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 더는 늦출 수 없다
  • 권오인│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팀장 ()
  • 승인 2012.02.1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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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치권의 규제 완화·재벌 탐욕 맞물려 경제 양극화 심화…출자 제한 등 세 방향으로 대응해야

지난 2월8일 열린 제1회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회(사진)에서는 ‘서민 생활 안정과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한 경제계 다짐’이라는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 연합뉴스

현재 가장 큰 이슈는 ‘재벌 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재벌 개혁에 대한 요구가 정치권, 언론, 시민사회 전반적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여야 정치권에서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당별로 정책 차이는 있지만 출자 총액 제한 제도(이하 출총제)의 재도입, 순환 출자 금지, 중소기업 적합 업종 법제화, 재벌세, 불공정 거래 행위 근절 등 ‘경제 민주화’를 내세우면서 재벌 개혁을 위한 움직임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러한 재벌 개혁 목소리가 커진 이유는 현 정부의 재벌 규제 완화 정책과 이 법안을 통과시킨 정치권 그리고 이를 악용한 재벌의 탐욕이라는 삼박자가 일치해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부와 정치권은 출총제 등의 재벌 규제 제도들이 투자를 저해하기 때문에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재벌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서 출총제 폐지를 비롯해 금산 분리의 완화, 법인세 최고 세율 인하 등의 조치를 강행했다. 하지만 재벌들은 투자 증대보다는 약해진 규제를 이용해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과 경쟁이 쉬운 중소·서민 상권으로의 진출에 주력했다. 일감 몰아주기, 담합, 불공정 하도급 행위 등의 각종 불공정 거래 행위를 통해 이윤 창출에만 급급했다. 그 결과 재벌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누리게 된 반면, 중소·서민 상권과 소비자들의 생활은 궁핍해져 반(反)재벌 정서가 팽배해졌다.

재벌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실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여러 실태 자료 중 최근 시민단체 경실련에서 조사한 15대 재벌의 4년간(2007.4~ 2011.4) 계열사 수를 보면, 2007년 4월 4백72개사에서 2011년 4월 7백78개사로 3백6개사(64.8%)가 급증했다. 다음으로 4년간 신규 진출 업종 비율은 제조업이 25.8%인 반면, 중소기업 및 서민 상권이 비교적 많은 비제조·서비스업은 74.2%로 나타났다. 특히 비제조·서비스업 가운데 중소·서민 상권이 많은 도·소매업을 예로 들면, 21쪽 <표>와 같이 화장품, 의류, 식품, 커피, 베이커리, 농산품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제조·서비스업으로의 진출이 많았던 이유는 업종의 특성상 첫째, 큰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중소기업 및 서민 상권이 많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낮아 자본력과 마케팅 능력만 있으면 쉽게 진출해 이윤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둘째,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가 용이한 업종이 많기 때문에 또한 쉽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즉 비제조·서비스업 중 진출이 많았던 부동산 및 건설업, 도·소매업 등은 전자에 해당하고, 전문 서비스업, 컴퓨터 프로그래밍, 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 등이 후자에 해당한다. 이러한 재벌의 경제력 집중 실태를 볼 때 재벌 개혁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재벌 개혁에 대해 많은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출자에 대한 규제, 중소기업 및 서민 상권의 보호, 불공정 거래 행위의 근절이라는 세 방향의 접근 방식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첫째, 출자에 대한 규제 방안으로는 출총제의 재도입과 순환 출자의 금지가 필요하다. 즉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은 출자 총액 제한을 통해 규제할 수 있으며, 외부 자금 유입 없이 가공 의결권 생성을 통한 그룹 지배와 편법 승계, 주주 권리를 침해하는 행태는 순환 출자 금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최근 정부와 새누리당에서는 출총제를 재도입해도 재벌의 출자 여력이 많아 실효성이 없다고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출총제 폐지 직전 완화될 대로 완화된 출자 한도 40%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즉, 2002년 기준인 출자 한도 25%를 적용하면 충분히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빵집 철수’, 과연 진정성 있는 행동인가

둘째, 중소기업 및 서민 상권의 보호는 중소기업 보호 특별법 또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의 법제화와 비제조·서비스업으로 확대 등 법제도 도입을 통해서 해야 한다. 민간 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제조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재벌은 앞서의 통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최근 비제조·서비스업 진출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이 업종에 대한 적합 업종 선정이 더욱 시급하다.

셋째, 불공정 거래 행위의 근절을 위해서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공정위 전속 고발권의 폐지, 과징금 부과 기준의 상향 조정,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 공정거래법은 공정위의 고발 없이는 검찰이 불공정 거래 행위를 처벌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마땅히 전속 고발권 폐지를 통해 형사 처벌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또과징금 부과 기준의 상향, 공정 거래 위반 행위 전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통해 기업들이 불공정 거래 행위를 통해 얻는 이익보다 잃는 손해액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공정거래법이 이와 같이 개정되지 않고서는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전제품 담합 사건 같은 불공정 거래 행위가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삼성의 아티제(커피, 베이커리), LG의 아워홈(순대, 청국장 등), 롯데 포숑(베이커리), 현대차 오젠(커피, 베이커리 등) 등 재벌들의 일부 사업 철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보면 민심 수습을 위한 생색 내기용으로 비친다. 왜냐하면 먼저 철수한다고 밝힌 시점이 정치권의 재벌 개혁 움직임과 이명박 대통령의 골목 상권 생존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있고 난 후이기 때문이다. 또한 철수한다고 밝힌 회사는 골목 상권에 진출해 있지 않고, 재벌 자녀의 직접 지분율도 낮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재벌들의 최근 일부 사업 철수 행태는 정치권의 재벌 개혁 법안 도입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포석에서 나온, 진정성이 없는 행동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제 재벌들은 더는 전 사회적인 재벌 개혁 움직임에 대해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반재벌 정서를 팽배하게 만든 본인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이를 시정하기 위한 재벌 개혁 움직임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와 정치권 또한 각종 재벌 규제 법안을 철폐한 책임이 있는 만큼, 총선과 대선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에 나서야 한다. 지금도 경제 양극화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볼 때 재벌 개혁은 더는 미룰 과제가 아니다. 결국 경제 민주화 실현의 문제는 경제 양극화를 심화시킨 당사자들이 풀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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