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핏줄의 전쟁’, 삼성 지배구조 흔드나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2.03.05 23: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왼쪽부터) ⓒ 시사저널 사진자료, ⓒ 시사저널 사진자료

선대 이병철 회장의 상속 재산을 둘러싼 삼성가 형제자매들의 다툼이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이회장의 친형인 이맹희씨가 7천100억원대의 상속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누나인 이숙희씨도 1천9백억원대의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진행 과정이나 결과에 따라 추가로 소송을 제기하는 상속인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삼성가 형제자매들이 이처럼 이전투구에 가까운 법정 대결을 벌이게 된 내막과 소송전의 향방을 추적했다.

지난 2월9일 오후 5시쯤 이관훈 CJ주식회사 대표이사(사장)의 전화기가 울렸다. 이사장은 임원 회의를 주관하고 있었으나 발신자 신원을 확인하고 서둘러 수화기를 들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전화한 것이다. 이회장은 이관훈 사장에게 ‘드롭(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사내 법무팀과 법무법인 화우가 지난해 6월부터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승소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소송을 포기하라는 지시였다.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차명으로 남긴 상속 재산 중 이병철 회장의 장남이자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씨의 몫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사장은 언뜻 납득이 되지 않았으나 그룹 총수의 지시이다 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 회의에 참석한 CJ㈜의 한 임원은 “(이관훈 대표이사는) 이재현 회장과 통화를 마치자마자 소송 중단을 지시했다”라고 말했다.

1987년 11월23일 열린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례식에서 이맹희·이건희·이창희형제(오른쪽부터)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지난해 6월 국세청이 이맹희씨를 포함해 상속인 전원에게 ‘이병철 회장의 차명 재산이 2008년 1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명의로 넘어갔는데, 상속인은 상속청구권을 포기하고 이회장에게 증여한 것이냐’는 요지의 공문을 보냈다. 이건희 회장 쪽은 곧바로‘상속 재산 분할 관련 소명’ 문서를 CJ주식회사 재무팀장에게 보내 ‘실명 전환한 차명 재산에 대해 상속 지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라는 요지의 문서에 서명 날인해 서울지방국세청에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다른 형제자매와 달리 이맹희씨의 주소지는 파악이 되지 않아 소명 문서를 CJ㈜ 재무팀에게 보냈다”라고 말했다.

해당 문서는 CJ㈜ 법무팀 소속 변호사에게 보내졌다. 사내 변호사는 ‘법률 검토를 거쳐 상속 재산을 받을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바로 윗선에 보고하고 법무법인 화우에게 법률 검토를 요청했다. 화우는 수개월 동안 해당 사건의 승소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 보았다. 화우는 지난 10월12일 첫 출근한 차동언 변호사에게 해당 사건을 맡겼다. 차변호사는 사법연수원 17기로 대구지검 차장검사, 서울고검 부장검사,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장을 지낸 검찰팀 소속 소송 전문가였다. 차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이 실명 전환한 선대 회장 상속 재산 중 7천억원가량을 상속권 청구 소송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화우의 법률 검토 결과는 이재현 회장에게 보고되었다. CJ㈜ 법무팀 관계자와 차변호사팀은 이재현 회장의 지시가 떨어질것으로 예상하고 상속권 청구 소송을 제기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실무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재현 회장이 소송 포기를 지시한 것이다.

CJ㈜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은 삼성이라는 집단을 무서워한다. 삼성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다고 (이재현 회장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재현 회장은 ‘상속권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고 나면 3천억원가량 받을 수 있다’라고 판단한다.

