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 애증 따라 ‘내 편, 네 편’?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3.05 23: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남6녀 중 일부는 이건희 회장 지지 의사 표명…상속 때 홀대받은 쪽에서 어떤 입장 취할지 관심

1987년 11월23일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장례식에 참석한 유족들. ⓒ 시사저널 사진자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이건희 회장의 친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81)이 7천100억원대의 상속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이숙희씨(77)도 1천9백억원대의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공식적인 자녀 4남6녀 중 두 명이 유산 상속과 관련해‘전쟁 개시’를 선언한 것이다. 그러자 이병철 회장의 장녀 이인희씨(84)와 3녀 이순희씨(72)가 ‘유산 상속은 이미 끝난 일’이라고 이건희 회장 쪽임을 선언했다. 현재까지 의사를 밝히지 않은 2세는 둘째아들인 고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의 유족과 4녀 이덕희씨(72), 5녀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69)이다. 이병철 회장이 일본인 여성과의 사이에서 둔 막내아들 이태휘씨와 막내딸 이혜자씨는 이병철 회장 사후 주로 일본에서 머무르기 때문에 당장 이번 재판에는 뛰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삼성가 2세 그룹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지난 1987년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뜰 당시 집행되었던 유산 상속의 행방과 관계가 있다. 그때 모든 형제자매가 큰 살림을 물려받은 것은 아니다.

4남6녀 중 굵직굵직하게 유산을 물려받은 2세는 장남 이맹희가(CJ그룹), 차남 이창희가(새한그룹), 장녀 이인희가(한솔그룹), 5녀 이명희가(신세계) 정도였다. 삼성그룹의 본체는 삼남인 이건희 회장이 물려받았다. 2녀인 이숙희씨(77)는 LG가의 며느리라는 이유로 제외되었고, 3녀와 4녀인 이순희씨(72), 이덕희씨(72)도 삼성그룹의 계열사 상속에서는 배제되었다. 이런 재산 상속 구도는 베일에 가려졌던 이병철 회장 2세 그룹의‘성골’ ‘진골’이 가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삼성의 대권이 장남인 이맹희씨가 아닌 삼남 이건희 회장에게 넘어간 것은 이병철-이맹희 부자간의 불화 때문이었다. 한국비료 밀수 사건에 뿌리를 둔 부자간의 불화는 삼남 이건희의 대권 승계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차남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은 이병철 회장에게 반기를 들었었지만 이병철 회장 생전에 용서를 받고 제일합섬 등 새한그룹의 모태가 되는 회사를 물려받았다. 그런데 장손인 이맹희씨는 화해하지 못했다. 대신 이맹희씨의 아들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이맹희씨에게 가야 할 유산을 바로 물려받는 형식을 취했다.

이맹희씨 자서전에 담긴 상속 관련 비화

1998년 1월23일 열린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10주기 추도식. ⓒ 시사저널 사진자료
이 부분에 대해서 이맹희씨는 지난 1993년 펴낸 자서전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버지(이병철)가 바깥에서 이야기하는 식의 유서를 만든 적은 없다. 아버지의 유언은 모두 구두였고, 우리 식구 이외에 그걸 증명할 사람은 신현확씨 그분이 유일한 분이다. … 삼성의 차기 경영자로 건희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처음 발표한 것은 1976년 9월 중순경이었다.

이때 아버지는 암 수술을 위해서 일본으로 출국하기 직전이었다. 출국 전날 밤 가족이 한자리에 다 모였다. 건희는 해외 출장 중이었다. 장소는 용인에 있던 아버지의 거처에서였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는 후계 구도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했다. “앞으로 삼성은 건희가 이끌어가도록 하겠다.” 어머니와 누이들 그리고 아내까지 있던 자리였다. … 운명 전에 아버지는 인희 누나, 누이동생 명희, 동생 건희 그리고 내 아들 재현이 등 다섯 명을 모아두고 그 자리에서 구두로 유언을 하고 건희에게 정식으로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이 자리에서는 건희에게 삼성을 물려준다는 내용 이외에 삼성의 주식을 형제들이 나누는 방식에 대한 아버지의 지시도 있었다. 가족들끼리의 이야기니 만큼 더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덮어두는 것이 좋겠다.’

이건희 회장이 유산 상속으로 대권을 물려받는 것에 대해 이맹희씨도 이의가 없다는 점과 주식을 나누는 기준이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서 보듯 주요 가족회의에 참여하는 면면은 이인희-이맹희(이재현)-이건희-이명희 정도이다. 이들이 삼성의 주요 계열사를 나눠서 상속받기도 했다.

