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삼성 손잡고 ‘명품 IT 차’ 낳는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3.1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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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전자제품화 위한 이종 융합’은 세계적 흐름…국책 과제 수행자로 선정되어 MOU 체결도

속도·위치·날씨 등을 전면 유리에 띄우는 기술(HUD)이 최신 자동차에 적용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삼성그룹이 조만간 손잡고 명품 IT 자동차를 만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내 재계 1, 2위인 양사가 자동차 개발에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는 배경은 ‘자동차의 전자제품화’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미 현대차에 삼성 반도체가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안다. 이를 보더라도 삼성과 현대차는 예전부터 작은 부분이나마 직·간접으로 협력해왔다. 자동차업계와 IT업계가 결합하는, 이른바 이종 융합은 최신의 세계적인 트렌드이다. 현대차는 삼성의 IT 기술이 필요하고, 삼성은 차량용 메모리 사업을 확대할 명분이 확실해진 것이다. 양사의 필요충분조건이 맞아떨어지면서 이 두 기업의 결합은 가속화될 것이다. 언론에 노출될 정도로 대규모의 협력도 올해 여러 건 이루어질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두 기업 모두 원천기술 확보·수출 확대 유리

지난 2011 세계전자제품박람회(CES)에 전시장을 마련하고 이동통신 기술과 결합한 차량을 선보인 현대자동차. ⓒ 현대·기아차
‘자동차는 전자제품이다.’ 자동차업계에서 나온 이 말은 ‘자동차의 전자제품화’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자동차 부품 10개 중 3개는 전기·전자 부품인데, 이 비율은 2015년 40%를 넘길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전기·전자 부품과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40%를 넘으면 전자제품으로 분류한다. 3년 이내에 자동차를 전자제품이라고 불러도 무방해진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신차 개발 기술의 90%는 전자 관련 기술이고, 미국 소비자가 요구하는 기술 10가지 중 7가지는 전자 관련 기술이다”라고 말했다.

자동차와 IT의 결합에서는 비메모리 반도체와 이동통신이 핵심이다. 삼성과 현대차가 지난 몇 년 동안 협력해온 분야도 이 부분이다. 2009년 현대차는 스마트키, 전기차용 배터리 등에 들어갈 비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했고 삼성은 주문형 반도체 사업 확대가 절실했다. 컴퓨터 등에 사용하는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인 삼성이지만,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약체이다. 때마침 지식경제부가 주도한 국책 과제 수행자로 두 업체가 선정되어 차량용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양사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2011년에는 현대차와 삼성이 통신 분야에서 협력했다. 현대차는 2013년부터 내비게이션과 통신 기능을 통합한 태블릿PC를 탑재한 차를 생산한다. 여기에 운전자의 삼성 스마트폰을 무선으로 연결하는 방식에 양사가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스마트폰에 수신한 메시지를 운전자가 직접 보지 않고도 태블릿PC를 통해 음성으로 들을 수 있어 안전 운전에 도움이 된다. 또 음악, 영화, TV, 게임 등 스마트폰에 있는 콘텐츠를 태블릿PC로 즐길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협력은 그동안 양사가 진행해왔던 공동 마케팅 수준이 아니라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제품을 차내에서 폭넓게 활용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동차와 이동통신의 접목은 텔레매틱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블루오션으로 급부상했다. 텔레매틱스는 통신과 정보과학을 뜻하는 영어의 합성어인데, 자동차와 무선통신을 결합한 차량 무선인터넷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가정에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을 그대로 자동차로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는 차에서 이메일, 메시지, 뉴스, 게임, 금융 거래, 음악, 영화, 쇼핑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세계 텔레매틱스 시장 규모는 2007년 98억 달러에서 2012년 2백40억 달러로 연평균 18% 이상 급속히 성장해왔다. 한국의 IT 산업과 자동차 산업은 세계적인 수준이어서 이 시장에 빠르게 진출할 기반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업계 간 연계가 미흡했다. 현대차와 삼성은 각자 ‘차량 IT’ 개발에 공을 들여왔다. 현대차는 마이크로소프트(MS), 보다폰(영국 최대 이동통신업체), NHN(한국 포털업체) 등과 다양한 협력을 진행했다. 또 비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한 회사를 설립하는 것도 추진해왔다. 2005년 독일 지멘스와 합작 설립한 현대카네스를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 전문기업으로 키우기로 했다. 차량용 비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에 대비한 행보이다. 시장 조사 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스틱스(SA)에 따르면 올해 2백80억 달러 규모의 차량용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2016년 3백28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2010년 지멘스의 지분을 모두 인수했고,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사명을 현대차전자로 바꾸어 차량용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을 전담할 것이다. 생산은 삼성 등 시설을 갖춘 기업에서 담당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손 움직임과 음성으로 조절하는 차 연말 출시

