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통령은 민간인 사찰 보고 안 받았나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3.27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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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폭로로 재점화된 민간인 사찰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나돌았던 청와대 개입설은 당사자인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을 ‘몸통’이라고 지칭하면서 현실로 드러났다. 이제 초점은 이명박 대통령이 사찰 보고를 받았는지, 아니면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모아지고 있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민간인 사찰과 청와대 그리고 이대통령과의 연결 고리를 추적했다.

ⓒ 시사저널 유장훈·연합뉴스

민간인 사찰 사건의 실체는 밝혀질 것인가. 화살은 일제히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청와대 개입설은 이영호 전 비서관의 입으로 확인되었다. 이제는 이대통령이 사찰 보고를 받았는지, 아니면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종합하면 이대통령이 사찰 보고를 받았을 개연성이 있다. <시사저널>은 민간인 사찰과 청와대 그리고 이대통령과의 연결 고리를 집중 추적했다. 과연 ‘비밀의 문’은 어디까지 연결된 것일까.

그동안 청와대 개입설에는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여러 물증도 나왔지만 단정하기에는 제약이 있었다. 검찰이 2010년 수사 때 “청와대 개입은 없다”라며 장막을 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청와대 개입을 의심했지만 단정할 수는 없었다. 청와대를 둘러싸고 의혹만 증폭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폭로가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했다. 그는 검찰이 밝히지 못한 ‘청와대 개입’ 증거들을 쏟아냈다. 정작 청와대 개입설에 방점을 찍은 것은 이대통령의 측근인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이었다. 그는 지난 3월20일 기자회견을 자청했고, “청와대 개입은 없고, 자료 삭제는 내가 지시했다. 몸통은 나다”라며 ‘배후 논란’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났다. 이 전 비서관이 직접 나서면서 청와대 개입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청와대 개입은 없었다”라던 검찰 수사 결과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동시에 청와대 뒤에 붙었던 물음표도 떨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 비서관의 기자회견은 그의 윗선을 공략하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다.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의 법률 대리인인 최강욱 변호사는 “이영호 전 비서관의 기자회견은, 처음에는 황당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다섯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자백했다. 첫째 증거 인멸을 철저하게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둘째 청와대 몸통설이 끊임없이 나왔는데, 이것도 본인의 입으로 확인해주었다. 셋째, 최종석 전 행정관을 통해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돈을 준 것도 인정했다. 넷째,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자기가 관장하는 부서라고도 했다. 겉으로는 총리실에 있었지만 조직 계선상으로 상관없는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에서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된 것이다. 넷째는 ‘가끔씩 직원들과 노동 현안을 상의한 적이 있다’고 했다. 원충연 전 조사관의 수첩을 보면 개별 사업장 노조 간부를 확인하고 추적한 것이 있는데 결국 또 다른 민간인 사찰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 것이다. 다섯째는 ‘공무원들도 피해자’라고 했다. 그러면 가해자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 가해자는 ‘청와대’였고, 공무원은 하수인이라는 것을 확인해주었다”라고 해석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청와대 개입 증거’는 상당하다. 우선 사찰 당시의 자료(문건)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시사저널>은 제1170호(3월20일자)에서 청와대 개입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 자료 두 가지를 공개했다.

하나는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대검찰청 분석 보고서’이다. 이것은 사찰에 나섰던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의 삭제된 하드디스크를 복구한 후 만든 보고용 자료이다. 여기에는 ‘민정수석 보고용’ ‘BH 보고’ 등 청와대에 보고한 정황이 들어 있다. 검찰은 지난 수사에서 “파일은 있으나 내용이 없다”라며 비켜갔으나 설득력이 약하다.

검찰 수사 일지
2008년 7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신설(광우병 촛불 시위 직후)
2008년 8월6일    김종익 KB한마음 대표 개인 블로그에 ‘쥐코’ 동영상 게재
2008년 9월29일    공직자윤리지원관실, KB한마음 영장 없이 압수수색
2008년 11월19일    동작경찰서에 수사 의뢰
2009년 9월12일    횡령은 무혐의, 동영상은 명예훼손으로 송치
2009년 10월19일    명예훼손, 검찰에서 기소 유예
2010년 6월21일   신건·이성남 의원(민주당),   국회 정무위에서 지원관실 민간인 사찰 의혹 제기
2010년 7월5일   총리실 검찰에 수사 의뢰,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구성, 수사 착수
2010년 7월9일   총리실 압수수색
2010년 8월11일   검찰 수사결과 발표, 이인규 지원관 등 불법 사찰 혐의로 기소
2010년 9월8일   검찰 증거 인멸 혐의로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 장진수 전 주무관 등 기소
2010년 11월15일   1심 선고
2011년 4월12일   항소심 선고
2012년 3월5일    장진수 전 주무관 청와대 개입 폭로
2012년 3월16일  검찰 재수사 착수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구성)
2012년 3월20일   장진수 전 주무관 소환 조사  
2012년 3월23일   이영호 전 비서관·이인규 전 지원관 집 등 압수수색        

