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문재인 ‘위험한 상견례’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2.03.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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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공천 작업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결정 났다. ‘친박근혜계’ 대 ‘친노무현계’가 맞붙는 구도로 귀결된 것이다. 이와 함께 ‘박근혜 대 문재인’ 격돌 구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이번 총선이 12월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띨 것이라는 전망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 둘 중 한 사람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과연 누가 웃고, 누가 울까.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원주시 민속풍물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4년 만에 정치 지형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지난 2008년 4월에 치러진 18대 총선은 한마디로 ‘친이계’ 대 ‘민주 연합군’의 싸움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였던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이상득·이재오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가 완벽히 장악하고 있었다. ‘공천 학살’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공천에서 대거 탈락한 ‘친박근혜계’의 비중은 전체 공천자의 20%도 채 안 되었다. 일부 중도파도 있었지만, 사실상 70~80%를 친이계가 장악했다. 이에 맞섰던 당시 통합민주당(현 민주통합당)에는 대선 참패 이후 ‘손학규계’ ‘정동영계’ ‘친노계’ ‘구민주계’ 등이 혼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정치판은 요동쳤다. 여야가 현재 공천 작업에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이미 대세는 ‘친박근혜계’ 대 ‘친노무현계’의 싸움으로 사실상 결정 났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주류를 다시 회복한 ‘친박’과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당권을 움켜쥔 ‘친노’ 두 세력이 향후 정국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기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공천 학살의 대상이었던 친박 세력과 대선 패배 후 스스로 ‘폐족’이라고 자괴했던 친노 세력의 4년 전 모습과 비교해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19대 총선이 ‘박근혜 대 문재인’의 대결 구도로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이번 4·11 총선이 오는 12월 대선의 전초전 성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 새누리당, ‘친박 공천’ 45.9%…원외 공천자 상대적으로 많아

지난 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은 친박 성향 인사는 46명 정도에 불과했다. 지역구에 출마한 총 2백45명의 후보 중에서 18.8%밖에 되지 않는 수치이다. 친이계가 압도적 다수를 점한 비례대표 후보까지 포함하면 친박계의 공천 비율은 더욱 낮아진다. 당시 친박계 좌장 격이던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홍사덕·박종근·이해봉·이경재·김태환 의원 등 중진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들은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를 통해 국회 재입성에 성공했다.

이번에는 입장이 뒤바뀌었다. 3월9일 현재 총 1백35명 공천자 중에서 62명 정도가 친박 성향 후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45.9%로 절반에 가깝다. 총선에서 첫 공천을 받은 후보들 중에서 친박 성향 인사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지난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거나, 친박연대 간판으로 출마했던 후보도 상당수이다. 친박계 세력이 강한 영남 지역의 공천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는데도 친박 성향 후보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향후 영남 지역 공천 결과에 따라 친박계 후보는 과반수를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중에서 원희룡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서울 양천 갑에 길정우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공천을 받아 눈길을 끈다. 이 지역은 강남 못지않게 새누리당이 우세한 곳으로 꼽혀 공천 경쟁이 치열했다. 국제통으로 알려진 길 전 위원은 17대 비례대표를 지낸 안명옥 전 한나라당 의원의 남편이다. 안 전 의원은 박근혜 위원장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미래연구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보건의료 전문가이다. 서울 성동 갑에 공천이 확정된 김태기 단국대 교수와 성남 분당 갑에 공천을 받은 이종훈 명지대 교수도 국가미래연구원의 회원들이다.

박근혜 위원장의 참모 역할을 했던 인사들도 새누리당 간판으로 총선에 나서게 되었다. 이상득 의원이 불출마한 포항 남·울릉에 전략 공천된 김형태 전 KBS 방송국장이 대표적이다. 김 전 국장은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박위원장 캠프에서 지방언론단장을 지냈다. 부산진 을에 공천된 이헌승 전 부산시 대외협력보좌관은 박위원장 캠프 수행부단장 출신이다.

친이계 재선인 허천 의원을 제치고 춘천 지역 공천을 받은 김진태 전 춘천지검 부장검사는 친박 성향 인사들이 결성한 상록포럼 공동대표로 강원도를 대표해 활동하고 있다. 원주 출신으로 서울 도봉 을이 지역구인 친박계 김선동 의원이 이 포럼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서귀포에 공천이 확정된 강지용 제주대 교수는 박위원장의 외곽 조직인 제주희망포럼 고문을 맡고 있다.  

친박 성향의 전직 구청장들도 다수가 공천을 받았다. 정송학 전 광진구청장(광진 갑)과 신영섭 전 마포구청장(마포 갑)이 대표적이다. 서찬교 전 성북구청장(성북 을)과 이노근 전 노원구청장(노원 갑)은 현역 의원이 공석인 지역에서 총선 후보가 되었다. 친박계 후보로 인천시장에 출마했던 윤태진 전 남동구청장(인천 남동 갑)은 4선의 친이계 이윤성 의원이 탈락한 자리를 꿰찼다.

