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가 자산, GDP 50% 넘었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3.27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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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재벌에 대한 경제 쏠림 갈수록 심화…“정부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용인” 비난 여론도


범(汎)삼성가와 범현대가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두 패밀리 그룹의 자산 총액은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어섰다. 삼성이나 현대차는 개별 그룹만으로 각각 GDP의 33%와 13%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이나 현대가가 기침이라도 하면 한국 경제는 몸살을 앓는다. 이같은 사실은 <시사저널>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규모 기업집단 공개 시스템(오프니)’을 분석한 결과 드러났다. 지난 2011년 4월 기준으로 삼성, CJ, 신세계 등 범삼성가의 자산은 4백23조7천5백억원을 기록했다. 삼성그룹이 3백91조3천8백원으로 자산이 가장 많았다. CJ와 신세계 그룹은 각각 16조원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에서 제외된 한솔그룹까지 포함할 경우 범삼성가의 자산은 4백30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기아차, 현대중공업, 현대,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등이 포진해 있는 범현대는 2백51조2천8백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현대차그룹이 1백54조3천9백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현대중공업그룹(55조6천6백억원), 현대그룹(23조1천억원), KCC그룹(10조1천8백억원), 현대백화점그룹(8조4천억원), 현대산업개발그룹(7조1천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대규모 기업집단에서 제외된 현대해상화재나 현대기업금융, 한라그룹, 성우그룹, 한국프랜지공업 등을 합할 경우 범현대가의 자산은 2백7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0년 말 한국의 GDP가 1조1백43억 달러(한화 1천1백73조원)임을 감안할 때 범삼성가와 범현대가의 자산을 합하면 7백조원에 달해 GDP의 절반을 넘어서게 된다. 두 패밀리 그룹에 고용된 직원 역시 48만4천명으로 한국 인구의 1%를 넘어선 상태이다.

주목되는 사실은 범삼성가와 범현대가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한국의 GDP 성장률은 80% 수준이었다. 하지만 범삼성가와 범현대가의 성장률은 1백52%에 달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부터 계산하면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당시 전세계 경제는 ‘미국발’ 금융 위기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 역시 중소기업과 중견 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잇따랐다. 2008년과 2009년의 평균 GDP 성장률은 1.3%에 불과했다. 그나마 환율 효과를 톡톡히 본 원화로 계산했을 때의 얘기이다. 달러로 환산할 경우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GDP는 2007년 1조4백93억 달러에서 2008년 9천3백9억 달러로 전년에 비해 11%나 하락했다. 2009년에도 10%가 또다시 빠졌다. 2010년 들어 플러스로 돌아섰지만,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범삼성가와 범현대가의 자산은 50%나 증가했다. 두 그룹의 종업원 수는 42만3천8백명에서 48만4천명으로 14% 증가했다. 특히 현대차와 현대중공업그룹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2008년 4월부터 3년간 현대차와 현대중공업그룹의 자산 성장률은 각각 70%와 85%에 이른다. 증가된 자산은 각각 63조7천7백억원과 25조5천4백억원에 달했다. 삼성그룹 역시 같은 기간에 42% 성장하면서 자산을 1백16조2천2백억원이나 불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은 지난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주가 역시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두 패밀리 그룹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범삼성가와 범현대가의 자산이 급증하기 시작한 시점 때문이다. MB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기업 친화’ 정책을 강조하면서 각종 규제를 풀었다.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억제해오던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 역시 현 정부 들어 폐지되었다. 일각에서는 삼성가와 현대가의 경제력 집중 현상이 결국 이 정책의 수혜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우찬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전후해 한국 기업이 급성장한 데는 환율 효과의 영향이 컸다. 한편으로 2007년부터 출총제가 사실상 폐지되면서 재벌 기업의 자산과 계열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정부에서 용인한 측면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국내 주식시장도 40% 가까이 점유해

