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도 물갈이? ‘뉴 달러’ 꿈틀꿈틀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2.03.0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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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의 위상 추락하고 있다는 분석 나와 금본위환제로 전환되리라는 예측도

미국 달러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올 들어 월스트리트에 정통한 금융과 투자자문 전문기관들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추락할 것이라는 혹은 이미 추락하고 있다는 분석들을 내놓고 있다. 

먼저, 올 1월 투자자문과 신용평가기관인 와이스 레이팅(Weiss Rating)은 미국 달러의 급격한 가치 하락으로 2008년 금융 위기보다 훨씬 더 큰 경제 소용돌이가 될  ‘미국 금융의 심판날(America’s Financial Doomsday)’이 머지않은 장래에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와이스 레이팅은 2008년 금융 위기 발생 이전에 베어스턴스, 리먼브러더스, 시티그룹이 경영 부실로 파산을 맞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와이스 레이팅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전날까지도 최상 신용등급을 주었던 3대 신용평가 기관(무디스, 피치, S&P)과 차별화된 평가를 받는 자문회사이다.

그리고 지난 2월15일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문회사 스탠스베리 사의 창업자 포터 스탠스베리는 ‘다가오는 위기’라는 표현을 썼다. 감당할 수 없는 미국 국채로 인해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붕괴가 현실화되는 조짐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향후 12개월 안에 미국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경제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스탠스베리 사는 2008년 금융 위기 2년 전인 2006년에 이미 패니매와 프레디 맥의 파산을 예측한 바 있다.

ⓒ AP 연합

달러 체제 붕괴를 보여주는 대표적 징후들

한편 필자는 2010년 12월에 출간된 <우리만 모르는 5년 후 한국 경제>에서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의 종말을 다음과 같이 전망한 바 있다.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생명을 다할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 그때가 오면 세계 경제는 커다란 혼동에 휩싸이게 된다. 그 시발점은 중국이 미국 달러를 더 이상 기축통화로 인정하지 않고 상해협력기구(SCO) 내에서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 시점은 2015년 전후로 예상된다.”

그런데 중국과의 무역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인도, 이란이 이미 위안화로 결제하기 시작했다. 즉, 필자의 전망보다도 빨리 위안화가 국제 무역에서 결제 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기축통화로서 달러가 추락하는 신호 가운데 하나이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붕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후는 14조5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재정 적자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국가 채무 총액은 1백20조 달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중국을 포함한 외국 정부로부터 빌린 금액이 4조7천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외환보유액 3조2천억 달러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부채의 연간 증가 액수는 2009년 1조4천억 달러, 2011년 1조5천억 달러, 그리고 올해 2조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어 미국 경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2011년 미국 의회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 채무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부채 한도를 정하는 법안을 통과하려 했으나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냉전 시절부터 미국 정부가 갖고 있는 최강의 무기는 다름 아닌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사실이다. 미국 이외의 국가들은 물건을 사려면 국제 결제 수단인 달러를 먼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원유를 수입할 때에는 지불 대금인 달러를 갖고 있어야 한다. 반면, 미국은 외국으로부터 수입품을 들여올 때 지불 수단으로 달러를 발행하면 된다. 왜냐하면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1999년 미국 연방준비이사회는 7백30억 달러를, 2001년 9·11 직후에는 4천억 달러를 발행한 바 있다. 그런데 2008년 금융 위기 직후에는 1조6천억 달러를 찍어냈다. 9·11 당시보다 4배나 더 많은 달러를 발행한 것이다. 달러 통화량의 과도한 증가는 달러 가치 하락을 가속화한다. 미국 정부는 언젠가 멈춰야 할 위험천만한 게임을 하고 있다.

더욱이 국가 파산을 경험한 브라질과 러시아보다 앞으로 직면할 미국의 경제 위기가 더 위험한 이유는, 달러의 발행보다도 대형 은행들이 정부의 규제 없이 파생상품(derivatives)을 설계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워렌 버핏은 부채 담보부 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CDO)과 신용 디폴프 스와프(Credit Default Swap: CDS) 같은 파생상품을 대량 금융 살상무기(Financial Weapons of Mass Destruction)라고 부른 바 있다.

미국이 보유한 파생상품 액수는 2008년 1백76조 달러였는데, 2012년 현재 2백44조 달러로 늘었다. 파생상품 액수는 달러의 위력을 압도하고 있다. 실제로 연방준비이사회에서 발행하는 달러보다 금융기관들이 발행한 ‘보이지 않은 자산(imaginary asset)’인 파생상품이 미국 경제에 훨씬 더 위험하다.

