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유랑지’ 중국 땅에 탈북자 10만명 떠돈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3.05 23: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중국 당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이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그들의 행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한 중국 대사관 앞에서는 연일 수백 명씩 모여 중국측의 강제 북송에 항의하고 있다. 북한을 탈출하려는 주민들은 대부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월경도 월경이지만, 중국에 들어가더라도 한국이나 제3국으로 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중국 공안에 걸리면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다. 탈북자들은 과연 어떤 경로로 북한을 탈출하고, 탈출한 뒤에는 어떤 생활을 할까.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탈북자들의 실태를 추적했다.

2월14일 주한 중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집회. ⓒ 연합뉴스

최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 대사관 앞에서는 연일 수백 명씩이 시위를 하고 있다. 대사관 앞 작은 텐트에서는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이 단식을 하고 있다. 중국이 탈북자들을 강제로 북송시키는 데 항의하는 것이다.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은 국제 이슈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탈북자들의 현주소는 어떠할까.

북한 주민들의 탈북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사살당하거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간다. 지금도 중국과 북한의 국경 접경 지역에서는 탈북자의 ‘사살 목격담’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다행히 국경을 넘는 데 성공하더라도 한국이나 제3국에 정착하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북한 주민들의 탈북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첫째는 탈북 브로커를 통한 ‘기획 탈북’이다.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가 북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탈북시키는 것이다. 탈북에 성공해 무사히 남한까지 오면 브로커에게 사례금을 준다.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 중 상당수는 이런 방식으로 가족을 데려오고 있다. 이미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일반화되어 있다. 탈북 브로커들이 북한 주민에게 접근해서 탈북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정착금’이 담보가 된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는 탈북자 정착 지원 시설인 ‘하나원’을 나오면 정착금을 받는다. 이때 받는 정착금의 일부를 떼어 탈북 브로커에게 사례금으로 건넨다.

현재 남한과 중국에서 활동하는 탈북 브로커는 2백여 명에 달한다. 지난해 2월에는 탈북 브로커들이 모여 ‘탈북난민구출연합’이라는 연합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중국과 북한에 구축한 막강한 정보망을 이용해 북한 주민의 탈북에 이용하고 있다. 북한 내부에도 조직원을 두고 있으며, 이들에게는 중국 휴대전화를 지급해서 수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북한에서 탈북한 후에는 대부분 중국을 경유한다. 일부는 중국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한국으로 오기도 한다. 탈북 브로커들은 “중국까지는 얼마든지 탈출시킬 수 있다”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브로커들이 난립하며 경쟁하다가 탈북자가 강제 송환되어 생사가 불투명해진 경우도 있다. 실제 탈북 과정에서 중국 공안에게 잡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탈북자가 행방불명된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이들의 활동에 비상이 걸렸다. 한 탈북 브로커는 “북한 주민을 구출(탈출)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위부원이나 국경수비대원 등을 매수해야 한다. 이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탈출시키는 데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국경 인근의 보위부원이나 수비대가 싹 바뀌었다. 이전보다 경비가 강화되고 단속도 심해져서 일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전했다.

브로커를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명 ‘생계형 탈북자’들이다. 이들은 중국으로 탈출한 후에는 중국 현지 공장이나 농장 등에 불법 취업해 근근히 먹고살고 있다. 그만큼 위험 부담도 뒤따른다. 중국에 체류하는 탈북자들 가운데 일부는 종교 단체 등을 통해 편의를 제공받기도 한다.

지난해 10월4일 목선을 타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이 일본을 거쳐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볼 때 중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 처음에는 연변 자치주와 동북 3성에 주로 머물렀으나, 중국 정부의 단속이 심해지면서 산간 오지, 대도시 근교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 농장 등에서 일을 해도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탈북자들의 신분을 악용해 임금을 착복하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신분이 탄로날까 봐 신고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여성들은 유흥업소에 팔려가거나 성 착취를 당하기가 일쑤이다. 생존을 위해 한족이나 조선족 남성과 결혼하기도 하는데, 탈북 여성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될 경우 자녀들의 상당수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중국에 머무르고 있는 탈북자는 약 1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열에 일곱 명은 여성이다.