때문에 이때 유산 상속에서 상대적으로 홀대받았던 이창희 회장 유족과 이숙희씨, 이순희씨, 이덕희씨 등이 이번 소송에서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 주목받고 있다. 이 가운데 이순희씨는 이건희 회장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이순희씨의 남편인 김규 전 서강대 영상대학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그런 집안일에 왜 관여하느냐”라고 말했다. 이순희씨의 아들인 김상용 애니모드 대표이사도 언론을 통해 “어머니가 선대 회장의 뜻과 이회장을 지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라고 전했다.

김상용 대표이사는 영보엔지니어링, 애니모드, 삼진물산 등의 회사 대주주이고 이순희씨는 이 회사의 이사로 올라 있기도 하다. 영보엔지니어링은 1998년 설립된 회사로 휴대전화 배터리팩을 제조 판매하는 회사이며 2010년 매출액은 1천4백72억원, 순이익은 32억원이다. 애니모드나 영보엔지니어링의 주요 거래선은 삼성전자이다. 이런 사업상의 관계를 보더라도 이순희씨측에서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쥐고 있는 이건희 회장 쪽과 척을 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일찌감치 이건희 회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입장도 이순희씨측과 비슷하다. 하와이에 체류 중인 이고문은 한솔그룹 관계자를 통해 “상속 문제는 1987년 이병철 회장 타계 당시에 이미 정리된 일이다. 그런 일을 이제 와서 다시 문제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솔그룹은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기존 주력 업종이던 신문용지 사업을 바탕으로 한솔PCS라는 회사를 세워 통신 사업에 진출했지만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신문용지 사업과 통신 사업을 접는 등 사세가 위축되었다. 현재 주력 회사 중 하나인 한솔케미컬은 삼성전자 의존도가 31%에 달하는 등 삼성과 긴밀한 협조 관계가 필요한 형편이다.

이병철 회장의 구두 유언 현장을 지킨 ‘성골’ 4인방 중 유일하게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는 이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다. 신세계그룹은 CJ그룹만큼이나 삼성그룹 의존도가 낮다. 신세계가 주력으로 삼는 분야는 유통과 호텔이다. 삼성이 외환 위기 직전에 삼성태스코(홈플러스)를 통해 유통 분야에 진출하고 화신백화점을 신축한 삼성증권 빌딩에 백화점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세워 신세계 쪽을 긴장시키기도 했지만, 삼성은 외환위기 이후 유통 분야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호텔 쪽에서는 조선호텔과 삼성의 신라호텔이 경쟁 구도이기는 하지만, 삼성이나 신세계나 호텔이 주력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여서 큰 마찰이 없었다.

이맹희씨의 자서전을 보면 이명희씨와 이맹희씨는 돈독한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와 불화를 겪으며 삼성에서 쫓겨난 이맹희씨가 대구와 부산을 떠돌 때 이명희 회장이 금전적으로 이맹희씨를 후원했고, 부친과 화해시키기 위해 ‘서울로 와서 아버지에게 무릎 꿇고 잘못을 빌라’고 종용한 것도 모친 박두을씨와 여동생 이명희 회장이었다. 이재현 CJ 회장이 대학 졸업 뒤 삼성에 입사하지 않고 씨티은행으로 갔을 때 “재현이를 삼성에 입사시켜라”라는 이병철 회장의 의중을 맹희씨 부부에게 전한 이도 이명희 회장이었다.

재계에서는 이명희 회장이 ‘구두 유언’ 현장에도 있었던 만큼 이번 소송전의 캐스팅 보트를 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명희 회장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여론전’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에 같은 건으로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낸 이숙희씨도 이맹희씨와는 인연이 깊다. 이숙희씨의 남편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은 이맹희씨와 친구 사이이다. LG그룹 창업주 2세인 구자학 회장과 이맹희씨는 동향에 집안끼리 알던 처지인지라 어렸을때부터 친한 사이이다. 그 인연으로 1956년 2월 구자학 회장이 이맹희씨의 여동생 이숙희씨와 결혼하면서 처남·매부가 되었다. 이맹희씨도 그해 12월 결혼을 하고 이듬해인 1957년 2월 두 사람은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났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숙희씨와 맹희씨의 부인 손복남씨가 미국으로 건너와 네 명이 함께 유학 생활을 했다.

이명희 회장이 캐스팅보트 쥐었나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장례식 당시의 영구 행렬. ⓒ 연합뉴스
이맹희씨가 귀국한 것은 1961년 봄 무렵으로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이무렵 맹희씨는 최근 친자로 판명된 이재휘씨의 모친인 박귀희씨를 만났다. 박씨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비료 사건 이전부터 이병철-이맹희 부자 사이에 불화가 싹텄었고, 여기에 박씨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이맹희씨가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고 한다. 그때 직접 나서서 사태를 수습한 사람이 구자학 회장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구회장과 이맹희씨는 막역한 사이였다.