문제는 달러 붕괴가 가져올 여파들이다. 다가올 위기는 2008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백악관 경제자문을 역임한 10명이 동의하고 있다. 마크 워너 상원의원은 앞으로 미국이 직면할 위기가 ‘아마겟돈’이 될 것이라고 했고, 전 합참의장인 마이크 뮬렌은 ‘미국 안보의 최대 위기’가 될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다.

이런 경고에도 과연 달러의 가치 급락에 따른 기축통화로서의 위상 상실이 미국 국민들의 개인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정치인들과 주요 언론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가오는 허리케인의 세기와 방향을 안다면,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대피를 하거나 대책을 세울 것이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는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뾰족한 대안이 없으므로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 상실은 미국 화폐의 종말을 예고하는가’라고 질문한다면,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혼란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미 시장 세력들이 비장의 카드로 새로운 달러의 창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 달러가 금본위환제로의 회귀, 즉 뉴 달러(New Dollar)의 탄생이 예측되고 있다. 금본위환제로의 전환을 감지하게 되는 배경 중에 하나는 2008년 이래로 두 배가 오른 금값과 네 배가 오른 은값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외환 대체 방법으로 금이 각광받아

자금 동원력이 있는 투자자들은 안전 자산을 매입한다는 의미에서 원자재 투자에 나서고 있다. 투자 대상이 되는 대표적 원자재는 금, 농산물, 원유이다. 특히 금은 금융 위기 이후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몇몇 중앙은행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주요 화폐 환율에 대한 불안과 함께 인플레이션 시대에 투자하기 안전한 원자재가 금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 침체에서 금을 사들이는 주된 요인은 대부분의 국가가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 자국 화폐의 절하를 원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금 보유량이 여덟 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금융 자산뿐만 아니라 금 보유량에서도 미국은 아직 중국보다 절대 우위에 있다. 브레튼우즈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고 지금도 적용되었다면, 금값이 온스당 6천3백 달러에 거래되고 있을 것이라는 소시에테 제네랄의 분석은 최대 금 보유 국가인 미국의 자산 활용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필자가 2009년 7월 산업은행 강연에서 금값의 상승을 예측할 당시 온스당 7백 달러였다. 더불어 2010년 12월 출간된 필자의 책에서 2천 달러 돌파 가능성을 언급했다. 금값은 이미 지난해 말 온스당 1천8백 달러를 기록한 바 있다. 필자의 2010년 책에서 금값이 4천 달러도 가능하다고 전망하고 있는데, 이 예측 또한 맞는다면 달러의 금본위환제로의 회귀 단계는 더욱 명확해진다.

환율 전쟁뿐만 아니라 금값 상승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미국과 EU 국가들이다. 소로스의 예를 들어보자. 2백50억 달러 자산을 운영하고 있는 소로스 펀드(Soros Fund Management LLC)는 SPDR Gold Trust의 네 번째 큰 투자가로서 2009년 4/4분기에 금에 대한 투자를 1백52% 늘리며 금값 상승을 부추겼다. SPDR 펀드의 금 보유량은 1천1백7t으로 중국의 보유량보다도 많다. 소로스의 금 매입 시점을 추적해 보면 중국보다 한발 앞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시세 차익을 많이 챙길 수 있는 것은 소로스를 비롯한 현물 가격에 직접적 영향 행사가 가능한 시장 세력이다.

각 중앙은행이든 시장 세력이든 금 보유자들이 갖고 있는 당연한 기대는 금값의 상승이다. 금융 위기가 휩쓸고 간 2008년 10월부터 2010년 4월까지 18개월 동안 구제 금융 대상이었던 뱅크오프 어메리카와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은행들은 4조6천8백억 달러를 실물 사재기에 쏟아부었다. 그들이 사들인 현물 가운데 상당 액수가 금 매입에도 투자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달러의 금본위환제로의 회기를 전제로 했을 때, 금값 상승은 정해진 수순이다. 혼란기를 거친 후 등장하는 일명 ‘뉴 달러(New Dollar)’의 창출은 미국에게는 위기를 벗어나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유로 도입 과정에서 유로와 독일의 마르크를 2 대 1로 교환해준 것 같은 일이 기존 달러와 뉴 달러의 대체 과정에서 벌어질지 현 단계에서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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