중국, 탈북자 색출에 포상금까지 내걸어

중국은 탈북자를 무조건 ‘불법 월경자’로 간주한다. 탈북자 1인당 3천 위안(약 52만5천원)의 포상금까지 내걸고 있다. 탈북자를 도와준 사람에게는 벌금을 부과하거나 구금한다.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며 탈북자를 ‘발본색원’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자 중 일부는 중국 공안의 단속을 피해 인접한 제3국으로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주로 몽골, 태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등이다. 탈북자들은 이곳에서 난민 신청을 하고 가고 싶은 국가를 선택한다. 대기하는 기간은 3~4주 정도 된다.

대부분 한국행을 선택하지만 미국 등 제3국으로 가기도 한다. 한 탈북 브로커는 “동남아 국가에서는 탈북자가 적발되어도 강제 송환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탈북자 단속이 심해진 상태라서 곧바로 한국행이 여의치 않으면 이 루트를 이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해외 체류 탈북자의 현황이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동남아시아에서 떠돌고 있는 탈북자의 숫자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대략 1천~2천명쯤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난민 신청을 하거나 망명한 탈북자의 수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중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퍼져 있는 탈북자에 대해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간접적으로 대략적인 숫자만을 추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우리 재외 공관에서 보호 중인 탈북자는 3백78명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2006년 이래 해마다 2천명 이상의 탈북자가 재외 공관을 통해 국내에 입국했다.

지난해 7월 유엔 난민최고대표사무소(UNHCR)가 발표한 ‘국가별 난민 현황 보고서’를 보면 영주권을 취득하지 않은 채 난민 신분으로 해외에서 살고 있는 탈북자는 2010년 말 현재 영국이 5백81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독일(1백46명), 네덜란드(32명), 호주·미국(각 25명), 캐나다(23명), 벨기에(22명), 노르웨이·러시아(각 14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2010년 말 현재 ‘난민 신분’의 해외 탈북자와 망명 신청자를 합쳐 1천1백95명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 수치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이미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취득한 탈북자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탈북자가 미국에 망명하는 경로는 두 가지이다. 북한에서 탈출한 후 남한에 정착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망명을 신청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탈북한 후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을 떠돌다 난민 신청을 해 미국으로 향하는 방법이다.

한국을 거친 탈북자는 ‘한국 국적’을 가지게 된다. 미국은 한국 국적 탈북자의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망명 신청 탈북자들은 심사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하면서 미국 체류 기간을 늘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동남아시아 국가 등에서 난민 신분으로 미국행을 선택하면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난민이 자국에 1년 동안 거주하면 영주권을 주고 있다. 미국은 2004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탈북자들에게 전향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탈북자들이 단체를 결성하는 등 결속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에서는 ‘재영 조선인 협회’를, 캐나다의 탈북자들은 ‘캐나다 탈북민회’를 발족했다. 이들은 북한의 인권 실상 등을 알리기 위해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등 정치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그러면 지금까지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는 얼마나 될까.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2만3천97명으로 집계된다. 2002년을 기점으로 1천명이 넘었으며, 이때부터 여성 입국 비율이 남성을 추월했다. 2009년도 입국자 중에서는 여성이 약 77%를 차지했다.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들의 정착지는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 5천9백54명, 경기 5천6백24명, 인천 1천9백32명 순이다.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 회장은 “탈북자들이 정착금만 가지고는 남한에서 제대로 자립할 수가 없다. 정부가 탈북자들에 대한 현실성 있는 지원책을 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최소한 탈북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생활 터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정권따라 달라지는 탈북자 명칭  

탈북자에 대한 정책도 정권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명칭만 해도 그렇다. 분단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탈북자는 ‘귀순자’로 불렸다. 이때까지는 중국을 경유하기보다는 휴전선을 넘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귀순자들도 일반 주민보다는 북한 체제를 반대했거나 불법을 저지른 반체제 정치인 또는 군인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이 최악의 경제 위기에 직면하자 ‘생계형’ 탈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배를 이용해 국경을 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중국을 경유해 남한으로 들어왔다. 이때부터 가족을 동반한 ‘가족 탈북’이 이어졌다.

문민정부 말기인 1997년 1월부터는 탈북자의 호칭이 ‘북한 이탈자’로 불렸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1월부터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인 ‘새터민’으로 불렸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인 2008년 11월에 다시 ‘북한 이탈 주민’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탈북자들은 시대에 따라, 정권에 따라 명칭이 바뀌었다. 그런데 탈북자들은 ‘자유 이주민’으로 불려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