운전자의 얼굴을 인식해 안전 운전에 도움을 주는 기술(DSM)을 현대모비스가 개발했다. ⓒ 현대모비스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와 모터 개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은 BMW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 2월 주요 전시회 방문을 취소하고 BMW 회장을 만났을 정도이다. 삼성은 2010년부터 2020년까지 BMW 전기차에 배터리를 단독으로 공급한다. 삼성토탈과 제일모직을 통해 경량화 소재 기술도 가지고 있는 삼성은 과거 상용차를 만들어본 경험도 있어서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다른 IT 기업보다 우위를 차지할 기반을 다져놓은 셈이다.

이처럼 세계적인 기업과 관계를 맺으며 차량용 IT 부문을 준비해온 현대차와 삼성이 최근 결합한 데에는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수단을 넘어 다양한 편의성과 안전성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목소리도 촉매제로 작용했다. 점차 확대될 전망인 양사의 협력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한국이 독자적으로 원천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내수 시장이 활성화되고, 기술력이 검증되어 수출에 도움이 된다. 또 수조 원의 차량용 전자부품 수입 대체 효과를 볼 수 있고, 각 기업이 이중 설비 투자를 피할 수도 있다.

현대차와 삼성이 협력해서 만든 차는 올해 말부터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세계 최고의 전자제품박람회(CES)나 세계 최대 규모의 이동·정보통신 산업 전시회(MWC)에는 모터쇼를 방불케 할 만큼 세계적인 자동차업체들이 참여했다. 현대·기아차도 자동차를 선보였는데, 차량 내부에 무선랜(wifi)이 구축된 점이 특징이다.

전미가전협회(CEA)에 따르면 이미 미국 내 전체 가정의 15%가 인터넷이 가능한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 IT 시장 조사 기관인 아틀라스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자동차 대수가 2015년 약 1억대에서 2020년에는 북미, 유럽, 아시아의 모든 자동차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자동차와 통신 기술이 접속한, 이른바 ‘커넥티비티 카(connectivity car)’가 도로를 달리게 되는 셈이다.

운전자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조작도 운전에 방해되지 않도록 고안되었다. 사용자에게 친숙한 마우스로 에어컨, 오디오 등을 조작할 수 있고, 심지어 터치 방식에서 벗어나 손동작만으로 작동하는 시스템(근접 인식 마우스틱)도 도입해 편리성이 커진다. 안전성도 강화된다. 주행 속도, 앞차와의 거리를 계산해 충돌 위험 경보를 울리는 장치(전방 추돌 경보시스템), 고속 주행할 때 카메라로 차량 주위 3백60˚를 인식해 위험을 예고하는 장치(전방향 영상 인식 안전 시스템)도 탑재된다.

기아차는 UVO라는 차량 정보 기술을 선보였다. 차 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가 의식을 잃어도 자동차가 스스로 사고 상황을 해당 기관에 통보하고 긴급 출동까지 요청한다. 운전자의 스마트폰과 차량을 연계하면 가능한 기능이다. 긴급구조센터는 GPS(위성추적시스템)를 통해 사고 위치를 확인하고 구조 작업을 펼 수 있다. 올해 말부터 기아차에 적용된다. 음성 기능이 있어서 스마트폰에 수신된 메시지를 차가 읽어주고, 운전자도 음성으로 각종 장치를 조절할 수 있다.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실제 거리 모습을 볼 수 있고, 병원·은행·마트 등 주변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밤에 적외선으로 보행자를 탐지하는 기능(컬러 나이트뷰)도 지니고 있다.

