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에도 파고드는 ‘돈 냄새’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02.0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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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전대 후보, 대의원 등 50명에게 각각 50만·30만원씩 뿌렸다” 새로운 의혹 제기돼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예비 경선에서 함께 손잡은 15명의 후보들. ⓒ 시사저널 이종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파문’의 불똥이 민주통합당으로 튀면서 ‘돈 봉투 사건’이 총선 정국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박희태 국회의장측의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와중인 지난 1월9일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12월8일 민주당 임시 전국대의원대회 때 ‘모 후보’측이 영남권 지역위원장들을 상대로 20만~30만원씩 뿌렸다”라는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자체 진상 조사에 나섰으나 “돈 봉투가 살포되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라는 발표로 논란을 매듭지으려 했다. 그러나 설 연휴를 앞둔 1월19일 KBS가 “12월26일 민주통합당 예비 경선 행사장 화장실에서도 ‘한 후보’측이 돈 봉투를 살포했다”라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검찰이 전광석화처럼 칼을 빼들었다. KBS 보도 직후인 1월20일 돈 봉투가 오고 간 곳으로 지목된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화장실 일대에 설치된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48대의 녹화 기록을 전격 압수한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1월25일 “교육문화회관에서 CCTV 녹화 기록을 확보했기 때문에 어느 후보측에서 돈 봉투를 뿌렸는지 밝히는 것은 시간문제이다”라며 수사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설 연휴 직후부터 민주당 안팎에서는 KBS에 제보한 민주당 인사와 돈 봉투를 뿌렸다고 의심받는 후보자 등의 실명까지 나돌고 있다. 검찰도 CCTV 녹화 기록을 분석하는 것과 별개로 돈 봉투를 살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후보자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수사를 병행하고 있다. 문제는 민주당에 떠돌고 있는 돈 봉투 의혹이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또 다른 돈 봉투 의혹이 제기되었다. <시사저널>은 이 사안을 계속 추적 중에 있다.

지난 1월11일 ‘정치권 동향에 정통한 한 인사’는 기자에게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두 명의 후보가 대의원 등 50여 명을 상대로 각각 50만원과 30만원씩이 든 돈 봉투를 살포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 두 후보의 경선 자금을 제공한 ‘돈줄’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ㄱ후보의 경우, 교육 관련 학원 사업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ㄷ씨가 스폰서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정계에 진출하려고 모색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던 ㄷ씨는 오는 4월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기 위해 헌금조로 거액을 제공한 것으로 안다. ㄱ후보가 전대 과정에서 뿌린 돈도 ㄷ씨가 준 돈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고향이 같고 고교 동문이다.

“검찰도 두 후보 관련 첩보 입수, 상부에 보고”

민주당 돈 봉투 살포 의혹의 장소로 지목된 서울 교육화회관 2층에 설치된 CCTV. ⓒ 시사저널 유장훈
최근 들어 민주당 일각에서도 이런 소문과 함께 실명까지 오르내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ㄱ후보의 최측근은 1월26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ㄷ씨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또한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한 물음에는 “공식적인 후원금이 아닌 불법 후원금을 받은 적도 없고, 경선 당시 돈을 뿌린 적도 결코 없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ㄷ씨측의 설명은 ㄱ후보측과 사뭇 달랐다. ㄷ씨의 한 측근은 “ㄷ씨와 ㄱ후보는 동향 출신으로 아는 사이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경선 때) 후보측에 돈을 준 적은 없다”라고  부인했다.   

ㄴ후보의 경우, 1990년대 중반부터 급성장한 유명 입시학원 두 곳의 원장들이 경선 자금을 댔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학 시절부터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ㄴ후보측은 “해당 학원장들과 ㄴ후보가 가까운 것은 맞지만, 정치 자금을 주고받은 적은 없다. (경선 과정에서) 그 누구에게도 돈 봉투를 준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설 연휴 이전에 이들 두 후보와 관련된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1월25일 “검찰에서도 두 후보의 돈 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된 첩보를 입수해 이미 검찰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사실 정치권에서의 ‘돈 봉투’ 추문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은밀하게 돈 봉투가 오고 간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가령, 최근에도 한 계파의 ‘보스’가 자신의 계파 의원들에게 명절 때마다 ‘떡값’으로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수백만 원씩 돌렸다든지, 다른 계파에 속해 있는 의원을 자신의 계파로 끌어들이기 위해 수천만 원의 ‘스카우트 비용’을 해당 의원에게 건넸다든지 하는 일화들은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돈 봉투를 주고받는 행위는 관행처럼 고착화되어 있다. 당 대표를 지낸 여권의 한 원로급 인사는 사석에서 “과거 양김씨(김영삼·김대중) 시절에 ‘보스’로부터 돈 봉투 한번 안 받아본 사람이 어디 있나. 액수가 많지는 않아도 그게 정이고, 의리였다. 요즘 (정치는) 너무 삭막하다”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인사의 시각은 지금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정서와는 너무나도 괴리되어 있다. 특히 4·11 총선을 불과 70여 일 앞둔 시점에 돈 봉투 파문이 불거졌다는 점에서 그 충격은 고스란히 총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는 돈 봉투 파문이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에 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 사건은 2008년 전당대회 때로 ‘과거형’인 반면, 민주당은 현 지도부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과거에는 그랬다 치더라도 지금도 그런 행태가 남아 있느냐”라는 인식이 유권자 사이에 폭넓게 확산되면 민주당으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복병과 맞닥뜨리게 되는 셈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이 사석에서 기자에게 “돈 봉투 사건이 한나라당에서 시작되었지만, 검찰 수사가 길어질수록 민주당이 총선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라고 우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군다나 ‘먼저 매를 맞은’ 한나라당은 쇄신책을 내놓으면서 조기에 봉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데 비해 민주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설 연휴 이후부터 본격화하고 있어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특히 민주당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돈 봉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민주당 내에 불어 닥칠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민주당이 ‘돈 봉투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총선에서 ‘표 떨어지는 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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