원충연 전 조사관의 수첩에서도 ‘민정’ ‘2B(이영호 전 비서관의 약칭)’ ‘BH(청와대를 말함) 지시 사항’ ‘하명 사건’ 등의 단어가 수시로 나온다. 또 경찰청, 국정원, 청와대의 사회수석실과 인사수석실에도 동향을 보고한 정황이 있다. 이것은 청와대뿐만 아니라 정부 유관 조직이 사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수첩은 업무일지와도 같은 것이다. 이들이 일부러 청와대를 암시하는 단어를 넣었을 리는 만무하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가운데)이 3월20일 서울중앙지검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보고서, 3개 루트로 보고된 정황 나타나

기자가 파악하기로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만든 보고서는 총 세 곳의 루트를 통해 보고된 정황이 있다. 지원관실은 공직자의 감찰 업무를 담당하는 ‘암행감찰반’이다. 총리실 직제에 있지만 청와대 지시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이를 토대로 보면 조직 계선상 공식 보고 라인은 청와대 공직기강팀이며 그 위에는 민정수석실이 있다. 이인규 전 지원관은 2010년 10월14일 열린 공판에서 “당시 이강덕 공직기강팀장(현 서울경찰청장)에게 사찰 내용을 구두로 보고했다”라고 진술했다.

총리실 직제상의 보고 라인을 통해서도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지원관실은 총리실장(장관급)의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다. 이인규 전 지원관도 “당시 김영철 사무차장(2008년 10월 작고)과 국무총리실장에게 구두로 보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는 말을 했었다. 이에 대해 조중표 당시 총리실장 등은 “보고받은 적이 없다”라며 이를 부인했다.

또 다른 한 곳이 비공식 보고 라인이다. 이른바 ‘영포 라인’으로 불린다. 지원관실의 이인규 전 지원관, 김충곤 전 점검1팀장, 원충연 전 조사관, 장진수 전 주무관이 여기에 속한다. 청와대 최종석 전 행정관과 이영호 전 비서관도 영포 라인이다. 이 전 비서관은 영포 라인의 좌장 격인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과도 막역한 사이이다. 박 전 차장은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의 핵심 측근이다. 때문에 이상득 의원과 박영준 전 차장의 ‘몸통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이영호 전 비서관은 지난 3월20일 기자회견에서 “지원관실의 보고를 받았다”라며 일부 시인했다. 그렇다면 민정수석실과 고용노사비서관실에 올라간 ‘사찰 보고’가 어느 선까지 보고되었는지가 궁금해진다. 원충연 전 조사관의 수첩을 보면 민정수석실이 이영호 전 비서관과 ‘정보 독점 경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관실에서 민정수석실보다 이 전 비서관에게 고급 정보를 더 자세하고 빨리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권력 핵심부에서 ‘정보’는 자신의 힘이자 또 다른 권력을 상징한다. 개인이 그 정보를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윗선’에 보고하는 것이다. 고급 정보를 빠르게 보고하면 그만큼 ‘정보력’을 인정받을 수가 있다. 이영호 전 비서관은 대통령과도 수시로 독대할 만큼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었다. 공식 보고 라인을 통해 보고되었다면 민정수석실에서 이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올렸을 수 있다. 이영호 전 비서관이 ‘별도 보고’한 것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장진수 전 주무관측의 이재화 변호사도 “(사찰 내용이) 대통령까지 보고되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MB 몸통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민정수석실은 ‘비선 보고’를 정말 몰랐을까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왼쪽)과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오른쪽)에 대해 민간인 사찰의 ‘몸통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 시사저널 유장훈(왼쪽), ⓒ 연합뉴스(오른쪽)
여기서 주목할 것은 또 있다. 지원관실에서 이영호 전 비서관에게 ‘비선 보고’하는 것을 민정수석실은 정말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민정수석실 입장에서 보면 정보 보고가 이원화되는 것은 탐탁지 않은 일이다. 실제 민정수석실이 ‘비선 보고’ 정황을 포착해 와해시키려다 실패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비선 보고 라인이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은 거대 권력이 뒤에 있지 않는 한 힘든 일이다.

총리실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신설된 배경과 시점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원관실은 2008년 7월에 신설되었다. 이때는 촛불 시위가 일어난 직후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촛불 시위로 인해 초기의 국정 동력을 상당히 소진했다. 게다가 흐트러진 공직 기강을 바로잡을 필요도 있었다. 참여정부 때 임명된 공기업이나 공공 기관장들에 대한 정리도 시급했다.

임기가 보장된 공공 기관장 중에는 사퇴 압박에도 버틴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들에 대한 사퇴 압박용 비리 정보가 절실했다. 원충연 수첩에는 사찰 대상들의 신상이 적혀 있다. 이래저래 사회 지도층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대기업 회장들까지 사찰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이후 증거물 은폐 등이 전방위에 걸쳐 이루어진 점도 주목된다. 장진수 전 주무관 등의 입을 막기 위해 1억원에 가까운 돈이 오고 갔다. 당시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구속된 이인규 지원관 등의 가족에게 위로금을 주었다. “자리를 보장하겠다” “먹고살게 해주겠다”라는 회유가 계속 이어졌다. 청와대는 또 증거 은폐에 사용하라며 범죄에 이용되는 ‘대포폰’까지 제공했다. 이들은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악착같이 입을 막으려고 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은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해 보고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청와대와 이대통령에게 시선이 집중된 만큼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는 “민간인 사찰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국민 정서상 납득할 수 있도록 입장을 밝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상돈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항간의 의혹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검찰도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땅에 떨어진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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