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애정에 목마른 자, ‘신데렐라’ 꿈에 목맨다
  •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
  • 승인 2012.03.1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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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엿보는 일반인의 심리 코드

ⓒ honeypapa@naver.com

똑같이 뜯어고친 삐쩍 마른 아이돌만 나오는 음악 프로그램들이 지겨울 때쯤, 음악 그 자체의 실력을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참 신선했었다. 특히나 젊은이들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홍대클럽 같은 데는 쑥스러워서 갈 수 없는 나 같은 중년에게도 큰 즐거움이다. 승자 독식의 포맷이 나머지 탈락자들에게는 잔인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이 출구가 없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면도 분명히 있다. 특히 일방향의 수동적 프로그램이 아니라 참가자와 시청자들이 쌍방향으로 소통한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트위터, 블로그, 페이스북 등의 다양한 소통 채널이 독자가 곧 오피니언 리더가 되는 직접민주주의로 회귀하는 전조라는 의견도 있다.

방송이나 연예계의 권력이 통제하는 기존 연예계에 비해 모든 과정이 공개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에게 자신도 주목받는 스타가 될 수 있다는 판타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국뿐 아니라 영·미권의 유사한 프로그램들도 가난하고 평범한 청년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해서 신데렐라가 되는 이야기를 끝없이 확대 재생산한다. 사회의 불공정함에 대해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마치 중환자에게 주는 달콤한 사탕이나 마약처럼 보일지도 모르겠고,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정치·사회적 의미는 필자의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오디션 프로그램과 관련된 심리 코드들에 이 글을 제한하려 한다. 우선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인정을 받으면서 자기 인생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본능이다. 아이들은 옹알이를 할 때부터 자기 표현을 하고 주변 사람들과 다양한 상호 작용을 하기 시작한다. 걸음마를 하고 말을 배우면서부터는 나름으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면서 박수를 받고 칭찬을 들으면 우쭐해지고 행복해지기도 한다. 심리 분석을 받는 환자들 중에는 어린 시절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기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던 부모에 대한 어두운 기억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 또 반대로 집안에서는 항상 지나치게 주목만 받았는데, 막상 학교나 유치원에 가서 관심이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아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먹이고 재우는 일뿐 아니라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의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

주변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갈증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실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정치인, 스포츠인들도 사실은 관심과 애정에 목마른 것이다. 질투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낫지 사람들에게 마치 투명인간인 것같이 취급받을 때 더 힘들다고 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처럼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고, 자신의 진가를 알아줄 때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등수에 꼭 들지 않더라도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기쁨일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승부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내재된 본성이 있다. 아이들을 관찰하면 아주 어릴 때부터 먹을 것, 장난감 등을 가지고 또래와 경쟁하고 다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쉽게 양보하는 아이들도 아주 가끔은 있지만, 대다수 아이는 가르치지 않아도 다른 아이와 경쟁하고 싸움을 한다. 장난감이나 먹을 것을 가지고 하는 소소한 다툼은 사실 아이들이 커서 사회성을 키우는 하나의 발달 단계이다. 아마 제자백가 시대의 순자도 이런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성악설을 주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경쟁 심리는 꼭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본능이다. 하다못해 작은 벌레나 짐승들도 먹을 것을 찾을 때나 짝짓기를 할 때 서로 다투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본능적인 경쟁심을 하나의 문화적인 의식으로 만드는 것이 놀이, 스포츠, 시험 그리고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세 번째로는 한국 사회, 특히 젊은이 사회에서 관찰되는 쏠림 현상이다.

국제 기능인 올림픽대회에서 연거푸 우승을 한 기능인들이나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젊은이들은 크게 환호를 받지 못하지만, 단숨에 목돈을 거머쥐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에게는 열광하는 분위기이다. 물론 느림보다는 활기를, 무난함보다는 강렬함을 선호하는 것이 젊음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단숨에 모든 것을 얻는 이른바 대박과 한방의 유혹에 빠진다는 사실은 그만큼 사회가 깊이와 무게를 갖지 못한다는 현실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쩌면 한류 열풍도 사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이들처럼 엄청난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폭넓게 형성되어 있는 바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굴뚝 산업만으로는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이 없는 시점이니, 어쩌면 오디션 프로그램으로만 쏠리는 젊은이들을 폄훼만 할 것이 아니다. 그것이 아예 한국 문화의 특징이자 경쟁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일을 택할 때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하겠다는 장기 계획 필요

물론 한 나라를 문화적으로 동일한 덩어리(Homogenous group)로 묶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시기마다 지역마다 문화적으로 대표적인 상징들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예컨대 러시아 하면 우리는 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체호프 같은 문호와 라프마니노프·차이코프스키 같은 음악가, 발레단이나 교향악단 등을 떠올린다. 프랑스 하면 고급스런 디자인의 명품들과 루브르 박물관·베르사이유 궁전 같은 호화로운 건축물이 생각난다. 그리스에서는 고대 유적지가, 미국에서는 마천루와 나사의 우주기지가 대표적인 문화 상징들이다. 슬픈 얘기이지만, 20세기까지의 한국의 상징은 가난, 전쟁, 식민지, 군사 독재, 남북 대치 등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한국은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한류 등을 그 이미지로 차용할 수 있겠다.

물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어두운 면도 읽어 내게 된다. 어떤 일을 택해 나이가 들 때까지 꾸준히 하고 싶다는 장기 계획보다는 우선 시험 그 자체가 목표인 것처럼 오디션도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학 입학, 취직 등이 마치 인생의 종착역인 듯 살다가 그 목표가 달성된 후 길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다. 입학이건 취직이건 시험 그 자체는 들어가는 열쇠에 불과한데, 워낙 입구가 좁아서 입구를 통과하는 데 온 에너지를 다 쏟다 보니 막상 문턱을 넘은 다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오디션에서 갑자기 뜬 스타들의 유통 기한이 길어야 1년이라고 한다. 하물며 대다수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오죽하겠는가. 그 많은 젊은이의 인생에 과연 오디션 참가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마치 그들의 엄마나 된 것처럼 쓸데없는 걱정도 해본다. 중국집, 피자집, 슈퍼마켓, 커피 전문점에서 낮은 임금에도 친절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젊은이들을 접하면서 그들이 매니저를 거쳐 관리자로 최고 경영자까지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많은 이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할까? 훌륭한 재능에, 칼을 대지 않아 아름답고 풋풋한 외모의 젊은이들을 보면 사실은 좀 안쓰럽다. 콩쿠르에 나가 여러 번 떨어지면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었던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 따르면, 무대란 갈채보다는 공포의 지뢰밭처럼 느껴질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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