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복’에게 물린 보시라이의 운명은?
  • 소준섭│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12.02.1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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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 중국 충칭 시 당서기, 부시장의 망명 시도 사건으로 곤욕…‘권력 투쟁’으로 보는 시각도

과연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 시 당서기는 뉴스를 몰고 다니는 풍운의 인물이다. 급기야 그의 오랜 심복이 미국 망명을 시도하고 그를 비난한 사건이 일약 세계적인 화제로 비약되어 그의 이름이 또다시 회자되고 있다. 보시라이의 측근이자 ‘현대판 포청천’으로 불리며 중국인들의 관심을 받아온 왕리쥔(王立軍) 충칭 시 부시장이 돌연 미국 망명을 시도한 것이다. 그의 미국 망명 기도는 중국 정부 수립 이래 최초로 발생한 중국 최고위층의 미국 망명 시도이다.

더구나 왕리쥔은 자신을 키워준 보시라이를 ‘간신’이라고 맹비난해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전세계에 보내는 공개 서신’을 2월3일 작성하고 청두 미국 총영사관에 갈 때 몸에 지니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서신은 “보시라이 서기는 당대 최대 위선자이다. 그가 공산당을 찬양하고 범죄를 소탕한 것은 오로지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며 한편의 ‘문화대혁명’이었다. 이러한 간신이 권력을 잡으면 중국의 재난이며 민족의 불행이다”라는 등 보시라이에 대한 맹비난으로 가득 차 있다.

2010년 3월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회 11기 3차 회의에 참석한 보시라이 충칭 시 당서기가 기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 imaginechina

보시라이 맹비난하는 욍리쥔의 ‘진심’ 주목

사건이 발생한 시점도 대단히 묘하다. 일주일 후면 현 국가 부주석이며 차기 주석으로 확실시되는 시진핑(習近平)이 미국을 방문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때면 항상 그랬듯이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이번에도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다만 이번 사건에 대한 당국의 처리 방식은 다른 ‘민감한’ 사안과 달랐다. 다른 민감 사안에 대해서는 ‘완전 봉쇄’였지만, 이번 사건의 과정에서는 온라인이나 SNS를 통한 대중들의 ‘열띤 토론과 비판’에 대해 전혀 통제하지 않고 마치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자유롭게 ‘보장’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원래 몽골족 출신인 왕리쥔은 말단 공안 직원에서 출발해 충칭 시 공안국장을 거쳐 부시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보시라이는 랴오닝 성 다롄(大連) 시에서 일하던 시절에 왕리쥔을 처음 보고 그의 업무 능력을 눈여겨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보시라이가 충칭 시 당서기가 되면서 2008년 왕리쥔을 공안국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왕리쥔은 2월 초까지 충칭 시 공안국장을 겸하며 충칭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이끌었다. 그는 2007년 이후 무려 6천여 명의 폭력배를 일망타진해 잡아들임으로써 시민들로부터 ‘치안 영웅’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난 2월2일 갑자기 환경과 교육 담당으로 보직이 바뀌었고, 8일에는 그가 ‘휴가 방식의 치료’를 받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왕리쥔이 충칭에서 자동차로 네 시간 거리인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하자 보시라이가 곧바로 충칭 시장 황치판(黃奇帆)에게 70대의 경찰 차량으로 주(駐)청두 미국 총영사관을 포위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미국 영사관측은 할 수 없이 왕리쥔을 하루 만에 중국측에 넘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무부와 중국 외교부 양측 모두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서 하루 동안 체류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타이완의 한 매체는 왕리쥔이 영사관을 나와 요원들에게 끌려가면서 “나는 보시라이의 희생양이다. 혼자 죽을 수는 없다!”라고 고함을 질렀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2월9일 홍콩 언론들은 왕리쥔이 전날 중국공산당의 중앙 감찰 기구인 기율검사위원회에 의해 베이징으로 송환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율검사위는 주로 당 고위 간부들에 대한 부패 혐의를 조사한다.

중국 민간의 온라인상에는 왕리쥔이 자신의 부패 사건이나 과거 공안국장 시절 강압적 수사 방식이 문제가 되어 축출 위기에 몰리게 되자 이번 사건을 만들었다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아울러 원래 보시라이의 처였던 구카이라이의 부패를 중앙에 제보했었다는 ‘미확인 추측성 주장’들이 떠돌고 있다.

중국 외교부 “개별적인 사건으로 이미 해결”

최근 보시라이를 맹비난하며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했던 왕리쥔 중국 충칭 시 부시장. ⓒ AP 연합
일부에서는 이번 일이 중국 정계의 권력 투쟁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6년 전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당서기의 실각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천량위 전 서기는 상하이방의 핵심 인사였지만, 2006년 갑자기 기율검사위에 의해 비리 혐의로 체포된 뒤 18년형을 선고받음으로써 하루아침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당시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이끄는 공청단파(공산주의청년단파)가 상하이방을 제압하기 위한 계략이었다는 분석이 있었다.

중국 정계의 양대 파벌인 공청단파와 태자당 및 상하이방은 2000년대 들어서 정책 대결 혹은 경쟁 구도를 이어가고 있다. 대체로 평민 출신인 공청단파가 분배와 조화를 강조하는 반면 ‘귀족 출신’인 태자당과 상하이방은 성장과 효율을 중시한다. 예를 들어, 글로벌 금융 위기 때 4조 위안에 이르는 경기 부양 자금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둘러싸고도 공청단파는 쓰촨 대지진 피해 지역 복구 및 내수 시장 육성에 사용하자고 주장한 반면, 태자당 및 상하이방은 수출 기업에 우선적으로 지원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좀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지는 않지만, 이들의 경쟁은 은근하고도 꾸준히, 그리고 치밀하게 진행된다.

그렇다면 풍운의 인물 보시라이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바야흐로 세계의 이목이 보시라이라는 한 인물에 집중되고 있다. 사태의 진행 추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중국 외교부의 ‘입’을 독해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2월9일 추이톈카이(崔天凱)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처음으로 이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최근 발생한 사정은 대단히 개별적인 한 사건으로서 이미 해결이 되었다.” 언급은 ‘가벼웠지만’, 그 말이 뜻하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대단히 흥미롭지만 큰 물줄기를 흔들 사안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은 메시지로 볼 수 있다. 

결국 보시라이가 이번 사건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침몰에 이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정치의 장막 안에서는 여전히 흥미로운 반전과 돌발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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