구회장은 숙희씨와 결혼한 뒤 제일제당, 동양TV, 신라호텔 초대 사장, 중앙개발(에버랜드 전신) 대표이사 등을 지내며 중용되었다. 동양TV는 삼성과 LG의 합작 사업이기도 했다. 그만큼 양가의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삼성이 삼성전자를 시작하고 반도체회사를 인수하는 등 전자 산업을 본격화하자 금성사(LG전자)를 주력으로 하던 LG 구씨 가문과 삼성 간에는 갈등이 극에 달했다. 1976년 구자경 회장은 삼성그룹에서 경영인으로 활동하던 셋째동생 구자학 회장에게 철군 명령을 내렸고, 이후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로 빠르게 부상했다. 이숙희씨는 유산상속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구회장은 지난 2000년 아워홈이라는 단체 급식 회사를 맡아 LG그룹에서 독립했다. 이후 아워홈은 단체 급식 분야와 외식업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특히 단체 급식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며 1조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아워홈의 라이벌 가운데 하나는 이건희 회장의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주관하는 사업 중 하나인 호텔신라와 에버랜드의 급식 사업과 외식 사업이다. 재산 상속 과정에서도 소외되었고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삼성과의 관계가 득 될 것이 없기에 이숙희씨가 이번 소송전에 부담 없이 참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맹희씨의 회고록. ⓒ 시사저널 이종현
이숙희씨는 이번 소송과 관련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빠(이맹희)에게 삼성이 나쁘게 굴어, 힘이 되기 위해 동참하게 되었다. (오빠가) 무능하기 때문에 재산도 못 준다는 식으로 삼성이 몰고 갔다. 이병철 회장 사후 나도 유산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당시 남편이 회사(삼성)를 그만둔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남편이 (이병철 회장에게) 신임을 받으니 시기하고 중상모략하고 난리가 났었다. 그 과정에서 상속을 못 받게 되었다. 지금은 많은 얘기를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재판 과정에서 못다 한 얘기들이 밝혀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베일에 가려졌던 삼성가의 구두 유언이나 이맹희씨가 경영에서 쫓겨난 상황, LG 대신 삼성을 택했던 구자학 회장이 결국 삼성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겠다는 것이다.

이숙희씨의 경우처럼 이번 소송전에는 그동안 소외받던 삼성가 2세들의 입장도 드러날 전망이다.

4녀인 이덕희씨(72)의 의중도 주목된다.

덕희씨의 남편은 중앙일보 회장과 삼성화재 회장을 지낸 고 이종기씨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006년 10월 사망할 당시 보유 중이던 5천3백억원대 삼성생명 지분을 삼성생명 공익 재단에 기부했다. 삼성측에서는 이 전 회장이 “좋은 일에 써달라”라고 보유 지분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생전에 삼성가 2세들 사이에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승지원 관리가 그런 예이다. 승지원은 이병철 회장이 말년에 기거하던 한옥으로 그의 사후 승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이병철 회장의 후손과 이회장의 형인 이병각 회장 후손(제일병원오너)의 공동 명의로 관리되었다. 이 건물의 등기부를 보면 건물은 이종기씨 명의로, 토지는 삼성 가족 명의로 관리되었다. 이회장은 사망 직전인 2005년 2월 이 건물의 소유권을 모두 호암재단 앞으로 귀속시켰다. 그리고 자신 명의의 삼성생명 지분도 모두 삼성생명 공익 재단으로 돌려놓았다. 당시 한국 재벌가의 관행에 비추어 5천억원대에 달하는 주력사 지분이 사위 이름으로 되어 있었던 것을 두고 실제 소유가 아닌 명의만 빌린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다. 어쨌든 이전 회장은 지분 증여를 통해 이런저런 논란을 깨끗이 잠재우고 세상을 떴다.

이덕희씨 등 이 전 회장의 유족이 재산 상속 과정에서 얼마를 배려받았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다. 이 전 회장과 덕희씨 사이에는 2남1녀가 있지만 둘째아들은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를 당해 1992년 2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큰아들은 캐나다에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병철 회장의 세 아들 중 가장 먼저 사망한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1996년 사망) 유족들의 입장도 이번 소송전에서 주목되고 있다. 새한미디어와 제일합섬을 가지고 분가한 새한그룹은 이창희 회장이 지병으로 사망한 뒤 이재관, 이재찬, 이재원 등 세 아들이 경영을 나눠 맡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도레이첨단소재와 웅진케미컬 등으로 인수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난 2010년 8월 이창희 회장의 차남인 이재찬씨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면서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에서 보듯 이창희씨 집안 역시 현재의 삼성으로부터 별로 빚진 것이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서 이번 소송전에 참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맹희·이숙희 씨의 참여로 9천억원대까지 불어난 이번 소송전의 참여자가 더 늘어나면서 소송 가액이 1조원대를 넘어설지, 재판 과정에서 이병철 회장이 삼성그룹의 3대 회장 자리에 대한 구두 유언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두고 이번 소송전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