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는 지난해 9월17일 미국 뉴욕 맨해튼 금융 구역 ‘자유광장’에서 시작된 지 3개월 만에 미국 100개, 전세계 1천5백개 도시로 확산되었다. 시위대는 당초 미국 금융기관이나 다국적 기업의 탐욕을 규탄했으나 전세계로 퍼지면서 상위 1% 부자에 반대하는 사회 운동으로 발전했다. 경제 침체 탓에 실직하거나 첫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 실업자들은 금융 위기의 주범이라고 지탄받는 은행 최고경영자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보수와 연금을 챙기는 것에 분노했다. 미국 최고경영자가 일반 직원보다 4백73배나 많은 보수를 받는다는 일부 보도까지 나오면서 불만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미국의 진보 성향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는 ‘미국 최고경영자 보수는 지난 2000년 일반 직원의 2백99배까지 치솟았다. 금융 위기로 인해 2009년 1백85배로 줄어드는가 싶더니 2010년 2백43배로 다시 뛰어올랐고 조만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 한국 기업의 최고 경영진은 얼마나 받을까?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적정한 수준일까? 최고 경영진이 받는 보수가 그들이 창출한 실적이나 경영 효율성에 부합할까? 그것을 알아보기 의해 <시사저널>은 국내 100대 기업 등기이사(상근직 사내이사)의 보수와 일반 직원의 급여 차이를 산출했다. 국내 100대 기업이 2010년 4분기부터 2011년 3분기까지 발표한 분기 보고서에 나온 1인당 직원 급여액과 1인당 등기이사 보수 지급액을 기초로 해 지난해 3분기 분기 보고서에 나온 누적액에다 2010년 4분기 금액을 합산했다.
임직원에게 부여하는 주식 매수 선택권(스톡옵션)은 보수나 급여 산정에서 제외했다. 미래에 일정 양의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인 주식 매수 선택의 가치를 정확하게 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식 매수 선택권이 고위 임원에게 주로 부여되는 것을 감안하면 등기이사가 받는 보수 총액은 공시 금액보다 훨씬 커진다. 조사 대상 100대 기업 가운데 38개 기업이 주식 매수 선택권을 고위 임원에게 부여했다. 시가총액 기준 100대 상장 기업(1월30일 기준)을 조사 대상으로 하되 상장된 지 1년 미만인 기업은 제외했다. 시가총액 100대 기업 가운데 이마트와 한국항공우주가 조사 대상에서 빠진 것은 이 때문이다. DGB금융지주나 BS금융지주의 등기이사는 계열사 임원을 겸직해 업무 비율에 따라 보수의 10~20%만 받고 있어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일본 11배·독일 12배·프랑스 15배보다 높아
국내 100대 기업 등기이사(사내이사)의 1년 평균 보수(11억4천3백만원)는 직원 평균 급여(6천2백30만원)의 18.44배나 되었다. 일본(11배), 독일(12배), 프랑스(15배)보다 많았고 영국(22배)이나 미국(4백75배)보다는 적었다. 고위 임원에게 부여하는 주식 매수 선택권에서 얻은 시세 차익이나 미실현 이익은 보수 총액 산정에서 제외하다 보니 국내 100대 기업의 등기이사 보수액은 실제보다 적게 공시되고 있다. 대기업 등기이사의 평균 보수액이 직원 급여의 20배가 넘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 등기이사 보수액은 선진국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최고경영자 보수가 많기로 유명한 영국(22배)과 비슷한 수준이다.
등기이사 보수와 직원 급여의 차이가 가장 큰 업체는 삼성전자이다. 1인당 평균 보수액이 직원 평균 급여보다 1백56.4배나 되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1백65조원, 영업이익 16조2천5백억원(잠정실적)을 거둬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상근 사내이사에 오른 최지성 부회장, 이윤우 상임고문, 윤주화 사장은 지난해 개별적으로 1백30억원에 가까운 보수를 챙긴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물산 등기이사의 1인당 보수는 직원 급여의 68.2배로 삼성전자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그룹 주력사(플래그십)인 CJ제일제당, SK텔레콤, 롯데쇼핑이 3, 4, 5위에 올랐다.
이와 달리 한전기술, 한국전력, 강원랜드, 한국가스공사 같은 공기업에서는 최고 경영진과 직원 사이 보수의 차이가 적었다. 한국전력은 2.7배에 불과했다. 한국가스공사는 2.4배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가스공사 직원들의 평균 급여는 7천6백만원, 임원 보수는 1억8천3백만원이었다.
임원은 삼성전자…직원은 신한금융
직원 급여가 가장 많은 업체는 신한금융지주였다. 1인당 평균 급여가 1억6백만원이나 되었다. 삼성증권(9천만원), 우리투자증권(8천6백만원), 한국금융지주(8천5백만원), 삼성생명(8천4백만원)이 각각 2, 3, 5, 8위에 올랐다. 제조업체로서는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돋보였다. 현대제철(8천6백만원), 기아자동차(8천5백만원), 현대차(8천2백만원)는 각각 3, 5, 10위에 올랐다.
임원 보수가 가장 많은 곳은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 직원 평균 급여액은 8천2백만원에 불과했으나 등기이사 보수는 1백27억8천만원으로 압도적 1위이다. 2위 삼성물산(41억원)의 세 배가 넘었다. SK텔레콤 최고 경영진의 보수는 33억원이 넘어 3위에 올랐다. 직원 급여가 많은 현대차그룹 계열사는 등기이사의 보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현대차가 20억원을 넘겨 12위에 올랐으나, 현대제철은 16억원에 미치지 못해 20위에 턱걸이했다.
업무 능력이나 리더십이 탁월한 경영진이 생산성이나 실적 기여도에 걸맞게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현대 기업 문화에서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버트 프랭크 미국 코넬 대학 경영학 교수는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기고하는 칼럼 ‘경제 시각(Economic View)’에서 “이익 100억 달러를 거둔 기업이 최고경영자의 판단에 따라 3천만 달러를 더 버는 것은 쉽다”라고 주장했다. 최고경영자가 영업이익 5천억원을 더 벌어온다면 성과급 100억원을 더 지급하는 것이 문제가 될 리 없지 않느냐는 뜻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문제이다. 임원 보수가 치솟다 보니 자기 급여 수준에 불만을 가지는 직원이 늘어나고 있다. 연봉 5천만원에 만족하던 종업원도 한 해 수십억 원씩 챙기는 경영진을 보면 자기 업무나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 업무나 역량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직원에게서 업무 의욕이나 생산성의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고용이 불안해지고 청년 실업이 늘어나고 있는 ‘경기 대후퇴(Great Recession)’ 와중에 경영진이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챙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월스트리트 점령’이나 ‘상위 1%에 대한 하위 99%의 저항’ 같은 계층 갈등이나 사회 불안이 조장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경영진의 탐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경제 불평등이나 불공정성은 모두에게 좋지 않다. 최고경영자가 매일 직원 연봉보다 1만 달러나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는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노동자는 계속되는 임금 하락 위협, 간단해진 해고 절차, 정규직을 대체하는 임시직의 증가, 지속적인 다운사이징 등으로 압박을 받는 반면 경영자는 이렇게 해서 창출한 추가 이윤을 주주들에게 (배당 방식으로) 분배해서 그들(주주)이 경영진의 과도한 보수를 문제 삼지 않도록 한다’라고 갈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