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에 떨고, 물갈이설에 울고…
  • 김지영 기자·조진범│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02.07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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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예고편’ 여야 공천 전쟁 막 올라…현역 의원들, 대거 교체·전략 공천 예고에 바짝 긴장

2월2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정홍원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 위원장(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전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드디어 출발 총성이 울렸다. 여야가 본격적으로 총선 체제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이 지난 1월31일 검사장  출신의 정홍원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공직후보자 추천심사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한 데 이어, 민주통합당도 그 이튿날인 2월1일 공정거래위원장 출신의 강철규 우석대 총장을 공천심사위원장으로 발표했다. 여야는 대폭적인 ‘물갈이’를 예고하고 있어 ‘공천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새누리당 - “개연성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혐의만 갖고도 공천에서 배제할 수 있다”

“예고편에 불과하죠.”

지난 1월말 여의도 정가에 나돈 새누리당 ‘공천 살생부’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이다. 공천 심사가 진행될수록 출처 불명의 공천 살생부가 쏟아질 것이라는 의미이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의 강화된 도덕성 기준에 따른 ‘맞춤형 살생부’가 곧 등장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영남권 한 재선 의원실의 보좌관은 “당 일각에서 비대위의 도덕성 기준을 적용해 현역 의원들을 검증해봤는데 60여 명에 이른다는 얘기가 들린다. 사실상 공천 살생부가 아니겠느냐. 60여 명의 명단이 어떤 식으로든 흘러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역 의원들은 공천 살생부 효과에 전전긍긍한다. 출처 불명의 괴문서이기는 하지만, 나름으로 그럴 듯한 배경을 갖추고 있어 공천 심사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공천 살생부에 포함되었던 한 중진 의원은 “소문에 굉장히 민감한 것이 정치권의 생리인데, 공천 살생부에 이름이 오르면 더 깐깐하게 검증받을 수 있다. 소문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라고 걱정했다.

현역 의원들의 걱정이 현실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권영세 사무총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부정 비리 연루자’ 공천 기준에 대해 “무죄 추정 원칙이 있지만, 어느 정도 혐의를 받고 있느냐, 그럴 개연성이 어느 정도 있느냐에 따라 혐의만 갖고도 공천에서 배제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당 이미지에 치명타를 안긴 중앙선관위 디도스 사건이나 전당대회 돈 봉투 파문, 부산저축은행 사태 등에 연루된 의원은 공천 심사를 통해 걸러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도덕성 기준은 ‘친박’과 ‘친이’를 가리지 않는다. 실제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친박 의원들의 이름도 상당수 거론된 상태이다. 당 사무처의 한 인사는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공천위)가 본격 가동되면 현역 의원뿐 아니라 예비후보들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 투서가 산더미처럼 쌓일 것이다. 언론을 통해 구설에 오르거나 검찰의 내사를 받는 인사들은 서류 심사에서 우선 탈락할 수 있다. 정치적 고려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친이계 의원들의 긴장감은 더욱 크다. 공천위원들이 친박 일색이라 지난 2008년의 18대 총선 공천과 정반대의 시나리오가 연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른바 ‘보복 공천’에 대한 걱정이다. 친박계 일각에서조차 걱정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친박계 한 핵심 의원은 “공천위의 면면을 볼 때 솔직히 걱정된다. 공천 결과가 조금만 이상하면 난리가 날 것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강조한 시스템 공천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하위 25% 배제 룰’과 ‘전략 공천’도 현역 의원들을 잠 못 들게 한다. 현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한 수도권에서는 하위 25% 배제 룰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며 초조해하고, 새누리당의 강세 지역인 영남권 의원들은 전략 공천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지난 2월2일 공천위원들을 임명하는 자리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게 국민이 정말 원하는 공천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라고 밝혔다. 개혁 공천을 강조한 발언이다.

■ 민주통합당 - “호남 중진이니 무조건 물러나라면 ‘나이 들면 물러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지난 2월1일 국회 민주통합당 당 대표실에서 한명숙 대표와 강철규 신임 공천심사위원장(오른쪽)이 악수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강철규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사람을 존중하는 인물 △시대 흐름을 읽고 99% 서민의 아픔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인물 △공정과 신뢰 사회를 구축할 인물 등 세 가지 공천 원칙을 제시했다. 강한 어조로 “심부름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민주당 내에서는 “마치 ‘준비된 공심위원장’이 온 것 같다”라는 말이 나왔다. 당 안팎에서 “강위원장은 눈치 안 보고 중진 의원들의 목도 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강철규호’의 여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선 민주당 공천이 단순히 민주당만의 공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통합진보당 등 야권과의 총선 연대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복잡한 함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야권 연대와 관련해서는 지난 1·15 전당대회 이후 민주당 내에서도 물밑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민주당의 중량감 있는 핵심 인사’는 민주당 중진 의원 및 핵심 인사 다섯 명이 모인 오찬 자리에서 “총선에서의 야권 연대는 그리 어렵지 않다. 수도권과 호남 지역에서 사고가 난 지역구를 비(非)민주당 후보에게 양보하면 된다”라는 나름의 야권 연대 방식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내에서 현역 의원 절반 교체설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 내에서는 ‘현역 의원 30% 물갈이설’과 출처를 알 수 없는 ‘호남 살생부’까지 나돌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현재까지 모두 다섯 명의 현역 의원이 호남 지역구를 포기하거나 불출마를 선언했다. 전남에서는 김효석 의원(담양·곡성·구례)과 유선호 의원(장흥·강진·영암), 전북에서는 정동영 의원(전주 덕진)과 정세균 의원(진안·무주·장수·임실) 등이 수도권 출마를 벼르고 있고, 장세환 의원(전주 완산 을)은 아예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이들 지역구가 ‘야권 연대 지역구’로 조심스럽게 부상하는 형국이다.

‘호남 살생부’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 호남에 지역구를 둔 두 명의 중진 의원과 또 다른 의원 등 세 명의 실명이 나돌고 있다. 호남의 한 중진 의원은 최근 한 언론 보도에서 자신이 공천 탈락 예상자로 언급되자, 국회 출입기자실에 있는 해당 언론사를 직접 찾아가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또 다른 호남 의원의 보좌관은 “실체도 없는 살생부가 나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역구 지지도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호남 출신 중진 의원이기 때문에 무조건 공천에서 우선 배제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나이 들면 물러나라’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불쾌한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대폭 물갈이설에 살생부까지 나돌면서 호남 지역 정가에서는 현역 의원들과 예비후보들 간의 신경전도 날카롭다는 전언이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새누리당의 ‘현역 의원 절반 교체설’이라는 프레임에 민주당이 말려들면 안 된다. 새누리당은 현 정권에 등을 돌린 민심 수습 차원에서 대폭 물갈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민주당까지 거기에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한겨울 추위보다 매서운 공천 칼바람이 여의도에 몰아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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