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바 경영’ 엔진 달고 다시 솟구친 JAL
  • 도쿄·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2.02.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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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가즈오 회장, 1년도 안 돼 파산한 회사를 흑자로…남은 과제는 기득권 구조의 근본적 개혁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의 일본항공(JAL) 개혁 성과가 다시 주목되고 있다. 불과 1년도 채 안 되어 적자덩어리 일본항공을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소니를 부활시키기 위해 지난 2005년 구원 투수로 투입되었던 미국인 하워드 스트링 씨가 뚜렷한 개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비교된다. 하워드 사장은 결국 지난 1월7일 일본인 히라이 가즈오 사장으로 교체되었다.

일본항공처럼 천문학적인 적자덩어리 회사를 개혁하는 데에 성공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예로 도산에 처한 닛산 자동차를 재생시킨 카를로스 곤 사장이 있다. 일본항공을 살린 이나모리 식 개혁에 일본인들은 공감하고 있다. 그는 확고한 경영 철학과 ‘아메바 경영’ 그리고 헌신적인 봉사 정신을 갖고 있다. 이나모리 회장이 닛산의 카를로스 곤 회장이나 다른 성공한 경영인들과 비교되는 점은 바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헌신적인 봉사 정신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이번 개혁에도 자신이 늘 강조하는 ‘동기가 선한가, 사심은 없는가’라는 마음으로 개혁에 매진해왔다고 말했다.

노구 이끌고 과감한 ‘수술’ 강행

도산했을 당시만 해도 많은 일본인은 “일본항공이 다시 일어서는 것은 꿈이다. 어려울 것이다”라고 보았다. 사실 적자 규모가 9천5백억 엔(13조원)에 이르는 애물을 1~2년 이내에 재생시키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민주당은 사회적 공기인 일본항공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정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활의 키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놓고 고심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나모리 교세라 회장을 선임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또 이나모리 회장 자신도 민주당의 후견인 역할을 해왔고 민주당의 실세인 마에하라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아왔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80세에 가까운 노구인 이나모리 회장의 건강을 염려하는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만류도 적지 않았다.

한때 일본항공은 대학생들이 취업하기를 희망하는 ‘제일 좋은 회사’ 가운데 하나였다. 일본항공의 문장은 일본인들의 자존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의식이 일본항공을 적자투성이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일본항공 임직원 및 국토교통성 관료들의 사고 밑바닥에는 일본항공이 도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경영 실적이 좋지 않아도, 적자가 누적되어도 위기의식 없이 운행을 해왔다. 항공사는 단순히 이익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공기로서의 서비스 역할도 중요하다는 자신들의 방어 논리가 무의식  중에 팽배했다. 회계를 대충 대충 해오고, 채산성이 없는 노선도 이해관계 때문에 존치해왔다. 과거 만성 적자로 인해 결국 사철화된 일본 국철과 아주 흡사한 모양이다.

일본항공의 적자는 이해관계로 얽힌 기관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주무 기관인 국토교통성은 9천5백억 엔의 적자투성이 회사를 견제하고 관리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낙하산 인사의 대상지로 생각했기 때문에 조직을 축소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또 경영자들은 위기의식이 결여되었고 종업원들은 적자 속에서도 고임금을 주장해왔다. 금융권 또한 높은 대출 이자에 대한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적자 회사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채산성 없는 노선을 폐쇄해야 함에도 지방 공항이 죽는다는 이유로, 또 다소 적자가 나더라도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존속해왔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해당 지방의 국회의원도 노선 폐지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해관계자 모두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에 급급했다.

적자 폭이 갈수록 커지고 여론이 악화되자 국토교통성은 경영 합리화를 위해 다소나마 노력하는 듯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 적자인 지방 노선을 해결하는 정책의 하나로 자회사인 JAS를 통합했다. 하지만 이것은 경영 합리화 차원이라기보다는 관료들의 항공 행정 실패의 책임을 일본항공에 떠넘겨버리는 결과만 낳고 말았다. 2010년 1월19일 파산 선고에 이르게 된 것은 이러한 총체적인 부실의 결과였다.

도산에 직면했음에도 위기의식이 보이지 않았다. 내부에서 만든 안은 3년에 걸쳐 회생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채권 금융단의 압력에 마지못해 ‘1년 후인 2011년 3월까지’라는 모양 갖추기 안을 만들었을 정도이다. 근본적인 변화가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나모리 회장이 개혁·회생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일본 사회에서 존경받는 경영인답게 제일 먼저 자신은 일체의 보수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많은 사람을 해고해야 하는데 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편의점의 도시락을 시켜 먹으면서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2010년 1월19일 갓 취임한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항공 회장이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 AP연합

직원들의 의식 개혁이 최대 성공 요인

개혁 방향은 크게 네 가지였다. 먼저 채산성이 없는 국내외 노선 45개를 폐쇄했다. 노선 폐쇄로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던 곳이 바로 지방 공항이었다. 지방 공항은 처음부터 채산성이 없는 것으로 예상되었는데도 건설해 적자의 원인이 되었다. 지방 공항 대부분이 적자이기에 결국 지방 정부의 예산으로 적자를 메우며 유지해왔다. 일본항공의 폐쇄 결정으로 지방 공항의 도태가 시작되었다. 나고야 고마키 공항의 아홉 개 노선을 전부 폐쇄했다. 원래 고마키 공항은 중부 국제 공항이 만들어진 후 폐쇄할 예정이었지만 지역의 압력에 의해 유지되어왔었다. 그 밖에 홋카이도 오카다마 공항의 두 개 노선 등도 폐쇄했다.

둘째는 인원을 줄인 것이다. 약 1만6천명에 달하는 인원을 감축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가능하면 인원을 줄이는 식의 개혁을 하지 않는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지만, 과다하게 비효율적인 인원에 메스를 가하지 않고는 재생의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했다. 세 번째는 연비가 좋지 않은 점보기의 교체였다. 네 번째는 이나모리식 아메바 경영이다. 부문별·노선별·인원별 경영 실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을 적용해 경영의 효율성을 높였다. 일본항공이 회생한 데에는 이러한 대책들이 주효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직원들의 의식을 변화시켰다는 점이 개혁의 최대 성공 요소로 꼽힌다. 이른바 대마불사 의식을 버린 것이다. 항공회사의 특성상 다소의 적자를 감안하고 고객의 서비스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안이한 의식을 전환시켰다.

이러한 개혁의 결과 2010년 4~11월 연결 경영 흑자가 1천4백60억 엔을 달성해 본래 2011년 3기 목표인 6백41억 엔 흑자 목표보다 8백억 엔을 초과 달성했다. 2010년 일본항공이 도산했을 당시 9천5백억 엔의 초과 부채에 빠져 금융단으로부터 약 5천2백억 엔의 부채를 탕감받고 기업 재생 지원 기구로부터 3천5백억 엔의 자본을 투여받은 것도 부활의 밑거름이 되었다. 기존 조직은 3분의 2 수준으로 슬림화되었다.

이나모리라고 하는 경영의 대가에 의해 일본 항공의 급한 불은 껐지만 내외적인 도전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아시아 각국의 저가 항공사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항공은 저가 항공회사와 경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일본항공이 아무리 비용을 삭감해도 가격 면에서 저가 항공을 이겨 내기는 쉽지 않다. 항공업계의 커다란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오랜 세월 국토교통성의 낙하산 인사, 안이한 경영자, 성과는 없어도 고액의 급여에 익숙해 있는 종업원들, 채산성이 없는 지방 노선을 지키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적자임에도 높은 이자로 수익을 챙긴 금융권 등의 기득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일본항공의 개혁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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