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속일 수 있는 거짓말은 없다
  • 김재태 편집부국장 ()
  • 승인 2012.03.1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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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권 3년차이던 1990년,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두 건의 대형 폭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행정 기관에서, 또 하나는 군부대에서 터져나왔습니다. 그해 5월, 당시 감사원 감사관으로 일하던 이문옥씨는 재벌 기업들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감사가 업계의 로비를 받은 상부의 지시에 의해 중단되었다고 밝혀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또, 9월에는 보안사에서 군 복무 중이던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관련 목록을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12년이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세상에는 숨겨진 진실이 너무 많습니다. 비밀을 감춘 큼지막한 사건들이 적당히 덮인 채로 역사 속에 줄줄이 파묻혀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비밀이란 세상에 없는 법입니다. 완벽하게 덮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진실이 튀어나옵니다. 최근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과 관련된 근무자가 진술을 번복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그 한 예입니다. 서둘러서 ‘청와대 불개입’이라는 결론을 내고 수사를 마무리했던 검찰의 입장이 꽤나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윗선은 감춰진 채 적당한 선에서 종결되었던 사건이,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으로부터 ‘민간인 사찰 기록이 담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지원관실 전 주무관의 폭로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입니다.

십수 년 전, 그 억눌린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용기 있는 양심선언이 잇따랐는데, 요즘같이 디지털 네트워크가 촘촘히 깔린 상황에서는 ‘비밀의 봉합’이라는 완전 범죄는 더욱 불가능합니다. 그야말로 ‘낮말은 컴퓨터가 듣고, 밤말은 스마트폰이 듣는’ 시대입니다. 언제 어디서 감춰졌던 송곳이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특히 권력의 통제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정권 말기는 ‘딥 스로트(Deep Throat; 내부 고발자)’의 출현이 더 빈번해지기 마련입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끝내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도청 사건 그 자체보다 뻔뻔스러운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도청 사건을 측근들의 과잉 충성으로 몰아붙였다가 정반대의 폭로가 나오면서 궁지에 몰린 것입니다. 최근 일어난 프로야구 경기 조작 사건에서도 조작에 참여했던 한 유명 투수가 야구팬들부터 분노를 산 것은 경기 조작 그 자체보다 너무나 천연덕스러웠던 그의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연루 사실을 부인하던 모습에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얼마 동안 속일 수는 있다. 또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라는 에이브러험 링컨의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순간들입니다.

대형 선거가 겹쳐 있는 격동의 해 2012년에 또 어떤 대형 폭로가 터져나와 세상을 들쑤셔놓을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의혹을 남긴 채 덮인 사건이 너무 많기에 곳곳이 지뢰밭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검찰이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더 이상 미완의 수사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완벽한 비밀은 점점 더 발을 붙이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를 속일 수 있는 거짓말은 이제 존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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