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 꽂히는 충무로 ‘냉소의 화살’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2.02.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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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범죄와의 전쟁> 등에서 ‘권위적이고 음흉한 집단’으로 묘사…지난해 화제작에서도 대동소이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제공

폭력 조직의 중심 인물이 폭행 사주 혐의로 체포된다. 담당 검사는 교도소에 반드시 집어넣겠다고 벼르는데, 체포된 인물은 종친회를 통해 알게 된 검찰 간부에게 전화를 한다. 담당 검사는 곧 간부에게 불려가고 용의자는 무슨 일 있었냐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유의 몸이 된다. 2월2일 개봉하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한 장면이다. 1990년대 초반 부산이라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을 주요 배경으로 삼은 영화이지만 ‘로비에 흔들리는 검찰’ 내부의 모습을 상세하게 그려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난해 개봉해 2백39만명이 관람한 <의뢰인>에서도 검찰은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연쇄 살인 용의자를 잡기 위해 협박을 마다하지 않고 함정 수사까지 펼친다.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검찰은 결국 생각지도 않은 경로로 범죄자를 잡게 되지만 뒷맛은 영 씁쓸하다.

요즘 충무로에서 법조계는 좋은 먹잇감이다. 권위적이고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음흉한 집단으로 묘사되기 일쑤이다. 대중은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법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임의적으로 법 집행을 하는 스크린 속 법조인의 모습을 보며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을 곱씹는다. 지난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흥행 태풍을 일으켰던 <도가니>와 최근 ‘제2의 도가니’로 불리며 화제를 낳고 있는 <부러진 화살>의 상업적 성공은 이런 세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왼쪽) ⓒ 아우라 픽쳐스 제공 (오른쪽) ⓒ CJ 제공
검찰 간부가 아들의 범죄를 은닉하는 내용을 담은 <세븐데이즈>나 아무렇지도 않게 스폰서에게 돈을 받는 검사의 부정한 모습을 정밀 묘사한 <부당거래>, 고압적인 검사의 모습을 구현한 <의뢰인>은 그나마 약과이다. 이들 세 영화는 실화보다는 허구에 방점을 찍으며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에 더 치중했기 때문이다. 관객은 이들 영화의 내용을 스크린 속의 그럴듯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치는데, 최근의 법조 관련 영화들은 실화를 앞세우며 관객의 공분을 이끌어낸다. 영화 속 허구보다 더 기가 찰 현실의 이야기, 그리고 그에 대한 관객의 분노 폭발과 갈채는 사법 체계에 대한 대중의 극단적인 불신을 투영한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법조계에 대한 충무로의 냉소적인 시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5공화국과 6공화국 시절 부산에서 벌어진 검은 커넥션을 까발리며 법조계의 음습한 모습을 들춰낸다. 검찰을 나간 전 간부가 후배 검사를 고급 일식집으로 불러내 수사 대상자와의 술자리를 주선하는 장면, 수사 중단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건네진 황금두꺼비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는 검찰 간부의 모습 등은, 지금 이곳으로 이어지며 법조계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한다.

죽도로 용의자를 구타하거나 용의자의 국부에 발길질을 하는 깡패나 다름없는 검사가 조직폭력배들을 구속시킨다는 <범죄와의 전쟁>의 내용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복마전 같은 법조계에서 조금이나마 법 질서 확립에 기여하는 검사는 승진 욕에 눈이 먼, 꼴통 검사라는 영화의 설정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권력과 돈의 향배에 민첩하게 움직이는 이 영화 속 주인공 익현(최민식-세관 공무원을 하다 그만둔 그는 폭력 조직의 이권을 위해 일하는 브로커로 등장한다)의 자식 교육도 의미심장하다.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 그가 애지중지 키워낸 아들은 다른 직종도 아닌 검사를 삶의 길로 택한다. 모든 것을 이루어 더할 나위 없어 보이는 익현의 표정은 너무나도 익숙한 대중들의 비아냥 섞인 한마디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은 검찰의 나라이다.’ 법조계의 행태나 대중의 정서가 변하지 않는 한 법조계를 향한 충무로의 냉소적인 이죽거림은 끝나지 않을 듯하다.

ⓒ 에스와이코마드 제공
<뱅뱅클럽>은 1990년대 초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수단에서 내전과 기아의 참상을 찍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실존 인물들을 그린 극영화이다. 영화는 1990년 만델라가 석방되고, 인종 분리 정책이 폐기되었던 때부터 1994년 총선으로 만델라가 집권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그린다. 이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흔히 화해 무드가 이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유혈 참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9백만명의 인구를 지닌 줄루족을 기반으로 한 인카타 자유당은 만델라가 이끌던 ANC(아프리카민족회의)와 대립한다. ANC가 인종 화합 정책을 지향하고 좌파 성향이었던 반면, 인카타 자유당은 줄루족의 독립을 지향하고 친자본주의적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ANC와 인카타의 흑-흑 갈등이 심화되면서, 양측의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백인 정부와 ANC와 인카타 사이에 폭력이 순환했고, 그 생생한 분쟁 현장을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이 모여들었다.  

영화는 신참인 그렉이 인카타 숙소까지 찾아가 ANC 지지자를 무참히 살해하고 불태워 죽이는 장면을 찍어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되는 과정을 생기 있게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성공담이나 무용담이 아니다. 영화는 분쟁 사진작가가 본질적으로 맞닥뜨리는 질문을 피해가지 않는다. 남의 불행을 찍어 출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이 윤리적 최선일까. 그렉의 동료 케빈은 수단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소녀를 노리는 독수리를 찍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이후 쏟아진 “소녀는 어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

케빈은 “좋은 사진은 질문을 던지는 사진이다”라고 말한다. <뱅뱅클럽> 역시 사진가, 다큐멘터리스트, 인터뷰어 등 기록하는 자들이 직면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질문으로 던진다. 답은 없다. 다만 그 질문을 끝까지 안고 가면서, 내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윤리적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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