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병력 있는 환자 피는 왜 뽑았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3.1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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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사, 한 해 평균 4건씩 헌혈 유보군 환자들 채혈한 것으로 드러나…내부에서조차 “모럴해저드의 극치” 지적


B형 간염 혈액 유통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이 있다. 적십자사가 한 해 평균 4건씩 헌혈 유보군으로 분류된 환자들을 채혈했음이 드러났다. <시사저널>이 이애주 새누리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적십자사의 ‘2007년 이후 헌혈 유보군 채혈 실적’ 자료를 살펴보니 문제가 심각했다. 적십자사는 지난 2007년부터 2011년 11월 말까지 7명의 B형 간염 환자에게서 채혈한 것으로 나타났다. 뒤를 이어 후천성면역결핍증(6건), C형 간염 및 말라리아(각 1건) 순이었다. 적십자사측은 “담당 직원의 실수로 채혈이 이루어졌지만 외부로 출고되지는 않았다”라고 강조한다.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한 관계자는 “헌혈 유보군 혈액은 출고할 수 없도록 내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관련 혈액이 외부로 유출되거나 수혈되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적십자사 내부의 의견은 달랐다. 내부 시스템이 이미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적십자사의 한 내부 관계자는 “헌혈 유보군이란, 말 그대로 전염병 병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일반 헌혈 등록자들과는 다르게 관리되기 때문에 헌혈 자체가 불가능하다. 헌혈 유보군을 채혈했다는 사실 자체가 모럴해저드의 극치를 보여준다”라고 꼬집었다.

특히 적십자사는 그동안 여러 차례 내부 사고가 발생했다. 직원 부주의로 폐기 처리되어야 할 혈액이 전산 조작을 통해 입고 처리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들 사건은 대부분 내부적으로 은폐를 시도했다가 뒤늦게 적발되는 경우가 많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부적격 혈액까지 포함하면 관련 사례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지난해 7월 전북혈액원에서는 유효 기간이 8개월이나 지난 생리 식염수로 제조한 세척 적혈구(W-RBC)가 의료기관에 공급되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쉬쉬하다가 내부 감사를 받았다(<시사저널> 제1140호 참조). 부산혈액원에서는 상온에서 두 시간 이상 방치된 혈액팩 1천8백개가 부산·경남 의료기관에 공급되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민원기 한국진단검사의학회 이사장(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은 “실제 수혈 여부를 떠나 헌혈 유보군의 혈액이나 부적격 혈액이 출고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심각하다. 적십자사 내부의 자정 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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