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잘 쓰는 상대와의 결혼, 결코 ‘장밋빛’이 아니다
  •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
  • 승인 2012.02.28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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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만큼 주문과 의무 넘쳐나…연애와 결혼 생활에는 큰 차이

ⓒ honeypapa@naver.com

호기롭게 돈 쓰는 남자들은 연애할 때는 매력적으로 보인다. 멋진 레스토랑, 비싼 명품에 매너도 세련된 데다가 놀 거리에 대한 정보도 많으니 결혼하면 호화롭게 살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그런 남자와 결혼한 다음에는 대부분 고생길이 펼쳐진다. 돈을 잘 벌어도 그렇다. 돈은 공짜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봉이 많은 만큼 스트레스도 많아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부족하고, 집에 돌아와도 쉬려고만 한다. 보스 기질에 젖어 아내한테도 사장님 노릇 하기 일쑤이다.

시부모가 재력가라 남편과 같이 놀고 먹으면 좋을 것 같다. 언뜻, 남편도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물려받은 돈으로 편하게 잘살 듯싶다. 세상에 공짜가 있는가. 며느리를 떠받들며 돈 주는 시부모는 없다. 돈을 받았으니 그만큼 주문과 의무가 넘친다. 돈을 받은 후, 자녀들의 태도가 바뀌면 고소를 해서라도 되돌려 받아내는 것이 재력가들이다. 자연히 돈 받은 자녀들은 집사 노릇을 하느라 바쁘다. 시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돈만 남으면 좋을 것 같지만, 벌 떼처럼 달겨드는 사기꾼들에 둘러싸여 큰 재산을 날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을 직접 벌고 모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능력 없으면서 우아하게 일단 쓰고 보는 사람들은 ‘최악’

마지막으로 최악의 경우, 능력은 없으면서 빚을 얻든, 남에게 손을 벌리든 우아하게 일단 쓰고 보는 사람들이다. 당장은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조만간 빚더미에 올라 자기가 파산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폐를 끼치고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모두 임상에서 경험한 사례들이다. 이처럼 돈 잘 쓰는 상대와의 결혼은 결코 장밋빛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결혼 생활과 연애의 차이일 것이다.

연애뿐 아니라 동업을 하거나 사업 파트너를 고를 때도 비슷한 공식이 적용되니 상대를 고를 때는 신중해야 할 것 같다. 호기 있게 돈을 쓰거나, 감언이설로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제안들에 대해서는 일단 의심을 갖는 것이 옳다. 과연 저런 약속들을 다 지킬 수 있다는 것인지. 어떻게 자금을 대겠다는 것인지, 꼭 그렇게 써야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등등을 짚어 보아야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 대체로 그런 사기꾼들의 유혹에 자꾸 낚이는 사람들은 꼼꼼하게 현실성을 따지지 않고 허황된 꿈을 꾸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참 인복이 없는 사람이다” “재수가 없다”라고 남 탓, 운명 탓을 곧잘 한다. 자신 안에 허황됨, 일은 적게 해도 누리는 것은 다 해 보고 싶다는 비루한 욕망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언변과 청사진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진짜 모습은 보지 못한 채, 집안 살림이건, 회사건, 나라 살림이건, 챙기고 점검하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본다. 과소비하는 개인만 파산하고 빚더미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허세를 부리면 대기업도, 거대 금융 자본도 단박에 넘어가고 만다. IMF 충격 때 우리 나라가 그랬고, 아이슬란드, 두바이, 이탈리아, 그리스가 그런 꼴이다. 복잡한 정치나 경제를 모른 채 작은 살림만 아는 여자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전 지구적으로 물건은 넘치고, 끊임없이 개인의 욕망을 부추기는 매스컴의 유혹은 감당이 안 된다. 중심을 잡고 각자의 소임을 다하지 않으면 개인이건, 국가건, 언제, 어떻게 넘어갈지 모르는 시기인 것 같다.  

