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 ‘디젤 혈전’ 불붙었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2.0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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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차’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올라…각국 브랜드, 다양한 모델 쏟아내

자동차 시장에 ‘디젤 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연초부터 국내외 업체를 가리지 않고 디젤 모델을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다. 하이브리드 차종의 미래에 대한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디젤 엔진이 ‘친환경’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2000cc급 이하에서 디젤 엔진의 연비는 웬만하면 20km/ℓ를 넘는다. 이 정도면 더 비싸고 축전지 수명이 정해져 있는 하이브리드 차종보다 소비자에게는 근사한 대안이다. 당연히 수요가 따르고 참여 업체가 늘어나면서 백병전이 벌어지고 있다.

신규 등록된 수입차 중 디젤 모델이 35.2% 차지  

BMW 미니 디젤은 19.9km/ℓ의 연비를 자랑한다. ⓒ 시사저널 이종현
국산차 업계의 대표 선수인 현대차가 연초에 드디어 중형차 시장에 디젤 엔진을 단 모델을 내놓았다. 왜건형만 있던 i40에 세단 타입의 ‘i40 살룬’을 내놓으면서 디젤 모델을 투입시켰다. 디젤 승용차 시장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던 수입차 업계에서도 공세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BMW코리아에서도 미니 브랜드 최초의 디젤 모델인 미니쿠퍼 디젤 모델을 3종이나 내놓았고, 디젤과는 거리가 멀었던 미국산 브랜드도 디젤 엔진 붐에 가세했다. 크라이슬러코리아는 럭셔리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신형 그랜드 체로키 오버랜드 디젤 모델과 프리미엄 세단 신형 300C 디젤 모델을 내놓았다. 폭스바겐코리아도 2월께 디젤 엔진을 얹은 ‘시로코 R라인’을 선보이고, BMW코리아도 2월에 뉴3 시리즈를 선보인다. 디젤 엔진과 거리가 멀었던 일본차 메이커도 디젤 붐에 가세했다. 닛산의 고급 브랜드인 인피니티는 2월 중에 6기통 3.0ℓ 디젤 엔진을 얹은 FXd를 아시아 최초로 한국 시장에 투입시킨다.

이렇게 디젤 시장이 불붙은 이유는 지난해 ‘고가 승용차’로 분류되는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 엔진 모델이 대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단일 모델로 팔린 차 순위에서 BMW코리아의 520d가 2위에 올랐다. 중형 디젤 모델 520d만 활약한 것이 아니라, 320d나 벤츠 C클래스의 디젤 모델 등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 모델은 지난해 발군의 활약을 했다. 지난해 신규 등록된 수입차 중 디젤 모델 비율이 35.2%에 이른다. 이는 2010년보다 10% 정도 오른 수치이다.

‘연비 좋은 디젤차’로 특화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푸조의 경우 국내에서 판매되는 차의 82.7%가 디젤 모델이다. 푸조의 중형차 모델인 508 시리즈의 Active e-HDi 모델(1560cc)은 연비가 22.6km/ℓ로 경차의 연비를 능가한다. 508 Allure 2.0 HDi(1997cc) 모델의 연비는 17km/ℓ이다. 

소형 스포츠카 콘셉트로 시장의 호응을 얻고 있는 MINI도 연초에 디젤 모델 3종을 내놓고 국산차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2000cc급 디젤 엔진을 단 미니쿠퍼 디젤 모델의 가격은 3천2백90만원부터 시작한다. 이 정도의 20.5km/ℓ 연비라면 국산 중형차 구매 계층이 충분히 구매 대안으로 고려해볼 만한 것이다. 고유가 시대에 평균적으로 30% 정도의 연료비를 절약하고, 약간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감안하면 시장에 먹힐 가능성이 큰 것이다. 2000cc급 부근에서 디젤 엔진을 단 수입차의 경쟁력이 커진 것이다.  

때문에 2000cc급에서 수입차와 국산차의 백병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가로 분류되는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차가 핫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승용 디젤’이 국산차 시장을 잠식하는 선봉장이 된 것이다. 유럽 시장에서는 디젤 승용차가 대세였지만 국내에서는 과거 디젤 국산차가 갖고 있는 소음과 진동, 매연에 대한 인식 때문에 디젤 엔진은 승용차에 부적당하다는 선입견을 형성했었다. 때문에 국산차의 대응도 미미했다. 

왼쪽부터 푸조508, i40 살룬, 쉐보레 크루즈 디젤, BMW 뉴3 시리즈, 크라이슬러 300C 디젤.

현대차, ‘i40 살룬’ 앞세워 공격적인 행보

국산차의 맏형 격인 현대차도 꾸준히 디젤 엔진 승용차를 만들어냈지만 번번이 성과 없이 끝났다. 그러나 올 초 i40 살룬을 내놓으면서 과거보다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i40는 지난해 첫선을 보인 유러피언 스타일의 차로 현대차는 쏘나타보다 가격을 높게 책정해서 내놓았다. 최근 자동차 전문가들에 의해 ‘2012년 올해의 차’로 선정될 만큼 i40는 완성도를 높게 평가받았지만 시장 반응이 시큰둥했다.

