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최시중, 친이계 의원들에게 수천만원 뿌렸다
  • 소종섭·안성모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12.01.3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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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일부 친이계 의원들에게 돈을 뿌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도 2008년 추석 직전 최위원장으로부터 돈을 받았지만 곧 돌려주었다고 밝혔다.

1월27일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건물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직원들의 금품 수수 의혹에 관해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1월27일 돌연 사퇴를 발표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일부 친이명박계 의원들에게 돈을 뿌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돈을 받았다고 증언한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도 2008년 추석 직전 최위원장으로부터 돈을 받았지만 곧 돌려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당시 최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는 정용욱 전 보좌역이 다른 두 명의 의원에게도 현금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시사저널>이 취재한 결과 당시 최위원장측에서 이들 세 의원에게 건넨 현금은 총 3천5백만원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시사저널>은 친이명박계의 한 국회의원으로부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2008년 추석(9월14일) 직전 친이계 일부 의원들에게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이 든 돈 봉투를 돌렸다. 내게도 돈을 주었으나 돌려주었다”라는 증언을 확보했다. 당시 최위원장과 그의 측근 정용욱 보좌역이 최소 세 명의 친이계 국회의원에게 합계 3천만원이 넘는 돈을 건넸으나 의원들은 돈이라는 것을 확인한 즉시 최위원장측에 되돌려주었다고 그는 증언했다.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 증언은 정치권에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시사저널>은 오래전 이 정보를 확보하고관련 의원으로부터 전후 관계를 확인한 뒤 그동안 ‘실명 인터뷰’를 할 것을 설득해왔다. 그러나 이 의원은 만남에 응하면서도 끝까지 익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나서겠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이 밝힌 당시 상황은 구체적이다. 2008년 추석을 앞두고 최위원장이 만나자고 해 식사를 했는데, 헤어질 때 그가 “차에 실었다”라고 말해 나중에 살펴보니 쇼핑백에 2천만원의 현금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보좌관을 시켜 즉시 정 전 보좌역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다른 두 명의 국회의원에게는 당시 정 전 보좌역이 현금을 전달했는데 이들도 정 전 보좌역에게 돈을 돌려주었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당시 최위원장측에서 이들 세 명의 국회의원에게 준 현금은 모두 3천5백만원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렇다면 최위원장은 왜 이들에게 돈을 주었고 돈의 출처는 어디일까. 이들 외에 최 위원장이 돈을 준 다른 국회의원들은 없을까. 이런저런 의혹이 제기된다.

한나라당 돈 봉투 의혹 발생 시점과 두 달 차이

우선 시점이 2008년 9월 전후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미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2008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이 발생한 때와 불과 두 달 차이가 난다.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당시 돈을 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측 인사들을 조사하고 있다. 당시 박희태 후보 캠프의 공식 회계 책임자였던 함 아무개씨를 소환해 조사한 데 이어 조만간 당시 캠프에서 조직과 공보 업무를 맡았던 박의장의 측근 인사들을 조사할 계획이다.

소환이 줄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고, 이 과정에서 검찰은 누가, 왜, 돈 봉투 살포를 지시했는지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돈의 출처에 대한 수사 또한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재경 대구·경북인 신년교례회에서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오른쪽)과 최시중 위원장이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

박의장은 2007년 대선 때 최시중 위원장, 이상득 의원, 천신일 세중나모회장 등과 함께 ‘6인회’ 멤버로서 당시 이명박 캠프의 최종 의사 결정을 좌우한 핵심 인사였다. ‘박희태 캠프의 돈 봉투’와 ‘최시중 위원장의 돈봉투’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인지, 있다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한나라당 2008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을 처음 폭로했을 때 정가에서 거론되었던 ‘여권 실세의 정치자금 저수지’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2008년 7~9월은 여권이 내부 단합에 노력하면서 반대 세력에 대해 대대적으로 공세를 펼칠 때였다. 집권 초 불어닥친 촛불 집회에서 궁지에 몰린 여권은 장관 후보자가 여럿 낙마하는 등 인사 난맥상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소장파와 원로 세력 간에 한판 내홍을 겪은 뒤였다. 정두언 의원으로 상징되는 소장파는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인사 난맥상을 불러온 당사자로 보고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결국 그해 6월 박비서관은 눈물을 흘리며 청와대를 떠났다.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여권 원로 세력은 이후 소장파를 달래고 여권 단합에 나서면서 친야 성향의 시민단체 등에 대한 공격을 본격화한다. ‘최시중 돈 봉투’는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여권 ‘돈 폭탄’과 ‘당선 축하금’ 연관성은?

