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압박에 떠는 재계 ‘아킬레스건’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2.0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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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몰아주기 과세는 상당한 타격…2010년 매출 기준에 따라 1백억~2백억원대 증여세 예상

지난해 7월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재벌 개혁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재벌공화국에서 민주공화국으로’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권의 파상 공세에 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으로 불거진 출자 총액 제한 제도(이하 출총제) 부활 논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는 한나라당이 유명무실해진 카드를 꺼내면서 재계를 압박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2009년 출총제 폐지 당시 적용 대상이 되었던 기업은 일부에 불과했다. 공기업을 제외한 20대 기업만이 순자산 10조원을 넘었다. 이 중에서 LG나 SK, GS, LS그룹 등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삼성이나 현대차, 롯데그룹 등도 출자 규모가 순자산액의 40%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에서 예외로 평가되고 있다. 진보 성향 인사들 사이에서도 출총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나올 정도이다. 이의영 군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출총제 자체만으로 보면 여러 가지 허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출총제 자체는 큰 부담 아니지만 상징성 커”

특히 오너가 개인적으로 투자한 법인은 출총제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이들 기업이 보통 계열사의 지원으로 성장한다는 점에서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재계가 여론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출총제가 가지는 상징성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출총제 자체는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공정위에서도 부활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출총제 이슈를 계기로 재계를 압박할 여러 가지 제재 조치가 논의되는 분위기가 더 우려스럽다”라고 귀띔했다.

이미 정부는 2월부터 시행되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통해 재계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오너 지분이 3% 이상인 기업의 경우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발생한 이익을 증여로 간주하는 것이 이 법안의 핵심이다. 기획재정부는 이 개정안을 통해 1천억원 상당의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사실상 계열사 지원을 통해 부를 늘려가던 재계 2·3세들을 겨냥한 법안이 새로 생긴 것이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도 “재벌 총수 일가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거두어들인 이익만 수조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방치되었던 편법적인 지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나섰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의원은 새롭게 개정되는 과세 법안을 통해 재계 2·3세가 납부해야 할 세금을 계산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증여세를 가장 많이 내는 재계 인사는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으로 나타났다. 정회장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현대엠코, 현대위스코, 이노션, 현대오토에버의 대주주이다. 이들 회사의 지분을 적게는 6%, 많게는 20% 보유하고 있다. 이들 기업 매출의 상당수는 계열사에서 발생했다. 특히 현대모비스의 경우 지난 2010년 13조7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 역시 1조3천억원대에 달한다. 이 중 81.06%가 계열사 물량임을 감안할 때 정회장에 대해서는 약 2백38억원의 증여세 부과가 예상된다. 그 뒤를 이어 글로비스의 지분 31.88%를 보유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역시 1백92억원의 세금이 예상된다. 정부회장 역시 글로비스의 매출 중 89.3%가 계열사 물량이라는 점에서 많은 세금이 부과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의원은 “2010년 말 기준 계열사 의존도와 오너 지분을 대입해 계산했다. 수치 변화에 따라 세금 부과액 역시 달라질 수 있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계, 정치권 파상 공세에 숨 고르기 들어가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86억원대의 증여세 부과가 예상된다. 최회장의 경우 SK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K C&C의 지분 44.5%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이 회사의 계열사 의존도는 63.75%에 달했다.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SK C&C 지분 10.5% 보유)에게는 12억원 정도의 세금이 부과될 전망이다.

삼성가 3세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적은 증여세가 예상된다. 삼성그룹 내에서 계열사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서울통신기술 등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 등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지분 보유율이 낮고, 계열사 의존도도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점에서 17억원 정도의 세금이 부과될 것으로 평가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신영자 롯데닷컴 사장,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 롯데 3세 역시 전체 과세액이 수억 원대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미 주식 거래를 통해 3세 승계가 마무리되었고, 롯데그룹 역시 작은 기업을 중심으로 일감 몰아주기가 발생하면서 상대적으로 예상 과세액이 크지 않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 역시 “함량 미달이 아니냐”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법안 시행을 예고한 기획재정부는 당초 일감 몰아주기로 생긴 이익 전체를 증여로 보았다. 과세 적용 범위도 2004년 이익분까지 소급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접었다. 이 돈만 적게 잡아도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어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정희 공동대표측은 “편법적인 방법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재벌들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의 목적이다. 현재의 법안대로라면 계열사 의존도를 줄여 규제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보안이 요구된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삼성SDS, 롯데정보통신, 현대유엔아이, 금호아이디티, CJ GLS, LG C&S, 코오롱아이넷 등 대기업 18곳은 지난 2005년 대비 총수 일가의 지분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관계사 매출 비중 역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SK그룹의 리얼네트워크아시아퍼시픽의 경우 한때 총수 일가가 지분 대부분을 보유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총수 일가가 보유 지분을 전량 매도하면서 계열사 의존도 역시 90%에서 10%로 하락했다. LG이노텍 역시 2005년 8.1%에서 2010년 0.01%로 지분이 감소하면서 계열사 의존도는 71.9%에서 38%로 낮아졌다. 총수 일가의 지분만 규제한다면 자동적으로 일감 몰아주기 관행 역시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 일각의 계산이다.

재계에서 최근 자진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업군을 철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2, 제3의 일감 몰아주기 과세 법안이 탄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동안 국회 차원에서 논의되었던 한국판 버핏세나 법인세 최고 세율 신설안 논의 역시 연기되었다는 점에서 재계는 손해가 아니다. 호텔신라는 최근 자회사 보나비가 운영 중인 베이커리 카페인 ‘아티제’ 사업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아들 구자학 회장 일가가 운영하는 아워홈도 순대 소매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서민 업종까지 무차별 확장하는 재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숨 고르기에 나선 것이다. 삼성·현대차·SK·LG그룹 수석부회장들도 지난 1월16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시스템 통합(SI) 업종이나 광고·건설·물류 분야의 일감 몰아주기를 자제하고 중소기업에게 사업 기회를 넓히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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