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권 다툼’에 등 터지는 ‘야구 게임’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3.05 23: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로야구선수협, NHN과의 계약 파기 검토 중…전임 집행부의 계약 체결 과정상 문제 꼬집어

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와 NHN 사이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지난 2010년 말 체결한 초상권 계약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는 탓이다. NHN은 당시 로열티의 대가로 해마다 ‘30억원+알파’를 선수협에 지불하기로 약속했다. 대신 선수협이 보유한 초상권을 나머지 게임업체에 재판매할 수 있는 독점권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말 새로운 집행부가 탄생하면서 양측의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박재홍 신임 선수협회장은 “법정 기소된 전임 집행부와 체결한 계약은 부당하다”라면서 NHN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선수협측은 “계약 내용도 여러 가지 문제가 노출된 만큼 파기를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지난 1월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열린 프로야구선수협의회 임시총회에서 신임 박재홍 회장(오른쪽)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알력 다툼’ 때문인가, ‘투명성 문제’인가

NHN은 현재 온라인 야구 게임 ‘슬러거’의 개발사인 와이즈캣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이 회사 역시 비리 혐의로 기소된 선수협 사무총장에게 로비를 해서 초상권을 따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의 기소 내용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CJ인터넷(현 CJ E&M)은 지난 2009년 5월 KBO와 라이선스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CJ인터넷은 당시 온라인 야구 게임 ‘마구마구’를 서비스하고 있었다. 특정 업체에 구단의 로고나 선수 얼굴 등을 독점으로 제공하면서 업계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선수협도 KBO에 위탁 관리하던 선수들의 초상권을 회수했다. 그러자 게임업계에서는 선수협이 보유한 초상권을 획득하기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펼쳤다. 와이즈캣은 브로커인 이 아무개씨를 통해 선수협 집행부와 접촉했다. 이후 수십억 원 규모의 로비를 통해 초상권을 획득한 혐의를 받고 있다. NHN의 입장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회사를 인수한 원죄마저 있어 곤혹스러움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NHN과의 계약이 파기될 경우 적지 않은 ‘후폭풍’이 일 것으로 예상한다. ‘1천3백억원 규모의 야구 게임 시장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마저 나오고 있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실감이 요구되는 야구 게임의 특성상 실제 선수들의 얼굴이나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 NHN과의 계약을 통해 선수들의 얼굴과 이름을 빌려 쓰는 상황에서 계약이 해지될 경우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야구 게임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점도 걱정이다. 지난 2009년을 전후해 야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면서 야구 게임 역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올해의 경우 ‘메이저리거 1호’인 박찬호 선수와 ‘핵잠수함’ 김병현 선수가 한국 무대로 복귀했다. 게임업계 역시 ‘박찬호 특수’나 ‘김병현 특수’를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이런 상황에서 초상권 문제가 불거져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가상의 선수만으로 게임을 진행할 경우 유저들의 이탈이 심각해질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선수협과 독점 계약을 체결한 NHN 역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NHN의 한 관계자는 최근 선수협 집행부를 만났지만 구체적인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언론을 통해 이같은 내용이 먼저 거론되어 당황스럽다”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조만간 선수협과 다시 만나 협상을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짧게 언급했다.

하지만 선수협의 태도는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선수협은 지난 1월9일 손민한 전 회장과 권시형 전 사무총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지난해 4월 손 전 사무총장이 검찰에 기소된 이후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것과는 1백80˚ 달라진 모습이었다. 선수협의 마케팅을 대행하던 아이앤피(INP)의 간부들 역시 최근 검찰에 고소했다. 아울러 INP와 맺은 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선수협 일각에서는 일련의 조치를 내부의 헤게모니 다툼으로 보기도 했다. 새로운 집행부와 과거 집행부 간의 주도권 다툼이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박재홍 회장과 박충식 사무총장이 선출되면서 내부적으로 갈등을 겪은 터여서 언론에서도 ‘내부 갈등’으로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선수협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전임 집행부에 대한 고소는 사실상 NHN에 대한 선전 포고를 염두에 둔 조치이다”라고 귀띔한다. 선수협의 법률 대리인 김선웅 변호사도 “게임업계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투명성 문제가 핵심이다. 감사 기능이 없다 보니 그동안 집행부를 견제할 수단이 없었다. 그 부산물이 부당한 계약으로 이어지면서 피해를 입은 만큼 계약을 다시 체결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설명했다.

게임업계, 로열티 두 배로 뛸까 걱정

이미 선수협측은 계약 해지 이후의 구상을 구체적으로 정한 상태이다. NHN은 현재 모바일의 경우 5%, 온라인 및 PC 게임은 4~4.5%의 로열티를 받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을 선수협과 절반씩 나누어왔다. 선수협은 기존에 받던 로열티를 8~9%까지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NHN과 계약을 파기하고 개별 업체와 다시 계약하는 시나리오까지 마련해놓은 상태였다. 김변호사는 “NHN측에도 이미 이같은 내용을 통보한 상태이다. 조만간 입장을 정리해 언론에 공개하겠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초상권을 둘러싼 선수협과 게임업계의 갈등은 당분간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업계 입장에서는 로열티를 기존의 두 배 이상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서 반발이 예상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로열티가 아무리 많아도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업계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선수협이 초상권을 무기로 게임업계를 찍어누르는 모습으로도 비칠 수 있어 향후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법정 기소된 권시형 전 사무총장의 재판 결과 역시 관심의 초점이다. 권 전 사무총장은 그동안 공판에서 무죄를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가성은 없었다는 것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온라인게임 업체에 부당한 돈을 요구하거나, 청탁을 한 적이 없다. 손민한 회장과 함께 슬러거 게임 개발업체 대표 세 명을 만나 계약을 체결했다. 나중에 돈을 받았지만 호의적인 차원이었다”라고 해명했다. 최종 판결에서 권 전 사무총장과 게임업체의 부당한 거래가 확정될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약 파기 문제를 거론할 경우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된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선수협측은 “10개월간의 공판을 거치면서 전임 집행부와 게임업계의 비리가 모두 드러났다. 이미 드러난 이슈만으로도 계약 파기 사안이 될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