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야구 주말 리그도 결국 ‘헛스윙’ 되나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2.03.1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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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경기 조작 사건과 맞물려 야구계 정화의 대안으로 더욱 주목…정치적 이유로 존폐 위기 맞아

지난해 6월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첫 고교 야구 주말 리그 왕중왕전의 우승팀 충암고 선수들이 이영복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경기 조작이 사실로 드러났다. 3월14일 대구지검은 프로스포츠 승부 조작에 프로 선수 18명이 가담해 총 23경기가 조작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프로야구는 두 명이 경기 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 LG 투수 김성현은 구속되고, 박현준은 불구속 기소되었다. 검찰은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프로야구 승부 조작 사실을 최초로 적발해 승부 조작이 특정 종목에 국한되지 않고 만연되어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했다”라고 강조했다. 의식 있는 야구인들은 “경기 조작이 사실로 밝혀져 부끄럽고, 치욕스럽다. 이참에 야구계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시사저널>은 중견 야구인 두 명을 만나 경기 조작을 비롯한 야구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선수들의 인성 교육에 무관심했던 과거 지적

ⓒ 연합뉴스
KBS 이용철 야구 해설위원은 1988년 프로에 데뷔했다. 그해 이위원은 MBC 청룡(LG의 전신) 유니폼을 입고 신인왕에 올랐다. 당시 그가 거둔 성적은 7승11패, 평균 자책 2.74. 10승 투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는 지금도 ‘프로야구 사상 가장 운이 좋은 신인왕’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이위원은 그런 평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10승은 거두지 못했어도 정정당당하게 신인왕에 올랐기 때문이다.

“부족한 3승은 어떤 식으로든 채울 수 있었다. 선발투수가 5회 마운드에서 내려가고 구원으로 올라 승수를 챙기면 되었다. 구단에서도 ‘신인왕 타이틀 획득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거절했다. 부끄럽게 10승 투수가 되느니 정정당당하게 7승 투수로 남는 것이 훗날 후회하지 않을 일이라 생각했다.”

이위원의 생각은 옳았다. 야구 전문가들은 이위원의 신인왕 수상을 ‘구단과 코칭스태프의 조직적 개입 없이 선수 자신의 힘으로 달성한 성과물’이라고 평가한다. 그런 이위원이기에 프로야구 경기 조작은 치욕 그 자체였다.

“처음 프로야구 경기 조작 얘기를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으니 사실일 가능성이 컸으나, 야구에서 경기 조작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기에 내심 무혐의로 밝혀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에서 결국 사실임이 밝혀졌다. 선배들과 우리가 어떻게 만든 프로야구인데 후배들이 이렇게 분탕질을 해도 되는가 싶었다. 후배를 잘 지도하지 못한 우리들의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위원은 그동안 프로야구가 경기력 향상에만 치중한 나머지 선수의 인성 교육에는 무관심했다고 지적했다. “한국 야구는 기술적으로 미국과 일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이미 확인되었다. 하지만 선수의 인성과 프로 의식은 1980년대보다 못하다. 실제로 야구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을 보면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많다. 치정과 음주 폭행, 상습 도박, 강간, 경기 조작은 과거에는 볼 수 없던 일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이 이제는 선수의 인성과 프로 의식을 고취하는 데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 제3의 경기 조작이 또 터질지 모른다.”

