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논쟁과 변화의 ‘서곡’인가
  • 소준섭│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12.03.1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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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기자회견 내용에 전세계 주목…보시라이 해임과 관련 지어 해석 분분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작심하고 한 발언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3월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된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정치 개혁 필요성을 언급하고 그동안 중국 지도부가 거의 입 밖에 꺼내지 않아왔던 ‘문화대혁명’이라는 금기어도 직접 언급했다. 특히 이날 원자바오 총리가 마치 작심한 듯 왕리쥔 사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그것이 이튿날 보시라이 퇴진과 연결되면서 세계의 눈과 귀는 중국의 인기 높은 총리 원자바오에게 쏠렸다.

총리 신분으로 참석하는 마지막 전인대 기자회견이었던 이날 ‘고별’ 회견에서 원자바오 총리는 14명의 기자가 던지는 질문에 답변했다. 그의 답변은 부동산 가격, 통화 팽창, 빈부 격차의 문제부터 위안화 환율, 티베트인 분신 사건 그리고 왕리쥔 사건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문제의 모든 민감한 문제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BBC 방송은 원자바오 총리의 이날 기자회견을 보도하면서 중국 총리가 이처럼 솔직하고 진지하게 의견을 토로한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특히 이날 “정치 체제 개혁의 성공이 없다면… 문화대혁명과 같은 역사적 비극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라고 한 원자바오 총리의 발언에 크게 주목하면서 일종의 ‘경고’라고 해석했다. 

지난 3월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원자바오 총리 뒤로 보시라이가 지나가고 있다. ⓒ AP연합
하지만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이 추진하고자 하는 정치 개혁이 반드시 서구 방식이지는 않다”라고 냉정하게 평가했고, 뉴욕타임스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원자바오는 어떠한 정치 체제 개혁을 진행하는가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으며, 그는 중국 ‘사회주의 민주’가 ‘순차적이고 점진적으로’ 진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라고 전했다. AFP 통신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일부 사람들은 중국의 개혁이란 ‘그저 말해본 것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비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뉴캐슬 대학의 중국 문제 전문가인 마이크 딜런은 중국 <환구시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이 나아가는 어떠한 개혁의 길에도 그 손에 쥐어진 것은 원래부터 서방의 지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자바오 총리의 이날 기자회견이 ‘중국을 두루 읽어볼 기회’였으며, 세 시간에 걸친 질문과 답변을 통해 중국의 민감한 제반 문제를 거의 언급함으로써 중국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 외국 기자들에게 한 장의 인터뷰 지도를 잘 그려준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이날 회견에 대해 “원자바오 총리가 임기 막바지에 자신의 소신을 한 차례 더 밝힌 것일 뿐 중국의 다른 고위층은 정치 개혁에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진단하는 중국 학자도 있었다.

원자바오 총리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자오쯔양(趙紫陽) 당 총서기를 보좌해 톈안먼 광장에서 학생들과 만나면서 눈물을 흘렸던 사진은 지금도 유명하다. 실제로 중국 정부 고위층에서 원자바오만큼 민주화를 많이 언급한 지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자바오의 작심 발언에 이어진 보시라이의 퇴진은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최근 일련의 사건이 향후 중국 내 권력투쟁을 촉발시킬 것이라는 보도도 쏟아지고 있다. 즉, 후진타오 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공청단파가 태자당을 견제하기 위해 태자당의 핵심 인물인 보시라이를 낙마시켰다는 시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같은 권력 투쟁의 시각은 1995년 장쩌민 전 주석이 정적인 천시퉁 전 베이징 시 당서기를 부패 혐의로 제거하고, 시 간부 40여 명을 쫓아내면서 베이징방을 근절시켰던 사례를 중요한 증거로 제시한다. 또한 2006년 후진타오 주석이 상하이방의 거물인 천량위 전 상하이 시 당서기를 사회보장기금 비리 혐의로 체포한 사실도 덧붙인다. 이러한 사례처럼 이번 보시라이 퇴진도 후진타오 주석이 상하이방이 아닌 태자당을 노린 것이라는 시각이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보시라이가 사임하자마자 그와 관련한 글들이 쏟아졌다. ⓒ http://s.weibo.com

시장 경제 확대와 정치 개혁론에 반대 기류도

하지만 이번 보시라이 해임을 계파 간 권력 투쟁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호사가들의 ‘오버액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즉, 보시라이의 퇴진은 권력 투쟁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중국 정계에서 보기 드물게 항상 ‘튀는’ 보시라이의 개인 스타일과 그의 문화대혁명식 극좌 경향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반감이 우선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실제 그는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으로 적극 가담했으며, 심지어 자기 아버지 보이보(薄一波)와의 부자 관계마저 단절할 정도로 골수분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시라이는 스스로도 “사람을 잘못 쓴 데 대해 마음 아프다”라고 인정했듯이 ‘부하를 잘못 관리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된 것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급격한 시장 경제의 확대 정책과 정치 개혁론에 대해 반대하는 기류도 만만찮다. 예를 들어, 그의 해임 소식이 발표된 15일 오전 겨우 한 시간여 만에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에만 6만2천건의 글이 올라왔고, 적지 않은 중국 네티즌들이 보시라이를 지지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싱다오르바오(星島日報)의 15일자 보도에 따르면, 독설가로 유명한 중국의 좌파학자 쿵칭둥(孔慶東) 베이징 대학 중문과 교수는 자신의 웨이보에 “왕리쥔 사건이 발생한 후 정작 반성해야 할 사람은 원자바오 총리이다. 괜찮았던 이 나라가 지금 왜 이렇게 된 것인가!”라고 힐난했다. 전날 원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보시라이는) 반성해야 한다”라고 한 발언을 비꼬아 비난한 것이다. 특히 충칭 시민들은 보시라이가 그동안 낙후되었던 충칭 시를 신속하게 발전시켰고 치안과 환경을 크게 개선시켰다면서 그의 사임을 못내 아쉬워하고 또 불만까지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원자바오 총리의 정치 개혁 작심 발언과 보시라이의 전격적인 퇴진은 일단락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중국의 정치 개혁과 소득 분배, 시장 경제 등의 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향후 중국 사회에서 전개될 격렬하고도 다양한 논쟁과 변화의 서막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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