현대차의 브레인, 현대모비스·현대차전자

지난 2011년 북미 국제모터쇼에 공개된 현대자동차의 커브(CURB)와 내부 디자인(왼쪽). ⓒ 현대·기아차

차량용 비메모리 반도체를 현대차전자(가칭)가 전담하는 대신 그 밖의 기술은 현대모비스가 담당한다. 두 회사가 현대차의 브레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현대모비스는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차선 이탈 경고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카메라를 통해 수집된 도로 영상이 전자제어기(ECU)로 보내지면, ECU는 운전자가 방향 지시등을 작동하지 않고 차선을 이탈할 시에 경보음이나 안전벨트를 당기는 방법 등으로 운전자에게 위험을 알린다. 시속 60km 이상에서, 졸음 운전뿐만 아니라 에어컨, 오디오 등을 조작하는 동안 의도하지 않게 차선을 이탈할 때에도 작동한다. 신형 에쿠스에 적용된 이 시스템은 세계 최초로 중앙 차선과 일반 차선을 구분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등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도 개발하지 못한 기술이다. 게다가 자동차가 운전자의 얼굴 상태까지 파악하는 기능도 있다. 적외선 카메라로 운전자의 얼굴 방향과 눈꺼풀 반응 등을 종합해서 부주의한 운전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경고음이나 안전벨트 진동을 발생시킨다. 

속도, 날씨, 내비게이션, 위치 등 각종 정보가 차량 전면 유리창에 나타나는 기능(HUD)도 곧 현실화된다. 운전자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길 필요가 줄어들어 안전 운전에 도움이 된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HUD는 시험 운전 중이다. 그러나 안전성 확인 등이 필요한 만큼 2~3년 후에 실제 차량에 장착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전자제품은 100% 신뢰를 할 수 없다. 특히 자동차에 사용하는 전자부품과 소프트웨어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므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박장현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는 “로봇의 기능까지 자동차에 적용하는 시도가 활발하다. 예컨대, 차량에 장착된 영상 센서, 레이더, 초음파 등이 차선이나 장애물을 인식하는데, 비가 오거나 터널 등에서는 불안정하다. 차량 IT 산업에는 이처럼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삼성 등 세계적인 전자업체들이 자동차 분야에 관심이 많은 만큼 점차 해결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일부 차량에는 레이더 장치가 붙어 있다. 추돌 위험을 감지해서 운전자에게 알린다. 그럼에도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자동으로 제동하면서 추돌 위험을 피한다. 앞차와의 간격이 위험 수준에 도달하면 스스로 강제 정지한다.  

이처럼 외국 자동차회사들도 전자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IT업체들과 협력하는 사례가 많다. 볼보는 휴대전화 제조업체 에릭슨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통신 기술을 적용한 전기차를 만들고, 아우디는 구글의 전자 지도를 탑재했다. 포드는 소니, 버라이즌 등과 협력해 음성 조작 기능, 자동 긴급 구조 요청 기능 등을 차량에 적용했다. 최근 MWC에 참석한 포드 사의 월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 CEO는 “세계 자동차업계가 성장이 정체되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스마트폰, 랩톱 컴퓨터 같은 첨단 모바일 기기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IT 기술의 도입을 강조했다.

BMW, 인텔, GM, 푸조 등은 기술 개발 연합체(제니비)까지 구성했다. 공동으로 핵심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2010년 현재 100여 개 기업이 참여한 세계적인 표준 연합체로 성장했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LG전자 등 한국 기업도 참여하고 있다. 

IT업체도 자동차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구글은 무인자동차를 공개했고, 이른바 icar를 통한 애플의 자동차 시장 진출도 점쳐진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09년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오토라는 차량용 운영체제(OS)를 만들었다.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인 인텔은 4~5년 동안 1억 달러를 자동차 IT 기술 개발에 투자하기로 공식 발표하고, 독일에 자동차기술센터까지 설립했다. 인텔은 BMW, 현대·기아차, 토요타 등과 함께 IT 접목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스테이시 팔머 인텔 자동차 솔루션 부문 대표는 “자동차는 궁극의 모바일 기기이다. 자동차는 2014년까지 통신과 인터넷 부문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중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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