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책임 다하면 족벌 경영도 괜찮아”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3.27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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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재벌이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을 벤치마킹해야 할 이유

2010년 11월11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에서 열린 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 폐막 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 ⓒ 연합뉴스
최근 인터넷에서는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최근 4년간 재벌들이 계열사를 마구 늘리면서 경제력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라고 발표한 경실련 자료가 발단이 되었다. 경실련은 보고서에서 “재벌들이 제조업보다 부동산이나 건설, 임대 사업 등으로 부를 늘려가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자 한 보수 인터넷신문은 칼럼을 통해 “경실련이 사업이 끝나면 사라질 SPC(특수목적법인)까지 끌어들여 통계적 착시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라고 맞받았다. 칼럼이나 성명서에는 ‘왜곡’이나 ‘억지’가 계속해서 거론되는 등 한동안 설전이 이어졌다.

범삼성가와 범현대가의 승자 독식 구도를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관련 단체나 전문가별로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 재계 주변에서는 “그만큼 경영을 잘했기 때문에 성장률이 높은 것이 아니겠느냐”라는 반응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국내 대기업은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두고 재벌 밀어주기라거나 경제력 집중 현상이라고 꼬집는 것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주변에서는 일련의 상황이 재벌 특혜 정책이 부른 후유증이라고 단정한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투자를 촉진한다는 명분하에 각종 규제가 폐지되었고, 재벌 계열사들은 무한 팽창을 거듭했다. 단순히 경영 논리로 넘기는 데는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특정 가문이나 기업이 한 나라의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국제적으로 적지 않다. 스웨덴 최대 재벌인 발렌베리 가문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30%, 시가총액의 3분의 1을 관련 회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종업원 역시 40만명이나 된다. 국내 범삼성가와 범현대가의 고용 인원을 모두 합친 수준이다. 스웨덴 전체 인구의 4.5%를 발렌베리가에서 먹여살릴 정도로 스웨덴 경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중공업과 첨단 제조 부문에 사업 역량 집중”

유럽의 강소국인 핀란드의 경우에는 더하다. 전체 고용의 10%를 노키아 한 곳이 차지할 정도로 특정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노키아 매출이 핀란드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5%나 된다. 노키아의 수출 비중이 전체의 25%나 되고, 법인세 세수 비중은 22%나 차지하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 열풍에 밀리면서 예전의 위세가 많이 줄었지만, ‘핀란드=노키아’라는 공식은 여전히 전세계인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에 대해 경제력 집중이나 족벌 경영의 폐해를 지적하는 경우는 없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우선시하는 경영 철학 때문이다. 마르쿠스 발렌베리 스톡홀름엔실다은행(SEB) 회장도 지난 3월20일 가진 방한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점을 강조했다. 그는 “요즘과 같은 각박한 환경에서 기업 이윤 창출을 위한 비즈니스와 사회적 공헌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발렌베리 가문 등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김은섭 경제·경영 칼럼니스트는 “발렌베리 가문의 경우 사업 포트폴리오가 철저하게 중공업과 첨단 제조 부문에 집중되고 있다. 후계자 교육과 선발은 엄격하고 투명한 기준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국내 재벌들이 본받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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