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간 형제애 더 찢는 25년 전 차명 재산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2.02.21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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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자금 사건에서 비롯된 삼성가 상속 재산 분할 소송 막후

1987년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장례식에 모인 이회장의 직계 가족들. 앞 줄 오른쪽부터 이맹희, 이창희, 이건희씨. ⓒ 뉴스뱅크

지난해 말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녀이자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부인 이숙희씨가 상속 재산 분할과 관련해 기업 법률자문역 출신 민 아무개 변호사에게 상담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삼성 창업주가 남긴 차명 상속 재산을 두고 재산 다툼이 불거질 조짐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2월14일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씨가 느닷없이 삼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삼성생명 주식 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이 창업주 자녀 3남5녀 사이에 벌어질 재산 다툼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병철 회장 슬하 3남5녀 사이에 상속 재산 다툼이 불거질 것은 일찌감치 예상되었다. ‘삼성 비자금 사건’을 수사한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지난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이 임직원 명의로 숨겨둔 차명 계좌 1천1백99개, 차명 주식 3백24만주를 포함해 차명 재산 4조5천73억원을 찾아냈다. 차명 재산 목록에는 삼성생명 지분 20.76%를 비롯해 삼성전자·삼성물산 같은 7개 계열사 주식 4조1천9억원어치가 담겼다. 조준웅 특검은 이 차명 재산을 선대 회장에게 물려받은 상속 재산이라고 규정했다. 그러자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가 ‘실명 전환한 삼성생명 지분이 모두 이건희 회장 몫이 아니고 공동 상속인인 형제 몫도 있다’라고 주장하며 상속 재산 가운데 장남 몫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맹희씨는 소장에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은 아버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재산으로 이건희 회장이 다른 상속인에게 알리지 않고 명의신탁을 해지한다는 이유로 이회장 단독 명의로 변경했다. 이에 삼성생명 주식 8백24만주와 삼성전자 주식 20주, 1억원 등을 지급하라’라고 요구했다.

이건희 회장이 보낸 소명 자료가 소송 계기

이맹희씨가 재산 분할 소송을 제기한 계기는 이건희 회장 쪽에서 만들었다. 이건희 회장 쪽이 지난해 6월 ‘상속 재산 분할 관련 소명’ 문서를 CJ 재무팀장에게 보내면서 ‘실명 전환한 차명 재산에 대해 상속 지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라는 요지의 문서에 서명 날인해 서울지방국세청에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맹희씨는 서명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부터 중국 베이징 자택에 칩거하면서 법무법인과 상의해 소송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누나 인희씨, 여동생 숙희·명희 씨와도 긴밀히 상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변호사는 “이회장이 이맹희씨뿐만 아니라 병사한 차남 이창희씨를 뺀 나머지 형제자매들에게도 ‘상속 재산 분할 관련 소명’ 문서를 보냈을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은 왜 하필 지난해 6월에 소명 자료를 보냈을까? 이건희 회장은 재산 다툼 소송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비한 것으로 판단된다. 2011년 6월이면 상속 재산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상속 회복 청구권’의 시효가 끝나기 때문이다. 국내 상속법은 ‘상속권자나 법정대리인이 상속권의 침해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상속권 침해 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지난 1987년 영면했다. 그동안 상속 재산이 차명으로 숨어 있어 상속이 이루어지지 않아 상속권 침해 행위가 있었으나 이미 25년이나 지났다.

따라서 이맹희씨가 상속권 침해 사실을 인지한 시점이 중요하다. 이건희 회장 쪽은 ‘지난 2008년 4월 이른바 삼성특검 수사 발표로 선대 회장이 남긴 차명 재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국내외 언론에 공표되었으므로 당시 이맹희씨가 해당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2011년 4월이 지나면 3년이라는 시효가 완료된다. 이맹희씨는 ‘중국에 체류하느라 차명 상속 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으니 상속 회복 청구권의 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소송 결과에 따라 삼성 지배 구조에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이맹희씨가 승소한다면 나머지 형제까지 상속 재산 분할 청구 소송을 잇따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 ‘기함’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이자 순환 출자 구조에서 핵심 고리 역할을 하는 삼성생명 지분이 형제자매 사이에서 나눠지는 사태는 이건희 회장에게 악몽이다. 이회장이 장악한 삼성의 지배 구조가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 시사저널 우태윤

이맹희씨는 지난 1987년 선친이 사망하고 나서 해외로 떠돌았다.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부인 손복남 CJ그룹 고문이나 장남 이재현 CJ그룹 회장과도 연락을 끊고 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맹희씨는 맏손녀 이경희씨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중국, 몽골, 필리핀에서 보았다는 목격담이 나왔을 뿐이다. 이맹희씨 거처에 대해 신뢰할 만한 정보가 나온 것은 혼외정사로 낳은 아들 이재휘씨의 증언이다. 이재휘씨는 2004년 7월 이맹희씨를 상대로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해 2006년 7월 부산지방법원으로부터 부자 관계를 인정받았다. 이재휘씨의 친모 박 아무개씨는 지난 2월14일 부산가정법원에 이씨를 상대로 제기한 과거 양육비 상환 심판 청구소송에서 승소해 양육비 4억8천만원을 받게 되었다.  

이재휘씨는 이복형제에게 ‘아버지가 어디 사는지’ 물었으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갖가지 소문이나 정보에 기초해 중국 베이징, 상하이를 비롯해 동남아시아까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수소문했다. 이씨가 아버지를 만난 곳은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한 호텔이었다. 2년가량 필리핀에서 건축과 인테리어 사업을 벌였던 터라 이재휘씨는 현지 친구로부터 아버지가 머무르고 있는 호텔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갔으나 이재휘씨는 아버지의 냉대에 서운함만 느끼고 헤어졌다. 이맹희씨가 당시 마닐라 호텔에서 머무른 것을 감안하면 그곳에서 살지는 않는 듯했다.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이맹희씨 거주지가 이번 소송으로 드러났다. 이맹희씨는 소장에 중국 베이징 창핑취 후이룽관쩐 비수이좡위앤 38-19를 거주지로 밝혔다. 이곳은 베이징 한인 밀집 주거 지역 왕징에서 북쪽으로 30분가량 차를 타고 달리면 나타나는 고급 빌라촌이다. 이맹희씨는 이곳과 베이징 교외 순이취 자하오베수에 있는 별장식 주택을 오가며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하오베수 별장은 고급 주택가로 국제학교가 밀집한 곳이다. 별장은 2~3층 단독주택이다. 3백60㎡형 주택은 방 5개, 거실 2개, 화장실 3개를 갖추고 있다. 한 채에 1천5백8만 위안(28억1천8백만원)이다. 7백85㎡형은 방 7개, 거실 5개, 화장실 6개, 실내 풀장까지 갖췄다. 시가가 4천7백만 위안(83억8천3백만원)이다.

베이징 교민사회에 따르면, 이맹희씨가 베이징에 나타난 지는 12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국내 한 인터넷 매체는 베이징 교민의 증언을 통해 ‘이맹희씨는 왕징에 있는 한식당 오발탄에 자주 나타난다. BMW760을 타고 다닌다. 가정부와 통역 등 6명과 함께 다닌다. CJ 중국 지사 인사가 함께하기도 한다’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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