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비례대표도 ‘구태 정치’ 범벅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2.03.27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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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 과정에서 ‘조직 선거’ ‘투표 조작’ 등 의혹 불거져…참가자들 “취지 좋지만 시스템 설계 잘못돼”

민주통합당 청년 비례대표 최종 후보자 16명이 2월26일 오후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19대 총선의 가장 큰 특징은 젊은 2030 세대를 선거판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인 데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청년 비례대표 경선’이었다. 최근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예능 프로그램의 공개 오디션 형식을 빌린 경선 절차를 마무리했다. 그 결과 민주당에서는 네 명, 통합진보당에서는 한 명의 청년 비례대표 후보가 각각 선출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작 전부터 ‘기대 반, 우려 반’의 엇갈린 시각을 낳았던 청년 비례대표 경선에 대해서는 ‘실패’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대했던 만큼 일반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한 채 ‘그들만의 잔치’로 끝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직 선거, 투표 조작 의혹 등 기성 정치권의 구태를 답습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20대 때부터 일찌감치 정치에 뜻을 품고 준비해왔던 30대  남성 조영근씨(가명)는 지난해 12월 민주당의 청년 비례대표 경선 ‘락파티’가 열린다는 공고를 접했다. 조씨는 이번 경선이 정치권에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고 지원했다.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지원 서류 및 동영상을 준비하는가 하면, 지금까지 활동해오며 얻은 경험들을 토대로 열심히 경선을 대비했다. 하지만 총 4차(정책 에세이 제출-심층 면접-청년 정치 캠프-모바일 및 인터넷 투표)에 걸친 평가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중간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조씨를 탈락시킨 경선의 과정들이 매끄럽게 흘러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관찰한 경선 과정은 그야말로 ‘문제투성이’였다고 평가했다.

첫 지원 자료를 동영상으로 받은 후 절반에 가까운 지원자를 탈락시킨 것부터가 논란이 되었다. 기껏 고생해서 주최측이 요구하는 동영상까지 제작했는데, 단 한 번의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에 탈락자들의 반감이 컸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매번 경선이 끝나고 나면 심사위원의 결정에 불만을 품는 탈락자들이 속출했다. 심사 및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고, 이런 탓에 스스로 떨어진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조씨는 “아무리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보다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허술하고 엉성한 진행이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일부 참가자는 소송을 준비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등 집단적으로 반발할 조짐까지 보였다고 한다.

특히 가장 실망스러운 장면은 ‘모바일 및 인터넷 투표’에서 빚어졌다. 16명의 최종 후보 중 네 명의 청년 대표를 선출하게 되는 마지막 관문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넘치는 과정이었다. 이때 조씨는 각 청년 경선 후보들이 인맥과 조직을 총동원해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순수한 외부인의 참여는 기껏해야 100표 정도일 것이라는 의견이 우리들 사이에서 지배적이었다.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한 상황에서, 결국 표를 얼마나 동원할 수 있는지가 승부를 갈랐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표를 잘 끌어온 후보나, 주변 친지들에게 수백 통의 전화를 돌리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인 후보가 승리했다. 기성 정치권의 구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이었다”라고 말했다.

각 정당별 2030세대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 (3월23일 기준)

정당

비례대표 순번

이름

나이

약력

새누리당

17

이자스민

35

물방울나눔회 사무총장·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22

김상민

38

대학생자원봉사단 V원정대 대표

24

이재영

36

세계경제포럼 아시아팀 부국장

민주통합당

10

김광진

30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 사무국장

13

장하나

34

민주통합당 대외협력특별위원장

27

정은혜

28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재학

28

안상현

29

티켓몬스터 전략기획실장

자유선진당

20

이기주

35

자유선진당 부대변인

통합진보당

3

김재연

31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집행위원장

7

조윤숙

38

장애인푸른아우성 대표

15

황선

38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

진보신당

7

박은지

33

진보신당 대변인·동작당협 부위원장

녹색당

1

이유진

37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3

장정화

39

녹색당 서울시당 사무처장

청년당

1

강연재

35

청년당 대변인·전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처장

2

오태양

36

청년당 사무총장

3

강주희

37

청년당 공동대표

4

우인철

26

청년당 인천시당 사무국장

새누리당은 경선 절차도 없이 ‘간택’ 택해

16명의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상근씨(28)는 “취지 자체는 좋았지만 잘못된 시스템 설계로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끝내 ‘조직 선거’ 같은 기성 정치의 구태까지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경선 이후’ 탈락자에 대한 배려를 전혀 준비하지 않은 당의 무관심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후보로 나선 차영란씨(30)는 “소모품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우리를 당의 미래 자산으로 보고 포용해 다듬어주기를 기대했는데…”라고 말했다. 현재 차씨를 비롯한 50여 명의 경선 참여자들은 별도의 세력화를 준비하고 있다. 공부 모임, 포럼 참가 등의 활동을 통해 꾸준히 정치적 역량을 키워나가는 한편, 만약 국회에 입성하는 청년 국회의원이 생긴다면 정책 연구 등을 통해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물론 당과는 별개로 움직이고 있다.

민주당뿐만이 아니다. 비슷한 형태의 청년 비례대표 경선 ‘위대한 진출’을 진행했던 통합진보당에서도 그 결과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위대한 진출’에서는 김재연 후보가 최종 승리해 비례대표 3번을 배정받았다. 그런데 김후보가 정책 차별성이나 인지도 면에서 타 후보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나지 않은 데 반해 상대적으로 많은 표차로 당선되었다는 점이 의문을 낳았다. 현재 당내에서는 김후보가 유력 계파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조직 동원력 차이에서 온 승리이다” “계파 간 표 싸움으로 끝난 ‘위대한 진출’”이라는 등 뒷말이 무성하다.

급기야는 예상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표를 얻었다고 판단한 한 후보측에서 ‘결과 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모바일 및 인터넷 투표 서버의 소스코드가 투표 진행 중에 변경된 흔적이 있으며, 이것은 선거가 끝나기 전 투표함을 개봉한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에 투표 결과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투표 진행 중 시스템이 원활하지 않아 수정 작업을 한 것이다. 투표 조작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경선 결과가 각종 의혹으로 얼룩지는 모습이 이미 기성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과 다를 것이 없다는 개탄이 나온다. 가뜩이나 지역구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부정 선거 논란으로 위기를 맞은 통합진보당으로서는 연이은 악재이다. 통합진보당의 한 청년당원은 “청년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조차 이런 불미스러운 논란이 발생한 것이 안타깝다. 자체 진상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정치판은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더럽다’는 인식이 굳어질까 봐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새누리당의 경우에는 청년 비례대표를 뽑기 위한 별도의 경선 절차도 없었다. 부산 사상 지역에 전격 공천한 손수조 후보의 경우처럼 인물을 ‘간택’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야당으로부터 ‘낙하산 청년 비례대표’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이다. 비례대표 후보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신 최재민 새누리당 국민소통위원회 위원(28)은 “다른 당처럼 청년들을 위한 별도의 경선 절차가 없었던 점은 아쉽다. 지금까지 당을 위해 봉사해 온 청년 당원들을 홀대하는 분위기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이 만난 청년 정치 지망생들에게서는 기성 정당을 원망하는 정서가 느껴졌다. 과연 각 정당이 진정으로 청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회의적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정상근씨는 “이번 경선에 참가하면서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다. 열정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하려 했던 젊은 친구들이 잘못된 시스템으로 인해 정치를 불신하게 되는 일이 생길까 봐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과연 현 정치권은 이런 청년들을 향해 어떤 대답을 되돌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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