CJ㈜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은) 3천억원을 받겠다고 삼성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형제 사이에 재산 다툼을 벌인다는 시선도 신경 쓰이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차동언 변호사는 왜 이맹희씨를 찾아갔나 법무법인 화우는 생각이 달랐다. 차동언 변호사는 2월11일 중국 베이징에 체류하고 있는 이맹희씨에게 날아갔다. 차변호사는 “CJ㈜가 소송을 포기한다고 해서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고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가 이맹희씨에게 소송을 제기할 것을 권유했다”라고 말했다. 차변호사는 ‘CJ㈜ 관계자와 동행했다’는 일부 보도 내용은 부인했다. 차변호사는 “소송과 관련해 이맹희씨와 수차례 상의한 터라 주소와 연락처를 파악하고 있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이맹희씨와 만나는데 CJ㈜ 관계자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CJ㈜는 ‘이번 소송은 이맹희씨와 이건희 회장이 벌이는 것이므로 이재현 회장은 상관이 없다’라고 주장한다. 차변호사도 “소송 주체는 이맹희씨이므로 이재현 회장이나 CJ㈜는 소송에 직접적으로는 상관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삼성은 ‘이번 소송의 배후는 이재현 회장이다’라고 규정한다.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소송이 체계적으로 준비되는 것을 보면 CJ가 조직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재현 회장은 형제 사이 재산 다툼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밝히면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와 화우를 내세워 소송을 배후 조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삼성이 이재현 회장을 소송의 조종자로 규정하는 근거는 세 가지이다. 삼성은 ‘이맹희씨가 81세 고령이고 중국 베이징에 체류하고 있어 CJ의 지원이 없이는 차명 재산 관련 소송을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1976년 삼성그룹 전산실 개장식에서 설비를 둘러보는 고 이병철 회장. ⓒ 연합뉴스
CJ㈜가 지난해 6월부터 법무법인 화우와 함께 이맹희씨와 연락하며 소 제기와 승소 가능성을 타진했으므로 정황상 일리가 없지 않다. 차변호사는 “이재현 회장이 아버지가 벌이는 송사에 관심이 있을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CJ가 소송에 관여하거나 지원하는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CJ측이 인지대 22억5천만원을 이맹희씨 대신 낸 것으로 알고 있다. CJ가 소송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인지대를 냈겠는가”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누가 인지대를 냈는지 밝혀진 것이 없다. CJ㈜ 관계자나 화우는 ‘이맹희씨가 인지대를 납부했다’라고 주장한다. 차동언 변호사는 “법무법인 화우가 거액의 수임료를 노리고 인지대까지 대신 납부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자금 출처는 모르겠으나 인지대는 이맹희씨가 납부했다”라고 말했다.

‘미행’ 사건 터지면서 상황 급변

삼성은 ‘CJ가 지난 2월24일 이른바 이재현 회장 미행 사건을 공개해 여론전에서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라고 주장한다. 미행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과 CJ㈜ 홍보팀은 발표 수위를 조절하며 보도자료 내용까지 협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삼성 미래전략실은 ‘소송 제기가 해프닝으로 끝나지않겠느냐’고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미행 사건이 터지자 상황은 급변했다. 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실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 미행사건) 관할 수사팀은 삼성물산 관계자의 과잉 충성으로 일어난 해프닝으로 판단하고 있더라. 폐쇄회로 TV나 도청 장치가 동원되지 않았고 미행도 어설픈 것을 보면 삼성 미래전략실이 나선 것 같지 않다”라고 말했다. 거액의 인지대까지 납부했으니 형제 사이에 타협이 극적으로 성사되지 않는 한 재판이 불가피하다.

법무법인 화우는 승소를 확신한다. 상속 회복 청구권의 시효가 지나지 않아 상속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차변호사는 “재판 전략상 자세하게 밝힐 수 없으나 재판에서 사실 관계를 입증할 증빙을 제시하면 승소하리라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상속권 청구 시효와 관련해 법적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진다. 소송 쟁점은 시효이다. 삼성은 ‘25년 전 상속이 마무리되어 상속 청구 시효가 끝났다’라고 주장한다. 화우는 ‘2008년 12월 상속권 침해가 있었고 상속인이 지난해 6월 그 사실을 알았으니 상속 회복 청구권 행사가 유효하다’라고 밝힌다(54쪽 딸린 기사 참조).