이위원은 학교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계에는 ‘의리 문화’가 만연되어 있다. 경기 조작 사건도 의리 때문에 벌어진 측면이 크다. 선수들이 야구에만 초점을 맞추고, 인간관계도 야구계에만 국한되다 보니 사회적 상식이 부족하고, 세상을 보는 눈이 제한적이다.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학교 교육뿐이다. 유소년 때부터 학생 선수들이 야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우 관계를 맺고, 학습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위원은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시작했던 고교 야구 주말 리그를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도 확대 적용하기를 바랐다. 덧붙여 아마추어 지도자들의 보수 교육 기관인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더 활발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정치적 이유로 고교 야구 주말 리그와 ‘베이스볼 아카데미’가 심각할 정도로 존립에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강승규 야구협회 회장이 적극 추진…총선 출마 좌절로 앞날 ‘불투명’

과거 해태 포수였던 현 홍익대 장채근 감독은 대표적인 고교 야구 주말 리그 반대론자였다. “주말 리그가 야구의 근간인 고교 야구를 뒤흔들어 결국 한국 야구의 질적 붕괴를 가져올 것이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한국이 WBC와 올림픽에서 미국, 일본 등 야구 강국을 제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엘리트 야구가 숨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의 혹독한 훈련이 뛰어난 선수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고교 야구에 주말 리그가 도입되면서 선수는 야구와 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신세가 되었다. 주말에만 경기를 치르고, 학교 수업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받아야 한다. 어디 그것이 쉬운가. 현실적으로 둘 다 놓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을 봐도 안다. 과거에 비해 실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6교시까지 의무적으로 공부를 시키는 바람에 훈련량이 줄고, 훈련 강도도 약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주말 리그를 운영하면 한국 야구도 머지않아 중국 야구에 잡힐지 모른다.”

그러나 장감독은 얼마 못 가 생각을 바꾸었다. 대학 야구 선수를 보며 학습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거기다 경기 조작 사건이 터지자 장감독은 주말 리그 적극 옹호자가 되었다.

“엘리트 야구의 폐단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았다. 올림픽 금메달과 자국 야구의 건전화 가운데 어느 것이 야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심사숙고했다. 결론은 후자였다. 타이완이 좋은 예였다. 타이완도 우리처럼 엘리트 야구를 지향한 나머지 선수의 인성 교육과 학습량이 적었다.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은 냈지만, 연이은 승부 조작 파문으로 자국 리그의 인기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는 야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 하락과 선수 지원 감소로 이어졌다. 지금 타이완을 보라. 1990년대에 비해 프로야구팀이 60% 이상 줄었다. 어차피 야구가 로컬 스포츠라면 자국 야구 건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주말 리그는 정치적 이유로 존립 위기에 처했다. 발단은 대한야구협회 강승규 회장의 공천 탈락이다. 강회장은 3월5일 발표된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서 최종 탈락했다.

2009년 1월 대한야구협회 제20대 회장으로 취임했던 강회장은 학생 야구의 방향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고교 야구 주말 리그를 추진해 지난해부터 실시했다. 야구계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강회장은 특유의 추진력으로 주말 리그제를 관철시켰다. 당시 아마추어 지도자들은 “어차피 국회의원에서 떨어지면 힘도 없으니 2012년 총선까지 기다리자. 강회장이 총선에서 떨어지면 주말 리그도 원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바람이 현실이 된 셈이다. 만약 강회장이 총선에 출마하지 못하고, 협회에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서서 ‘주말 리그 폐지’를 주창한다면 이를 막을 장치가 없다.

강회장의 몰락은 ‘베이스볼 아카데미’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베이스볼 아카데미’는 대한야구협회와 KBO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야구 전문가 육성 과정이다. ‘지도자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 과정을 설립한 배경이었다. 그러나 프로 출신 일부 지도자와 1백20시간의 교육 시간을 아까워하는 몇몇 일선 지도자들은 “우리가 야구 전문가인데 무슨 교육을 받으라는 것이냐”라며 이 과정을 달갑지 않게 봐왔다. 역시 주말 리그 도입 때처럼 몇몇 아마추어 지도자들은 “강회장이 낙마하면 ‘베이스볼 아카데미’도 사라질 것이다. 버티면 결국 승리하는 것은 우리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강회장의 공천 탈락 소식에 쾌재를 부르고 있다. 경기 조작 사건으로 야구계가 정화를 외치는 가운데 현실은 더 혼탁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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