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들을 사지로 몬 것은 ‘군함 초음파’였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02.28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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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전세계 해안에서 ‘좌초 현상’ 발생…최근 영국 연구팀이 과학적으로 원인 규명해 주목


지난 1월 말경, 뉴질랜드의 남섬 페어웰스핏 해변에서 ‘검은고래’ 99마리가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다가 떼죽음을 당했다. 또 지난해에는 남극해와 뉴질랜드 해안을 오가던 100여 마리가 넘는 고래들이 두 번씩이나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최근 몇 년간 뉴질랜드, 호주, 스페인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고래들이 해안에 떠밀려와 떼죽음을 당하는 좌초 현상(stranding)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적게는 수십 마리, 많게는 수백 마리씩 죽는다. 스트랜딩은 고래가 해안가로 밀려와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는 현상을 일컫는다. 고래는 물 밖에 나오면 호흡하기 곤란해지므로 질식하거나 몸무게에 내장 등이 눌려 죽게 된다. 장소는 조금씩 다르지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자연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고래 몸에 전자 태그 설치해 관찰

사실 거의 해마다 한 번씩 이런 고래의 떼죽음이 보고되고 있지만, 그때마다 전문가들도 속 시원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해 해석이 구구했다. 일부 병리학자들은 죽은 고래를 해부해보고 위장병이나 전염병을 의심하기도 하고, 지구온난화와 해양 오염 등도 원인으로 꼽는다.

일부 연구자는 고래가 뭍에 올라 떼죽음을 당하는 현상이 이동 경로 주변에서 지구 자기장 이상이 나타났기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고래의 뇌에는 자철석이 풍부한 세포가 있어 자기장의 세기가 같은 이른바 자장 등고선을 따라 이동하는데, 등고선을 따라가던 고래가 등고선이 이어지는 얕은 모래 해안 쪽으로 계속 가다가 좌초한다는 것이다. 특정 수온대를 좋아하는 고래들이 같은 수온대의 해류를 따라가다가 해류가 뒤엉키기 쉬운 곳에서 얕은 바다로 이어지는 같은 수온대의 해류를 탔다가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는 설이다.

그런데 최근 영국 세인트앤드류 대학 이안 보이드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런 모든 설을 뒤로 하고, 고래들의 떼죽음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어떤 외부의 힘이 몰고 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그 힘이 어군 탐지기나 해군 군함에서 쏘아대는 초음파의 영향 때문이라고 정확히 밝혔다. 해군의 초음파 탐지기가 고래에게 일종의 케송병(감압으로 인한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바하마 해협 주변 야생 부리고래(beaked whale) 떼의 몸에 반응을 살필 수 있는 장치(전자 태그)를 설치하고 고래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군사 훈련을 할 때 사용한 강력한 초음파로 인해 고래들이 이성을 잃고 수면으로 성급하게 뛰쳐나왔고, 천적인 육식 고래가 나타났을 때 내는 음파를 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세포 조직에 치명적인 질소 거품이 만들어진 것으로 교수팀은 추정하고 있다.

물론 2000년 바하마 해변에서 고래들이 귀에서 피를 흘리고 죽은 사건도 미국 해군 군함의 수중 초음파 탐지기 때문이라고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공식으로 인정한 바 있다. 당시 미 해군과 국립수산어업국의 공동 연구팀은 죽은 고래의 머리를 해부하고 인근 해역을 2년 가까이 조사해, 인근 해역에서 대잠수함 작전 중이던 미국 해군 함정의 초음파 탐지기에서 발생한 소음이 해저 지형이나 수심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과 결합되어 고래의 뇌와 귀 뼈 근처에서 출혈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방향 감각을 잃은 고래들이 해변으로 밀려와 죽음에 이르렀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동안 어군 탐지기나 해군 군함에서 쏘아대는 초음파가 해양 생물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되고 미국 당국도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이안 보이드 교수처럼 직접 고래의 몸에 반응 장치를 설치해 과학적으로 규명한 것은 처음이다. 고래가 음파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고래가 견딜 수 있는 음파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처음 밝힌 것이다. 뿐만 아니다. 연구팀은 또 가스 폭발이나 해안가의 풍력발전용 터빈 작동 소리 등에도 부리고래 떼들이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군함의 초음파 세기, 고막 찢을 정도로 강력해

해군이 사용하는 초음파 탐지기는 음파의 물리적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공기 중에서는 음파보다 전자기파가 빠르고 멀리 전달되기 때문에 공중이나 지상, 해상의 목표물을 탐지하는 데 전자기파를 이용한 레이더가 동원된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전자기파가 모두 흡수되어버리는 반면 음파는 상대적으로 잘 전달되기 때문에 음파를 사용해 적의 잠수함을 찾거나 해저 지형을 파악한다.

문제는 군함의 초음파 세기가 고래들의 고막을 찢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이다. 고래는 초음파를 쏘아 보내고 이 초음파가 반사되어 돌아오는 것을 들음으로써 방향을 잡고 이동 경로를 따라간다. 이런 고래의 음파 반사 기능은 먹이를 찾고 새끼를 돌보는 등 고래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활동에서 사용된다. 따라서 초음파 자체로는 고래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군함의 초음파가 굉음을 쏟아낼 경우 음파 반사 기능에 이상이 생겨 고래의 생명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때때로 고래 스스로 음파 반사 기능에 착각을 일으켜 해안으로 몰려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리더 고래가 방향을 잘못 잡아 육지로 향하면 뒤따르던 고래들도 하나 둘 해안가로 올라온다. 또 모래 해안으로 음파를 쏘아 보내면 고래에게 되돌아가는 음파가 모래에 모두 흡수되고 없어져 고래는 깊은 곳으로 착각하고 해안으로 올라온다. 

그러나 군함의 초음파 세기는 1백90~2백50데시벨(㏈; 소리의 강도를 표시하는 단위)이다. 이에 비해 고래의 소리는 1백80여㏈. 고래는 1백10㏈이 넘어가면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1백80㏈이 넘을 경우 고막이 찢어진다.

그런데 군함에 사용되는 초음파 탐지기는 초음파를 좀 더 멀리 보내기 위해 진폭을 아주 크게 만든다. 지난 2000년 바하마 해역의 고래 떼죽음 당시 4대의 군함에서 각각 2백35㏈, 2백25㏈의 소음을 내는 초음파 탐지기가 작동했다. 고래가 군함 바로 옆에서 이 굉음을 듣는다면, 사람이 제트 엔진의 폭발음을 바로 옆에서 듣는 것이나 비슷한 영향을 받는다. 고래들은 자신만의 초음파를 이용해 먹이를 찾는데 외부 음파가 들리면 자신의 음파 발신을 중단하므로 당연히 고래의 초음파 소리가 묻힐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이제 원인도 규명되었으니 더는 음파 탐지기로부터 고래가 떼죽음당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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