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만 팔리더냐, 책도 전화도 ‘불티’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3.05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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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시장, 연간 10조원대 규모로 급성장…회원 9백만명에 육박한 인터넷 중고품 거래 카페도

ⓒ 시사저널 김미류

중고 시장은 벼룩시장 수준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중고 시장(온라인 제외)의 규모는 4조1천2백72억원(업체 수 2만2천7백40개)으로 한 해 전보다 10.6% 커졌다. 이런 성장 추이를 고려하면 지난해 중고 시장은 5조원 규모에 이르고, 온라인 거래까지 포함하면 연간 10조원 시장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직장인 박혜리씨(43)는 “몇 개월, 몇 년 정도 짧게 사용할 경우라면 굳이 신제품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값싼 중고품을 사용하면 처분할 때에도 미련이 없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다. 신제품은 그 품질을 확인할 수 없지만, 중고품은 이미 여러 사용자를 통해 품질이 검증되어 있다”라며 중고품을 선호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2003년 개설된 인터넷 중고품 거래 카페인 ‘중고나라’에 가입하는 회원은 매년 100만명씩 늘어나면서 현재 9백만명에 육박한다.

SK텔레콤에 이어 KT도 중고 휴대전화 거래

이처럼 중고품을 찾는 소비자가 급증하자 대기업도 중고 거래에 나섰다. SK텔레콤은 지난해 8월 중고 휴대전화를 거래하는 온라인 직거래 장터를 만들었다. 거래량이 4개월 만에 2백80대에서 1만4천대로 급증했다. 이 회사는 올 4월 전국 대리점에서 중고 휴대전화를 사고팔기로 했다. 중고 휴대전화를 사서 수리한 후에 되파는 식이다.

KT도 3월 중에 대리점을 통해 중고 휴대전화를 거래한다. 또 5월부터는 중고 휴대전화 개통자에게 요금도 할인해줄 계획이다. 소비자는 70만~90만원대 스마트폰을 20만원 안팎에 구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품질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통신사로서는 중고 휴대전화 거래 자체는 큰돈이 되지 않지만, 전체 휴대전화 보급 대수가 늘어나면서 통신망 이용률을 올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박승근 KT 홍보차장은 “재활용 측면에서 중고 휴대전화 유통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개인끼리 중고 휴대전화를 거래했지만 앞으로는 기업을 통해 중고 휴대전화를 사고팔 수 있어서 품질도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정확한 할인율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요금 할인제(그린 스폰서 제도) 등으로 중고 휴대전화 거래를 늘릴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중고 휴대전화 거래가 증가하는 이유는 제품 교체 주기가 약 27개월 정도로 짧기 때문이다. 일본은 약 46개월이다. 스마트폰의 등장도 시장을 키웠다. 새로운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이 봇물 터지듯 출시되면서 최신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위해 중고 시장에 기존 스마트폰을 내놓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스마트폰은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1개월 이내에 90% 이상 재판매되고 있다. LTE폰 보급 등으로 이런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중고 자동차 시장도 호황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차 등록 대수가 신차 등록의 두 배인 3백만대를 넘기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규 등록(신차)은 지난해에 비해 4.7%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이전 등록(중고차)은 18.4%나 급등했다. 중고차는 본격적인 경기 불황이 불어닥친 2009년부터 해마다 20% 전후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며 한 자릿수에 멈춘 신차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수입 중고차 거래량도 2007년 5만대에서 지난해 10만대로 늘어났다. 극심한 경기 불황으로 폐차 소유주들이 대거 중고차 시장으로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자동차 교체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소비 패턴도 한몫하고 있다.

최근 ℓ당 2천원을 넘어선 휘발유 가격의 고공비행이 이어지면서 LPG 중고차를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중고차 전문 기업 SK엔카에 따르면 지난 1월 가장 많이 조회된 중고차는 그랜저TG LPG 모델이었다. 1월 한 달 동안 LPG 그랜저TG는 약 33만건이 조회되었다. 박홍규 SK엔카 인터넷사업본부 이사는 “K5·아반떼HD 등 주요 인기 차종을 누르고 LPG 모델이 조회 수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LPG 차량은 상대적으로 적은 구입 비용 및 유지 비용으로도 준대형차를 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당분간 강세가 지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고차 시장이 커지면서 새로운 마케팅 수단이 생겨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지난해 11월부터 전국 2백여 개 영업지점에서 소비자가 신차를 살 때 발생하는 중고차 처리를 위한 온라인 중고차 비교 견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 곳에서 매매, 수출, 경매까지 가능한 중고차 클러스터도 조성되고 있다. 동화홀딩스의 자동차 사업·개발 자회사인 동화오토앤비즈는 지난해 7월 중고차 매매 단지(엠파크)를 개장한 데 이어 올 4월 인천에 중고차 수출업체 1백30여 곳이 참여하는 수출 단지를 만든다. 오는 9월에는 수출 단지 인근에 중고차 경매장도 개장할 계획이다. 정대원 동화오토앤비즈 대표는 “매매 단지와 수출 단지에 이어 경매장까지 갖추면 중고차 원스톱 클러스터가 구축된다”라고 밝혔다.

온라인 서점, 오프라인 중고 매장까지 열어

SK텔레콤은 중고 휴대전화 재활용 제도(에코폰)를 시행하고 있다. ⓒ SKT
운영비 절감 등으로 매장을 내지 않던 온라인 서점은 최근 중고 책 매장을 냈다. 2008년 가장 먼저 온라인 중고 책 장터를 만든 온라인 서점 알라딘은 지난해 9월 폐업한 서울 종로의 나이트클럽 자리에 6만권의 중고 서적을 갖춘 중고 서적 전문 매장을 냈다. 하루에 2천여 권이 들어오고 나간다. 조선아 알라딘 마케팅팀 대리는 “예스24·인터파크 도서 같은 온라인 서점처럼 알라딘도 지난 몇 년 동안 중고 책 온라인 직거래 장터를 운영해왔다. 그 규모가 커지고, 책 상태를 직접 확인한 후 구입하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 최근 서울에 두 곳과 부산에 오프라인 매장을 냈다. 중고 책을 판매한다고 해서 새 책 판매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고품 거래가 활발해지자 중고 매장 창업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중고 전문점 ‘팝니다닷컴’은 중고 노트북, PC, 태블릿PC, 넷북, 아이패드, 갤럭시탭, 아이팟, PMP, 디지털카메라 등 각종 디지털 기기를 취급한다. 이 업체는 전국 프랜차이즈 100개 점을 목표로 삼고 있다. 중고 명품 시장이 1조원대로 커지자 중고 명품숍도 프랜차이즈 가맹 사업을 늘려갈 전망이다. 중고 명품 체인점인 W명품관의 신윤천 대표는 “극심한 불경기에도 한국 사람들의 명품 사랑은 해가 갈수록 뜨거워지는 추세이다. 누구나 의지와 조금의 노력만 있으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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