. 둘째, 선거 운동에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겠다. 셋째, 당선이 되어도 지역구를 위해 일을 할 수 없다. 의원은 선거구에서 선출하지만 전 국민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 넷째,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 일종의 출마 조건이었다.

이를 읽은 한 유명 인사는 이런 터무니없는 공약을 가지고는 귀신도 당선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밀의 주장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솔직한 화법을 좋아한 사람들은 열심히 지지했다. 결국 밀은 보수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밀은 의회에 진출한 후 자신의 원칙대로 의정 활동을 펼쳤다. 당시 투표권이 없었던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노력했다.

밀이 출마했던 1865년 영국 총선은 영국인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준 선거였다. 하원에 접수된 선거법 위반 청원이 50건이었다. 35건이 재판에 회부되어 13명의 의원이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선거 운동에서 지출한 비용의 10분의 1만 신고되었다. 신고한 금액 외에 지출이 있는지 물으면 선거 사무장들은 한결같이 ‘저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른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3분의 1 정도가 뇌물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정말 밀이 당선된 것은 기적이었나?

지난 1월8일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가운데)이 서울 중앙지검에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돈 선거’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악습

지금 100년 전 영국 정치를 오염시켰던 돈 선거 망령이 한국을 덮치고 있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선거에서 돈 선거가 아닌 적이 없었다. 막걸리와 고무신에 이어 돈 봉투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악습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15대 대선 때 ‘세풍’, 16대 대선 때 ‘차떼기 사건’에 이어 돈 선거 관련 구설이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당내 경선 때의 ‘돈 봉투’ 사건이 한나라당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의 ‘돈 봉투 사건’ 폭로는 모든 국민에게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었다. 한나라당은 돈 선거 부정이 발생할 때마다 변화와 쇄신을 다짐했다. 심지어 차떼기 사건 때는 천막 당사에서 선거를 치렀다. 고승덕 의원의 폭로는 한나라당의 개혁이 얼마나 속 빈 강정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검찰에 불려간 고의원은 돈 봉투의 출처로 박희태 국회의장을 지목했다. 수사 결과 박희태 의장의 전 보좌관이 돈 봉투를 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박의장의 사퇴는 말할 것도 없고, 공모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가 불가피해졌다. 그래도 박의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한다. 정치권은 전당대회에 떠밀려 나온 박의장이 자기 돈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당연히 돈 봉투의 출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어쩌면 박의장이 무너지면 한나라당뿐 아니라 정권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사실 2008년 대선 이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돈 선거 소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돈 봉투를 돌린 사람, 지역, 금액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내 조사도, 검찰 수사도 없었다. 고의원의 폭로는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수년 동안 한나라당의 대응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었다. 의혹을 덮기에 바빴다.

야당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통합당(약칭 민주당)에서도 일부 주자가 전당대회 때 돈을 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돈 뿌리기’에서는 여야 모두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상식이다. 소수의 사람을 영원히 속이거나,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민주주의와 언론에 관한 링컨 대통령의 말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법률이 필요하다. 1867년 영국 보수당의 디즈레일리는 ‘부패 선거와 싸우지 않고는 정치의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라고 선언하고 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1869년 의회는 선거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부정 선거의 진상을 조사했다. 드디어 1881년 영국 정부는 부패 행위를 저지른 후보는 영원히 출마할 수 없으며, 법정 비용을 초과하면 당선 무효라는 내용의 ‘부패 위법 행위 방지법’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이 통과된 후 선거 풍토가 완전히 바뀌었다. 선거 비용의 대부분을 가로챈 선거 거간꾼과 협잡꾼은 사실상 선거 기생충들이었다. 새로운 법이 기생충을 퇴치했다. 그리고 의회와 정부의 권위와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선견지명을 볼 수 있다.

부패 선거 막으려면 철저한 법 집행 따라야

지난 2008년 7월 월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 ⓒ 시사저널 자료
이제 여야 정당들이 선택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문을 닫는다는 각오로 ‘돈 뿌리기 의혹’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털고 가야 한다. 진실을 만천하에 밝히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연루자를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현재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파격적 쇄신을 다짐하고 있다. 돈 봉투 사건에 대한 처리야말로 쇄신의 시금석이다. 이 사건을 그냥 넘어간다면 쇄신은 없다. 민주당도 어물쩍 의혹을 넘기려 한다면 반드시 후폭풍을 맞을 것이다.

검찰은 돈 봉투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엄중한 수사를 단행해야 한다. 돈 봉투 사건의 배후로 친이계와 청와대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사건을 대충 덮어둘 수 없다. 진상 규명을 위해 대선 자금 수사와 대선 캠프인 ‘안국포럼’의 계좌까지 수사할 수도 있다. 검찰은 정치 개혁과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두려워하면 진실은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깨끗한 선거 문화를 만들기 위해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먼저, 정당법을 개정해 선관위가 정당 경선의 투·개표 업무를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정당 경선 입후보자들이 선거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거액을 기탁하는 제도도 문제이다. 정당 대표와 공직 후보자 경선도 선관위가 관리해야 한다. 이미 미국에서는 선관위가 관리한다. 다음으로, 공직선거법에 정당 경선의 돈 봉투에도 50배 벌금 제도를 적용하고 돈 봉투를 돌린 후보는 정당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내용을 명문화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꽃이다.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고 민의를 표출한다. 금권 선거와 부패 선거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함께 사법기관이 철저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유권자들의 의식 개혁도 중요하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각 선거구에서 ‘유권자 동맹’과 같은 시민사회 조직이 활동한다. 선거 부정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활발한 시민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만든 신문과 웹사이트를 통해 만든 여론의 압력으로 불법 행위를 추방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한국의 시민들이 나서서 정당의 선거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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