이즈음 여권의 한 원로 실세는 한나라당의 한 국회의원에게 “당선 축하금을 안 받아 촛불 집회가 일어났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에서 패배했음에도 여전히 물적인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야권에 비해 여권의 물적 기반이 취약하니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2008년 7~9월 여권에 떨어진 ‘돈 폭탄’이 이 인사가 말한 ‘당선 축하금’과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6인회' 멤버였던 박희태 국회의장은 전당대회에서 돈을 살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이나 이번 ‘최시중 돈 봉투 의혹’은 그 출처가 어디이냐에 따라 여권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 이런 내용은 야권 인사들보다는 여권의 일부 인사들이 사석에서 은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 돈을 쓸 리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딘가로부터 돈이 들어왔고, 추적이 가능하다면 그 줄기를 따라가면 ‘저수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돈의 출처와 관련해 방통위원장의 특수활동비와 연관 지어보기도 한다. 2008년 당시 방통위원장의 특수활동비는 28억원 남짓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설령 이 경우라고 해도 쓰임새가 특수활동비의 본래 용도와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워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수백억 원대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김학인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은 최위원장의 정용욱 전 보좌역에게 2억원을 준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지난 1월26일 아시아경제 신문은 2009년 당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약칭 방통위)에 속해 있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의 증언을 보도했다. “2009년 7월 미디어법이 통과된 직후 정용욱 전 최시중 위원장 보좌역이 (의원이) 해외 출장을 갈 때 용돈으로 쓰라며 5백만원을 건넸으나 돌려주었다”라는 것이다. 최위원장측은 이에 대해 “정 전 보좌역 개인 일이다”라거나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으나 증언은 구체적이었다.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최위원장과 ‘최시중 양아들’로 불리는 핵심 측근인 정 전 보좌역은 의원 다수에게 돈을 뿌린 것으로 보인다. 정 전 보좌역이 독자적으로 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상식인 만큼 최위원장이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정용욱 전 보좌역은 당분간 귀국 안 할 듯

1월27일 오전 10시 최위원장실에 취재 내용에 대한 최위원장의 입장을 듣고 싶다고 하자 “대변인실에 물어보라”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후 6시쯤 전화 연결이 된 방통위 이태희 대변인은 “(최위원장은) 사실 무근이고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시사저널>에 증언한 국회의원 외에 다른 두 명의 의원은 반응이 약간 엇갈렸다(상자 기사 참조). 한 의원은 “누가 그러더냐. 기억나는 바가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전에는 “그 얘기는 나중에 하자”라고 말했었다. 또 다른 의원은 “그런 사실이 없다”라고 부인했다. 정용욱 최시중 방통위원장 전 보좌역은 해외에 체류하고 있어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는 애초 1월25~26일께 귀국해 검찰 수사에 응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분간 귀국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대구대 법학과를 나온 정 전 보좌역은 정치 컨설턴트 회사를 경영하다 최위원장을 만나 최측근이 되었다. 그는 지난해 10월20일 갑자기 사표를 내고 해외로 출국해 말레이시아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학인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의 EBS 이사 선임을 도와주는 대가로 2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2008년 국회의원들에게 돈을 전달하는 과정에도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그의 역할이 더 주목된다. 이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메시지를 남겼으나 1월27일 현재까지 답변이 없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A, "내 기억에는 없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으로부터 2008년 추석 직전 ‘명절 떡값’을 건네받았다가 돌려준 것으로 알려진 한 국회의원은 관련 사실에 대해 묻자 처음에 “내 기억에는 없다”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구체적인 돈 액수까지 제시하자 그는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지만, 별로 기억나는 바가 없다”라고 말했다.

돈을 전달한 당사자로 지목된 정용욱 전 보좌역과는 알고 지낸 사이이지만 최위원장과는 돈을 받을 정도로 사이가 좋은 관계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사실 여부를 재차 확인하자 나중에는 “나와 관련해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정황에 대한 질문에도 “나는 그것과 관련해서 아는 바가 없다”라고 답변했다.

‘의원실에서 돈을 받았다가 돌려줬을 수도 있지 않느냐’라는 질문에는 “그런 경우가 어디에 있나. 돈이라는 것은 직접 받는 것이다. 돈을 방(의원실)에 놓고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다”라고 말했다. 돈이 전달되었다면 의원이 모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돈 부분은) 본인이 받았다고 이야기하기 전에는 현실적으로 알아내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 돈을 수표로 주었을 일은 없을 것 아니냐”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B "정용욱, 얼굴 본 적도 없다"

또 다른 국회의원은 ‘2008년 추석 직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보낸 돈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금시초문이다”라며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상황이 최위원장으로부터 ‘명절 떡값’을 받을 입장에 있지 않았다고 했다. 청와대에도 못 갈 정도로 권력 실세와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특히 정용욱 전 보좌역의 경우 “얼굴도 못 보았다”라며 친분이 없다고 밝혔다. 정 전 보좌역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소속된 상임위원회도 관련이 없어서 부딪칠 일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 전 보좌역이 의원실로 찾아왔었다면, 보좌관이 그가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라며 의원실에 돈이 전달되었을 가능성 자체를 부인했다.



<시사저널> 취재가 최시중 사퇴 불렀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1월27일 오후 4시 느닷없이 사퇴했다. 그는 “사임 발표가 갑작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이 떠나야 할 때이다”라고 사퇴하는 이유를 밝혔다. 연초부터 측근인 정 전 보좌역의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으나 최위원장의 갑작스런 사퇴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이날 오전 10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시사저널>은 최위원장측에 그가 2008년 일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게 수천만 원을 건넸다는 증언 내용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청한 상태였다. 최위원장은 답변하는 대신 사퇴했다. 최위원장이 갑자기 사퇴한 배경에 <시사저널> 취재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방통위 이태희 대변인은 “사퇴는 최근 제기된 의혹 등과는 관련이 없다. 조직이 언론의 공격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사퇴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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