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 빈자리에 이란이 ‘떠억’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2.28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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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최대 골칫거리로 떠올라…이스라엘도 핵 위협 느끼며 선제 공격도 고려

지난해 오사마 빈 라덴이 피살되면서 알카에다가 미국을 공격할 능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이라크 전쟁도 끝났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2014년까지 미군이 철수하면 미국은 지긋지긋한 전쟁의 짐에서 벗어날 판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오랜만에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이란이 미국의 안보에 최대 골칫거리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 관리들은 이란 지도자들이 미국의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안보 전선의 축을 이란으로 돌렸다.

이란과 서방, 특히 미국과의 긴장은 최근 몇 주간 극도로 높아졌다. 서방이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자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맞섰다. 프랑스와 영국에 대한 원유 수출도 중단했다.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에 대한 선제 타격 움직임을 보이자 단호한 보복을 다짐했다. 지난해에는 워싱턴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의 암살을 시도했다. 최근에는 인도와 그루지야 주재 이스라엘 외교관들을 공격했다. 이란이 이유 없이 그런 일을 한 것은 아니다. 이란은 이란에서 일어난 의문의 폭발 사건과 다섯 명의 이란 핵 과학자 피살 사건이 모두 미국의 소행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이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각종 테러 행위를 자행하는 한 이란도 그에 상응하는 응징을 하겠다는 태세이다.

이란의 테헤란 거리에 이란 혁명을 기념해 걸린 호메이니의 초상이 담긴 걸개 그림 앞으로 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 AP연합

이란, 서방의 제재에 ‘전쟁 불사’ 분위기

미국 국가정보국장 제임스 클래퍼가 2월21일 중대한 발언을 했다. 그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이란의 신정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이 위협을 받는다고 판단될 때 미국 영토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이란 지도층이 생각을 바꾼 것은 최근의 일이다. 즉, 서방의 제재로 정권이 무너지는 상황이 올 경우 미국을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서방의 제재가 효과를 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란 지도자들을 코너로 몰아 미국의 안보에 대한 새로운 위협을 조성했다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 측면도 있다. 미국의 정보 관리들은 바로 이 대목을 주목한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죽을 바에는 미국과의 일전도 불사한다는 분위기가 테헤란에 팽배하다고 보고 있다.

클래퍼 국장의 판단에 데이비드 패트레어스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로버트 밀러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동조하고 있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이들 세 명의 고위 정보 관리는 미국에 대한 포괄적 안보 위협 가운데 이란이 최우선 순위로 올라왔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들은 이란의 위협을 뒷받침하는 추가적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으나 이란이 기어코 핵을 개발한다는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이 계획이 완성될 경우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결단’을 내렸다고 시사했다. 이란은  최근 농축 우라늄 개발 기술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 밝혔다. 이 발표가 이란의 의중을 나타낸다고 클래퍼는 지적했다. 패트레어스 CIA 국장도 같은 청문회 증언에서 이란이 갈수록 제재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이란 석유회사가 판매하는 석유 대금의 70%는 이 은행으로 들어간다. 서방의 제재는 바로 이 은행의 자금 루트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이 자금줄이 봉쇄되면 이란 경제는 붕괴된다. 바로 그때 이란이 미국을 공격할 위험이 있다. 

상원정보위원장 디엔 페인스테인 의원(민주·캘리포니아 주)도 이 청문회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2012년이 이란 핵을 저지하느냐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결정적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 대한 테러 위협은 알카에다의 위축으로 인해 대체로 감소했으나 이란과 북한에 의한 핵 확산 위협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FBI는 지난해 10월 워싱턴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적발하고 그 배후에 이란 혁명수비대와 멕시코의 마약 조직이 개입했다고 밝혔다.

클래퍼 국장은 세계의 위험 지역에 관한 30쪽 분량의 보고서를 정보위에 제출했다. 미국의 관심 사항에는 핵 무장을 한 파키스탄과 미국의 불안한 제휴, 북한의 핵 개발과 김정은 체제의 등장, 북아프리카의 반정 시위 등이 포함되었다. 정보 관리들은 미국 정부와 기업에 대한 사이버 테러 위험도 경고했다.

클래퍼 국장은 파키스탄과 기타 지역의 알카에다 세력은 미국의 무인기 공격으로 지휘부가 궤멸되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들이 미국에 실재적 안보 위협을 줄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다. 지난해 5월 미국 해군 특공대 네이비실에 의해 사살된 오사마 빈 라덴을 대체할 지도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알카에다는 사실상 지리멸렬 상태에 있다고 그는 밝혔다. 다만 예멘에 본거지를 둔 알카에다 조직이 미국 영토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이와 관련해, 예멘에 대한 원조를 증액할 계획이다.

이란 핵 개발 성공 시 중동에 핵 경쟁 초래

이란의 혁명수비대 소속 군인들. ⓒ AP연합
미국이 이란을 주목하는 또 다른 요인은 이스라엘의 움직임이다. 이 나라는 현재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공식적으로는 배제하고 있으나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거사를 할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 이란은 그들의 호언대로 보복에 나설 것이며 그 보복 대상에는 미국도 포함된다. ‘아랍의 봄’은 이스라엘의 안보 환경에 치명상을 주었다. 지난 30년간 이스라엘의 안보를 지탱해온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은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되면서 와해될 위험에 직면했다. 이 상황에서 이란의 핵 무장은 이스라엘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이란의 핵 개발에 대한 이스라엘과 미국의 인식 차이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한 원인이다. 이스라엘은 제재를 통해서는 이란을 압박할 수 없다고 보는 반면, 미국은 비군사적 수단으로도 이란을 설득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스라엘은 이것이 불만이다. 서방은 지난 10년간 이란을 제재해왔으나 그 효과는 미미하다. 이란이 핵 보유 직전까지 갔기 때문이다.

이란이 핵 개발에 성공하면 터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까지 핵 경쟁에 나설 위험이 있다. 그런 시나리오가 전개되면 중동에서 핵 참화가 일어날 위험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보는 이란의 핵 위험이다. 그러나 미국의 생각은 다르다. 이란이 그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말로는,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실패할 때는 군사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리겠다고 장담하고 있으나 이란이 이런 경고를 비웃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미국의 우유부단에 이스라엘은 짜증을 내다 못해 거의 미국을 불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이란에 대한 공격 시점을 좀 더 연기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 감행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일단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응을 지켜보겠지만 이란을 굴복시키는 결정적 압박 조치가 나오지 않을 경우 단독 행동에 들어간다는 태도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워싱턴에서 신통한 대책이 나올 희망은 없다.

다만 바로 이 순간에 미국 정보 당국이 이란을 최대의 안보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판단을 내린 데 대해 일말의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특히 이란 지도자들의 심경 변화에 관심을 보이는 미국 정보 당국의 태도를 주목하고 있다. 이란을 미국 안보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미국 관리들의 발언이 나온 바로 같은 날 이란군 최고사령부는 “이란에 대해 도발을 하는 모든 ‘적들’에 대해 집중적인 보복 타격을 가하겠다”라고 경고했다. 전후 상황을 보면 이란을 둘러싼 안보 논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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