쏘나타보다 약간 짧은 차체에 왜건형인 데다 더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는 것에 대해 국내 소비자들은 차갑게 반응했다. 현대차가 내놓은 해법은 세단형 모델에 디젤 엔진을 달아 내놓은 것이다. 엔진이나 스타일까지 유러피언 스타일로 승부를 걸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i40가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디젤 모델에 대한 수요는 다른 차종에 비해 높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0~12월까지 팔린 i40 중 64.3%가 디젤 엔진이었다. 

참고로 현대차 승용 라인에서 디젤 모델을 판매하고 있는 차로는 엑센트와 i30가 있다. 신형 엑센트 판매량(지난해 5~12월)에서 디젤 엔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23.1%, 신형 i30에서 디젤 엔진 판매 비중(지난해 12월 기준)은 39.8%이다. 가격대가 고급 중형차 수준인 i40에서 디젤 엔진 비중이 64.3%였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국산차에서도 디젤 엔진이 중형차급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산 준중형급에서는 한국지엠의 쉐보레 크루즈가 터줏대감이다. 지난 2009년 크루즈 디젤 모델을 처음 출시한 한국지엠은 “지난 2011년 크루즈 판매량의 20%가 디젤 모델이었다”라고 밝혔다. 2009년 크루즈 전체 판매량의 8%가 디젤 엔진이었다. 2010년에는 7%, 그러다 2011년 20%로 비율이 껑충 뛰었다. 쉐보레 크루즈는 가솔린 모델에서 1.6ℓ/1.8ℓ급 엔진을 쓰지만 디젤 모델에서는 2.0ℓ급 엔진을 쓴다. 한국지엠은 크루즈의 이전 모델인 라세티 프리미엄에서도 디젤 모델을 출시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준중형급에서는 현대차보다 먼저 뛰어든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2월 중에 선보일 BMW의 3시리즈 디젤 모델이나 폭스바겐 코리아의 시로코 R라인도 2000cc급의 전쟁터를 달굴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국산차와 수입차의 가격 차이가 좁혀지고 있는 데다 유럽 메이커의 디젤 엔진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하이브리드와 휘발유 엔진에 매진하던 토요타가 유럽 시장 판매용 차에 BMW의 1.6/2.0ℓ 디젤 엔진을 공급받아 쓰기로 한 계약을 맺은 것은 디젤 승용차 싸움의 판세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정숙성’을 간판으로 내세우던 토요타도 중형급 차에 디젤 엔진을 단 차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디젤 승용 싸움이 갈수록 거세질 양상이다.

ⓒ 한국토요다자동차
중형차 시장을 놓고 전세계 시장에서 근접전을 치르고 있는 현대차와 토요타가 국내에서도 제대로 한판 붙었다. 지난 1월18일 한국토요타자동차는 7세대 캠리인 ‘뉴캠리’ 발표 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이례적으로 토요타 아키오 일본 토요타의 사장(사진)이 직접 참석했다. 본사의 오너 사장이 글로벌 런칭 행사가 아닌 특정 수입국 신차 발표회장에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이 중국이나 독일에서 열리는 신차 발표회장에 참석한 것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올해 해외 첫 방문지를 한국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동일본 대지진 때 제일 먼저 응원해준 한국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새롭게 태어난 토요타의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다시 태어난 토요타가 전하는 첫 메시지가 강해진 팀워크로 선보이는 신형 캠리이다”라고 말했다.

신형 캠리는 미국 데뷔 직후인 지난해 12월에만 3만3천5백대가 팔리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기존 모델보다 70kg 정도 가벼워진 탓에 하이브리드 모델의 경우 연비가 20% 정도 향상되었다. 

나카바야시 히사오 한국토요타자동차 사장은 올해 캠리 목표 판매량이 6천대라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2천대가 팔렸다. 토요타 전체적으로는 코롤라와 캠리, 프리우스, 시에나를 합쳐 1만대를 파는 것이 목표이다. 오카네 유키히로 토요타 최고기술책임자는 한국에서의 경쟁 차종으로 그랜저와 혼다의 아코드를 꼽았다. 그러자 즉각적으로 아키오 사장이 나서서 그의 답변을 수정했다. “뉴캠리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이전 세대 캠리이다.”

뉴캠리 하이브리드 모델의 연비는 23.6km/ℓ이다. 지난해 6월 현대차는 쏘나타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놓으면서 연비가 21km/ℓ로 토요타 캠리 하이브리드 모델의 연비 19.7km/ℓ를 앞섰다고 발표한 것을 6개월 만에 다시 뒤집었다.

지난해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단일 차종 판매 1위에 오른 메르세데스벤츠의 E300은 7천19대, 2위 BMW 520d는 6천2백11대가 팔렸다. 한때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 1위를 할 정도로 기세를 올리던 토요타는 지난해 대지진 여파로 한국 시장에서도 힘든 한 해를 보냈다. 몇 년 전 쏘나타로 일본 시장에 도전했던 현대차는 일본 시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철수했다. 세계 시장에서 라이벌로 떠오르고 있는 현대차를 안방에서부터 잡겠다는 토요타의 목표가 통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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