여야를 막론하고 총선과 대선으로 여러 가지 복지 혜택을 주겠다는 공약을 내놓는 정치인들이 참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정치인들의 공약을 보면, 자신들이 권력을 잡으면 금방이라도 공정한 유토피아가 구현될 것처럼 보인다. 마치 연애하고 청혼할 때 멋지고 좋은 곳에 데려가주고, 좋은 옷에 좋은 음식만 누리며 살게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허세남 같다. 뾰죽하게 먹고살 만한 대책은 별로 없으면서 미래만 멋지게 그리면 어쩌나 싶다.

과연 그렇게 하기 위해 예산을 어디서 얼마나 절약할 것인지, 어떻게 세금을 걷어 재원을 조달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챙기고 있는지 의심도 든다. 개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해도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불려놓은 나라 빚은 어떻게 하나 걱정이 든다. 물론 이런 정치권을 걱정하는 행정부와 청와대는 더 우습다. 그동안 4대강이다, 뉴타운이다 하면서 정치 논리와 허세로 퍼부은 돈이 얼마인가. 호화스러운 유리창과 대리석으로 지어져서 난방비와 냉방비가 줄줄 새고, 몇 사람 앉아 노닥거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공간을 쓰고 있는 관공서의 건물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사는 선진국의 공무원들은 낡고 비좁은 건물들을 쓰고 있다.

개인과 나라 살림은 자꾸 궁핍해지는데 궁궐보다 더 화려한 관공서에 앉아 일하고 주변에서 떠받들어주니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나무 하나를 베고 새 집을 지을 때도 충분히 검토하고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선진국의 시스템은 배울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미국 경제를 살린 스티브 잡스도 자신의 개인 집조차 맘대로 부수지 못해 허가가 날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마을 하나를 마음대로 부숴버리는 우리나라와 다르다.

예산을 한 해에 다 쓰지 않고 넘기면 다음해 예산이 깎인다며 안 써도 될 돈도 마구 쓰는 것이 어느덧 전통이 된 나라이다. 요즘 한국은, 찢어지게 가난하다가 갑자기 돈을 벌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 채 허황되게 사치를 좇는 가족과 같다. 따지고 보면 그리 많지도 않은 돈이다. 가난할 때 한풀이라도 하듯 기죽기 싫다며 경쟁적으로 허방하게 돈을 쓰고, 노동은 하지 않고 많은 것을 누리고자 한다면 끝은 뻔하다.

총선과 대선의 해를 맞아 정권을 다시 찾아 한풀이를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기왕에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놓치지 않고 전력투구를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계파를 만들고, 세를 불리고, 서로의 도덕성에 대해 붙들고 늘어지는 궁정 드라마만 넘쳐나니 일반인들은 정치 혐오증에 빠져서, 정치인들의 공약에 어떤 논리적 허점이 있는지, 꼼꼼하게 따지지 않는 것 같다. 감정적이고 미숙한 초등학생들의 말 같은 것만 인터넷에 떠돈다. 누가 정권을 잡든 어차피 마찬가지라는 생각 때문일까.

국가에는 뒷심 되어주는 ‘부자 아버지’ 없어 꼼꼼한 살림만이 파산 예방의 길 

부자 아버지나 남편을 두었기 때문에 일하지 않고 호화롭게 놀고먹어도 잘살 수 있는 복 많은 개인들과는 달리, 한국이라는 국가에는 뒷심이 되어주는 부자 아버지나 남편이 없다. 꼼꼼하게 살림하지 않으면 우리 세대뿐 아니라 죄 없는 우리 자손들이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야 한다. 아마 다시 4~5년 후면 지금과 똑같은 시나리오가 반복될 것 같다. 정권을 잡았던 쪽은 죄인이 되고, 야당은 마치 국가의 미래를 혼자만 걱정하는 애국자처럼 다시 등장하지 않을까.

누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건 간에 정권 잡기에만 목숨 걸지 말고, 자신의 끝을 항상 염두에 두어 적어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장되게 자신을 자랑하는 허황된 자기애적 성격장애나 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숨기고 있는 일반인은 의사들이 치료하면 그만이지만, 나라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정치인들이 그렇다면 나라 전체가 거덜난다. 한때 우리보다 잘살았던 아르헨티나, 미얀마, 필리핀, 시리아, 이라크, 쿠바, 이집트 같은 나라들의 정치인들 중에는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이들이 참 많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어디다 기원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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