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한 현실이 우리에게는 강점이 되었다”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2.03.1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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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배급사 NEW의 장경익 이사 인터뷰

ⓒ NEW제공
충무로를 쥐락펴락하는 대기업 계열의 영화 투자배급사가 아니다. 이렇다 하게 큰 예산이 든 대작을 개봉시키지 않았고, 당초 기대작으로 꼽히는 영화도 없었다. 그런데도 지난해 전국 관객 점유율은 9%로 3위에 올랐다.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투자배급사 틈바구니에서 얻어낸 투자배급사 NEW의 흥행 성적표는 놀랍다. NEW는 대기업과는 무관하게 2008년 설립된 순수 투자배급사이다.

NEW는 지난해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풍산개> <블라인드> 등 중급 영화나 저예산 영화 아홉 편을 배급했다. 그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는 여섯 편이다. 66.7%의 성공률이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한 푼이라도 번 영화의 비율이 고작 24.6%(영화진흥위원회 추정)인 점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수치이다.

올해는 <부러진 화살>과 <러브 픽션> 모두 흑자를 남기며 더욱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극장가에 불고 있는 중급 영화 바람의 선봉에 NEW가 서 있는 셈이다. NEW의 장경익 영화사업총괄이사는 “편견 없이 영화 자체만을 보고 판단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라고 말했다. NEW는 김기덕 감독의 신작 <피에타>와 퓨전 사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고현정 주연의 코미디 <미쓰고> 등 10편의 영화를 더 개봉할 예정이다. 다음은 장이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성과가 좋은데, 투자나 배급을 결정할 때 원칙이 있나?

우리는 초기에 다른 회사보다 자금력이 떨어졌고 극장도 없다. 신생회사라서 파트너도 부족했다. 약점이 너무 많았다. 나는, 영화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약점을 잘 알고 있으니 한작품 한작품 성공해야한다는 절박감이 강했다. 배급시기도 탄력적으로 하려고 했고 고민과 연구도 많이 했다. 관객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추니 극장이 없다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

<그대를 사랑합니다>나 <러브 픽션> 등 비수기에 들어가 흥행시킨 영화가 많다.

경험으로 보았을 때 좋은 영화가 나오면 성수기냐 비수기냐에 상관없이 흥행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실제로 의외의 대박 영화는 비수기에 나왔다. 비수기는 경쟁이 치열하지 않으니 마케팅비를 많이 쓰지 않고 우리 영화를 잘 알릴 수 있는 시기라 생각하고 겁 없이 들어갔다. 결국 우리의 불리한 현실이 강점이 된 듯하다. 작품 선정에 직원 모두가 참여하는 조직 문화도 큰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극적으로 흥행한 영화를 꼽는다면?

<부러진 화살>과 <러브 픽션> 두 편이 극적이었다. 지난해 한 자리에서 어느 제작자를 만났는데 <부러진 화살>을 왜 설 연휴에 개봉하느냐고 묻더라. 내가 ‘현 추세라면 적어도 50만명이 보고 바람을 타면 2백만 관객도 가능하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 계신 분들이 다 의아해했다. 설 연휴에 무겁고 정치적인 영화를 개봉해서 되겠느냐는 생각은 단지 선입견일 뿐이다. 대중의 눈을 어떻게 끄느냐가 중요하다. <러브 픽션>은 3월1일을 겨냥해 개봉하면 잘 되리라 생각했는데 의도가 적중했다. 그래도 가장 극적인 영화는 (노년의 사랑을 다룬) <그대를 사랑합니다>이다. 초반 성적이 좋지 않아 극장 상영 횟수가 많이 줄었는데 결국 입소문에 힘입어 6일 만에 제 궤도에 오르며 흥행에 성공했다.

흥행시켜 보람을 느낀 영화는 어떤 작품인가?

(김기덕 감독이 제작한) <풍산개> 흥행이 가장 보람 있었다. 김감독은 한국 영화에서 아주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한다. 이 영화의 흥행을 바탕으로 감독이 영화 제작을 다시 하게 된 점을 무척 보람 있게 생각한다.

중급이나 저예산 영화를 발굴하고 개봉하는 데에만 주력할 생각인가?

100억원 이상의 영화를 꼭 투자·배급하겠다는 마음은 아직 없다. 좋은 영화라면 어느 정도 무리를 하겠다는 생각 정도이다. 예산에 대한 편견이 없다면 그런 영화도 발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회사와 한국 영화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영화를 투자·배급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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