송진섭 전 안산시장과 이우현 전 용인시의회 의장은 지난 총선에서 친박연대 후보로 출마했었다. 이번에는 안산 상록 갑과 용인 처인 지역에서 새누리당 간판으로 국회 입성을 노리게 되었다. ‘열혈 친박’인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 대표의 보좌관 출신으로 서울 동작 갑 지역구를 물려받은 서장은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도 공천을 받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참배객들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민주당, ‘친노 공천’ 15.7%→34.4%…PK 지역에 전 청와대 보좌진 대거 공천

민주당 상황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1백52석)으로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했던 친노 진영이 8년 만에 다시 진보·개혁 진영의 주도권을 잡았다. 지난 총선 때와 비교해보면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18대 총선 때에는 아예 지역구 50여 곳에서는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이 가운데 친노 진영의 입지는 더욱 좁았다. 친노 성향의 후보는 전체 1백97명 후보 중 31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5.7%에 불과한 낮은 수치이다. 친노계의 좌장 역할을 하던 이해찬 전 총리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왼팔’ 안희정 최고위원도 출마의 뜻을 접어야 했다. 노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으로 불리던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은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반면 이번 총선에서는 친노 진영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3월9일 현재 총 1백50명의 공천자 중에서 52명 정도가 친노 성향의 후보인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부산·경남(PK)에서 친노 후보들이 대거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18대 총선 당시에는 부산의 조경태 의원(사하 을)과 전재수 전 청와대 제2부속실장(북·강서 갑), 경남의 하귀남(창원·마산 회원)·정영두(김해 갑) 전 청와대 행정관 등 공천을 받은 친노 후보는 네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수가 예전의 다섯 배를 넘어 22명에 이른다. 부산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상임고문(사상)을 비롯해 이해성(중·동구)·박재호(남구 을)·최인호(사하 을)·김인회(연제) 후보 등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들이 대거 공천을 받았다. 여기에 문성근 최고위원(북·강서 을), 김정길 전 행자부장관(부산진 을) 등이 힘을 보태고 있다.

경남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인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김해 을)을 비롯해 송인배(양산)·김성진(창원·마산 합포)·조수정(사천) 후보 등 청와대 참모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현재로서는 전체의 34.7%이지만 이번 총선에서 계파 색이 없는 정치 신인들을 대거 등장시킨 반면, 구민주계와 손학규계·정동영계 등이 크게 위축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세는 이미 친노계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안희정·이광재·김두관 후보 등이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당선하면서 친노의 부활은 어느 정도 예견된 셈이었다. 올해 1월15일 열린 민주통합당의 첫 전당대회도 친노 진영이 사실상 주도했다. 참여정부에서 여성 총리를 지낸 한명숙 후보가 1위를 차지해 초대 당 대표로 선출되고, 문성근 최고위원이 2위로 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당 외곽에서는 ‘노무현재단’이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대표에 이어 문재인 고문이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 한동안 ‘공천을 받으려면 노무현재단 이름부터 내걸고 보아야 한다’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 박근혜, ‘공천 대결’ 판정승…문재인, 직접 ‘전체 선거’ 챙길까

이번 총선은 8개월여 후에 실시될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친박’-‘친노’의 대결은 박근혜 위원장 대 문재인 상임고문의 격돌이기도 하다. 총선 결과에 따라 두 대권 주자의 입지가 달라질 수 있다. 현재까지의 공천 성적만 놓고 보았을 때는 박위원장의 판정승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당내 반발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과제가 남았지만, 초반에 새누리당에 불리하던 선거 판세는 차츰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새누리당이 점수가 낮은 탈락자를 자르는 네거티브 시스템을 공천에 적용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점수가 높은 공천자를 결정하는 포지티브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민주당이 더 변화의 폭이 좁고 긴장감이 적어 주목을 덜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더 엄정하게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데, 흔들린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한명숙 민주당 대표가 갖는 권한의 한계도 있다. 박근혜 위원장의 경우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일 뿐 아니라 유력한 대선 주자이다. 감독 겸 대표 선수인 셈이다. 반면 한대표는 감독의 역할에 한정되어 있다. 박위원장이 공천을 주도할 경우 이에 대한 반발에도 대응이 가능하지만, 한대표가 공천을 주도할 경우 반발을 무마시키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공천이 더 소극적으로 비치는 이유이다. 경쟁력을 앞세운 ‘학력고사 공천’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공부를 먼저 시작한 학생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 현역 의원이 기득권을 지키기 유리한 방식인 셈이다.

결국 쇄신과 개혁 공천을 통해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대선에 나설 유력한 대권 주자가 직접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들어 문재인 상임고문의 행보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문고문은 지난 3월8일 오후 갑자기 서울에 올라와 민주통합당 출범의 한 축인 혁신과통합 대표단과 회동을 가졌다. 여기서 제기된 공천의 문제점을 한대표에게 직접 전하는 역할도 맡았다. PK(부산·경남) 지역 선거만 신경 쓰던 기존의 지역 밀착형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선거판을 챙기기 시작했다는 관측이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친노 진영은 결속력이 강하다. 논리를 제공하고 감성을 전달하려는 열정도 많다. 앞으로도 민주당에서는 친노 진영이 주도권을 잡아갈 가능성이 크다. 대선 국면을 주도하기 위해 당 내부를 더 장악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남은 과제는 문고문의 정치력이다. 총선 시기에는 분열 요인이 많은 만큼 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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