지금까지는 시효가 소송의 쟁점이 되고 있으나 막상 재판에 들어가면 유증의 존재 유무와 실효성이 재판의 결과를 판가름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지금이야 소송 전략상 유증에 대해 언급할 수 없으나 재판이 진행되면 유증이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병철 회장이 암 치료차 일본에 체류할 때 자녀를 불러 재산 분배와 관련해 유언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차변호사는 “재판에서 유증이 나올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유증은 엄격한 법적 요건을 갖춰야 하므로 유증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실효성을 면밀히 따져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법적 효력이 있는 이병철 회장의 유증이 나오면 재판은 끝난다. 이병철 회장의 재산을 이건희 회장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장이 나오면 나머지 상속인은 상속 재산 절반에 대해서만 상속을 요구하는 유류분 청구 소송이 가능하나 유류분 청구권의 시효는 이미 지났다.

이병철 회장이 차명으로 남긴 상속 재산을 둘러싼 형제 사이의 다툼은 갈수록 커질듯하다. 이병철 회장의 차녀 이숙희씨는 지난 2월27일 동생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상속 재산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차동언 변호사는 “수차례 이숙희씨를 만나 소송 제기에 대해 협의했다. 이숙희씨는 이미 아는 변호사를 통해 상속권 청구 소송에 대해 충분히 연구했더라”라고 말했다. 나머지 상속인은 아직까지 움직임이 없다. 차변호사는 “밥상은 차려졌다. 숟가락만 더 놓으면 된다. 소송 진행 과정이나 결과에 따라 추가로 소송을 제기하는 상속인이 늘어날 수 있으리라 본다”라고 말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 시사저널 사진자료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마찬가지로 선대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차명 재산을 실명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1천7백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냈다. 이건희 회장은 4조5천억원 가량의 차명 재산을 실명 전환하면서 상속세 1천5백억원을 납부했다. 이에 따라 이재현 회장이 실명 전환한 차명 재산도 4조5천억원을 상회하리라 추정된다.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이 실명 전환한 차명 재산도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상속된 것이므로 상속권 청구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CJ㈜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이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차명 재산을 실명 전환하는 과정에서 상속세를 납부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상속세 납부 시효가 끝난 재산에 대해서는 납부하지 않은 이건희 회장과 달리 이재현 회장은 시효와 상관없이 상속 재산 전액에 부과되는 상속세를 신고해 금액이 커졌을 뿐 차명으로 상속받은 재산 규모는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재현 회장이 관리한 차명 상속 재산은 지난 2008년 ‘살인 청부’라는 범죄와 연루되면서 드러났다. 지난 2006년 7월부터 2007년 1월까지 당시 이아무개 CJ㈜ 재무팀장은 달마다 2~3%의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1백70억원을 사채업자 박 아무개씨에게 빌려주었다. 박씨가 빌린 돈 일부를 돌려주지 않자 이씨는 조직폭력배를 시켜 박씨를 살해하려 하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씨를 2008년 12월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이씨는 2009년 12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씨 포함)이 살인을 청부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살인 청부를 받았다는 이들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등 일관성이 없어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당시 이재현 회장은 이씨가 관리한 비자금의 출처와 관련해‘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받은 상속 재산이다’라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씨)이 관리한 자금 규모가 수천억 원에 이른다고 진술했고 피해자(이재현 회장)의 차명 재산(비자금) 관련 세금만도 1천7백억원이 넘는다’라고 밝혔다.

이맹희씨가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차명 재산 상속 청구 소송에서 이긴다면,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상속인이 이재현 회장의 차명 재산에 대해서 상속을 요구하는 사태로 비화할 수 있다. 차명으로 오랫동안 숨겨온 상속 재산인 데다 실명 전환 시기도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맹희씨가 시작한 상속 청구권 소송은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CJ그룹의 지배 구조까지 뒤흔들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