범삼성가와 범현대가의 경제력 집중 현상은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사저널>이 우리투자증권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두 패밀리 그룹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4백38조8천억원을 기록했다. 삼성가가 2백64조8천3백억원을, 현대가가 1백73조9천7백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국내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1천1백48조원임을 감안할 때 전체의 40% 가까이를 삼성가와 현대가에서 움켜진 셈이 된다.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에 대한 두 패밀리 그룹의 영향력이 시간이 갈수록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조승빈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 애널리스트는 “올 초부터 코스피 지수가 급등하면서 2천40 선을 돌파했지만, 삼성전자 등 일부 대형주만 수혜를 입었다. 외국인 자금이 특정 종목에만 몰리는 만큼 주식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삼성가와 현대가의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의 ‘오프니’를 통해 조회 가능한 2001년까지만 해도 삼성과 현대의 자산 규모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삼성이 1백46조4천3백억원, 현대가 1백21조5백억원으로 차이가 25조원 정도였다. 2000년에는 오히려 현대가 삼성을 앞섰다. 하지만 2001년 정주영 창업주가 타계하고, 2세들의 재산 다툼이 진행되면서 현대가의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룹의 모태 격인 현대건설과 주력 계열사인 현대전자(현 하이닉스)가 동반 부실에 빠지면서 현대가에서 떨어져나갔다. 그럴 때마다 삼성과 현대가의 자산 격차는 벌어졌다. 지난 2008년 4월 기준으로 삼성과 현대가의 자산은 각각 2백96조2천4백억원과 1백53조9천8백억원으로 두 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전후해 현대가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현대그룹의 경우 대북 사업의 난조로 여전히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현대차나 현대중공업은 공격적인 M&A(인수·합병)로 덩치를 키워나갔다. 현대차는 그룹의 모태 격인 현대건설마저 품에 안았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도시개발, 송도랜드마크시티 등 현대건설의 20개 자회사도 현대차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창업주 타계 당시 세계 10위권이었던 글로벌 자동차 순위 역시 4위권으로 끌어올렸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오일뱅크와 현대종합상사를 잇달아 인수했다. 하이투자증권(옛 CJ투자증권)과 하이자산운용(옛 CJ자산운용) 등도 CJ그룹으로부터 사들였다. 금융, 정유, 무역 등의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서면서 계열사 수는 불과 4년여 만에 7개에서 21개로 늘어났다. 100대 그룹 중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이었다. 매출은 최근 10년 사이에 6배 이상 증가하면서 두 패밀리 그룹의 격차 역시 줄어드는 듯했다. 지난 2010년 기준으로 삼성가와 현대가의 자산은 각각 3백68조7천7백억원, 2백22조4천3백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라인(왼쪽)과 평택항의 기아자동차 수출 전용 부두(오른쪽). ⓒ 시사저널 이종현

삼성그룹 선전으로 범삼성가 약진 두드러져

하지만 2011년에 들어서면서 이 격차가 다시 확대되고 있다. 자산 규모가 70% 가까이 벌어졌다. 범삼성가가 약진한 이면에는 삼성그룹의 선전이 눈에 띈다. 다른 패밀리 계열사들과 달리 삼성그룹은 해마다 두 자릿수의 자산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금융 부문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이 좋은 실적을 이어가면서 금융 및 보험 회사의 자산은 1백86조5천6백억원까지 늘어났다. 전체 자산 포트폴리오의 절반 정도가 금융 계열사로 채워진 것이다.

현대차그룹 역시 금융 계열사가 많이 포진해 있다. HMC투자증권(옛 신흥증권),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등이 고르게 실적을 내고 있다. 최근에는 녹십자생명까지 계열사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전체 자산에서 금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에 머물렀다. 현대중공업 역시 최근 증권, 자산운용, 선물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지만, 전체 자산의 3% 수준에 불과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경우 일찍부터 금융업에 진출하면서 초석을 다져왔다. 은행만 인수하게 되면 사실상 금융지주를 위한 모든 라인업을 갖추게 된다는 점에서 현대가와 차별화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뉴스뱅크

범삼성가와 범현대가에 포함된 그룹들은 현재 한국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지난 1938년 대구시 수동(현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이후 제조업과 중화학, 전자, 반도체로 산업 영토를 넓혀나갔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역시 지난 1947년 설립된 현대토건을 기반으로 건설, 중공업, 자동차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현재의 현대 일가를 일구었다. 

삼성그룹의 모태는 대구의 삼성상회 터이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6월 대구시와 함께 이 터를 기념관으로 리뉴얼했다. 하지만 인근 침산동에 위치한 제일모직 터는 방치해 지역의 반발을 사고 있다. 삼성그룹측은 “지난 1996년 대구 공장을 구미로 옮기면서 오페라 전문 극장을 지어 대구시에 기부 체납했다. 나머지 공간에는 이병철 창업주의 집무실이 있던 본관과 기숙사 건물이 위치해 있다. 현재 어떤 방식으로 개발할지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정경훈 대구시의회 의원은 “삼성그룹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삼성그룹측은 그동안 제일모직 터에 초고층 빌딩과 쇼핑센터, 금융 빌딩을 건립하기로 약속했다. 내부적으로 TF팀을 구성하고도 아직까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현대가는 서로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면서 형제들 간에 은근히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을 놓고 숙질 간에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도 현대그룹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되었다가 탈락하는 등 한 차례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현대가 역시 모태 기업을 찾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건설업계 1위였던 현대건설은 지난 2001년 부도가 나면서 채권단의 손에 맡겨졌다. 현대그룹의 해외 병참기지 역할을 하던 현대종합상사 역시 지난 2003년에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두 회사를 인수하면서 현대가의 품으로 돌아왔다. 경영 상황 역시 급속히 호전되고 있다는 평가이다. 재계에서는 이런 조치가 결국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가의 경우 2000년 터진 형제 분쟁으로 모태에 대한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다. 옛 현대 계열사들을 다시 사 모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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